양양 뚜거리탕
남대천은 살아 숨쉬는 것들을 거느리고 지켜온 양양 천년의 젖줄이다. 오색과 갈천 그리고 어성전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흘러내리는 청정수가 한 데 어우러진 남대천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의 품속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해오름의 고장 양양은 바다낚시와 민물낚시를 두루 즐길 수 있는 강태공들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양은 먹거리 여행의 일번지로 뚜거리와 은어와 연어가 기다리는 남대천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철 비가 오고 물이 불었다 빠지면 수심이 얕은 남대천엔 반두(고기를 잡기 위해 두 개의 막대기를 맨 그물)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반두로 물길을 가로막고, 나머지 사람들이 흐르는 물을 긴 막대기로 두들기면 모래나 돌틈에 숨어 있는 고기가 놀라서 튀어 나온다. 이 때 반두로 순식간에 떠올리는 것이 기술이다. 이와같이 반두질은 순발력과 테크닉이 필요하다.
남대천에서 잡히는 고기 종류는 뚜거리, 은어, 버들개, 빠가사리, 메기 등 무수히 많다. 은어는 회나 튀김으로 먹고, 다른 고기들은 매운탕이나 어죽을 끓인다. 이렇게 고기를 잡아 개울가에서 매운탕이나 어죽을 끓여서 먹고 노는 것을 천렵이라고 한다. 내가 양양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는 천렵의 귀재들도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어릴 적 놀이삼아 했던 고기잡이를 버리지 못하고 생업으로 삼은 사람도 있다. 그 옛날 고기잡이가 성했던 것일까. 지금도 남대천 제방 너머 재래시장 철물점에서 돈만원이면 반두를 살 수 있다.
은어는 연어과에 가깝지만 다른 점도 많아 독립된 은어과로 분류된다. 은어는 하구에서 월동한 어린고기가 4~5월 경이면 상류로 올라와서 9월 경 산란을 시작하는데 어미 한 마리가 1만 개 안팎의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깬 어린 고기는 본능적으로 수심이 얕은 하구로 내려가 겨울을 지내며 어미들이 그랬듯이 상류로 올라갈 봄을 기다린다. 맛이 좋기로 이름난 은어는 그 옛날 임금님께 진상하였으며 오늘 날엔 인공양식이 발달하여 양식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자연산은 나날이 줄고 있다.
그리고 은어는 여울진 하천에서 영역을 형성하여 다른 은어가 눈에 띄면 들어오지 못하게 공격한다. 이 습성을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데 미끼없이 여러 개의 낚시를 매어 단 낚싯줄에 힘 좋고, 튼실하게 살아 있는 은어의 아가미를 꿰어 묶은 다음, 여울진 물속을 끌고 다니면 은어들이 침입자를 막기 위해 덤벼들고 이 순간을 놓칠쎄라 잽싸게 낚싯대를 낚아채면 낚시에 걸려 올라온다.
연어도 은어와 비슷한 길을 밟는다. 부화된 지 불과 일 주일 남짓이면 남대천을 떠나 바다로 내려가서 4~5년 치열하게 살다가 동해에서 아련한 고향냄새를 맡고 모천母川으로 돌아와서 굶으며 알을 낳다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서 끝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은어와 연어는 하나같이 빼닮은 꼴이다. 그래서 은어를 이야기하다 보면 연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양양하면 연어축제를 떠올리게 된다. 양양군에서는 오래 전부터 해마다 시월이면 연어의 모성애 넘치는 생명여행을 담은 연어축제에 초대한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연어축제는 단순한 축제 이상의 메시지를 가지고 당신을 기다린다.
양양대교 남단에서 우회전하면 어성전길 입구에 뚜거리탕으로 유명한 천선식당(033-672-5566)이다. 반 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허름한 벽돌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50명은 앉을 수 있는 홀인데 먼저 온 팀들이 식사 중이다. 먹는 데 골몰한 나머지 쳐다볼 사이도 없는가 보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름다운 플라워 패턴의 벽지와 따끈한 전기 판넬 장판이 익숙한 내집처럼 편하게 느껴진다.
뚜거리탕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이 고장 출신 주인장이 있어 이야기에 빠져든다. 뚜거리로 쓰는 물고기는 밀어, 날망둑, 검정망둑, 꾹저구, 비단뚜거리, 기름종재, 홍수마리 등 수도 없이 많다. 큰 것이라도 어른의 검지손가락이 될까말까한 뚜거리는 강바닥에 붙어서 사는 육식성 민물고기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서식한다. 그리고 5∼6월 여울목 돌틈에 산란을 하면 부화 후 바다로 내려갔다가, 2∼3개월 지나면 몸길이가 약 2cm 정도가 되어 다시 여울목으로 돌아온다. 뚜거리는 이름도 다양하여 강릉에서는 꾹저구, 양양에서는 뚜거리, 고성에서는 뚝저구, 삼척에선 뿌구리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니 뚜거리가 고기 종류이기도 하지만 뚜거리탕에 들어가는 잡고기를 통틀어 말하기도 하는가 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뚝배기에 뚜거리탕이 나온다.
은어와 연어가 회와 튀김으로 으뜸이라면 부담없이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탕의 별미는 뭐니뭐니 해도 뚜거리탕이다. 뚜거리는 칼슘, 단백질 등 영양소가 많고, 기름기가 적어 소화가 잘 되며 비린내가 나지 않고 담백하여 해장국으로도 그저 그만이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동해안을 순행할 때 폭풍으로 출어를 못하여 대접할 어물이 없었다. 이에 현감은 할 수 없이 민물고기로 관찰사를 대접했다. 맛이 정말로 좋았던가 보다. 정철은 현감에게
"이게 무슨 물고기냐?"
"저구새가 꾹 집어 먹은 고기입니다."
그래서 송강은 ‘꾹저구’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재미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뚜거리탕은 따로 국밥은 별로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공기밥을 반 쯤 덜어 넣고 말아 먹어야 제맛이 난다. 한 술 푹 떠서 깍두기 한 쪽 얹어서 입에 넣으면 된장과 고추장이 하아모니 되어 걸쭉하면서도 텁텁하지 않은 것이 식탐을 달래는 행복감을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뚜거리탕에는 소쿠리에 소금을 뿌려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조물조물 주물러서 진을 뺀 뚜거리와 대파, 부추, 마늘, 밀가루, 당면,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이 들어간다. 물을 끓이다가 된장과 고추장을 3대 1의 비율로 넣고 또 끓인다. 펄펄 끓는 물에 뚜거리를 큰 것은 반으로 자르고 작은 것은 통째로 집어 넣는다. 뚜거리를 넣을 때는 수제비를 넣고 대파와 부추를 썰어 밀가루를 뭍혀 넣는다. 당면을 한 움큼 넣고 다진 마늘, 후춧가루, 산초를 첨가한 후 팍팍 끓어오르면 달걀을 푼다. 된장과 수제비 전분은 민물생선의 비린내를 제거해준다. 그런데 여름 뚜거리탕도 좋지만 스산한 가을에 맛보는 얼큰한 뚜거리탕이야말로 감칠맛이 그저 그만일 뿐더러 아무리 걸차게 먹어도 탈 없이 소화가 잘되어 좋단다.
예로부터 양양 사람들은 놀이와 잔치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뚜거리잡이, 은어잡이, 연어잡이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지금도 전한다. 특히 양양 사람들은 복날이면 천렵을 하여 뚜거리탕을 끓여 먹는데 이것을 복대림이라고 한다. 지금도 양양에서 자랑스럽게 내놓는 것은 맛도 만점 영양도 만점, 내노라하는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뚜거리탕이다.
첫댓글 뚜거리탕 맛볼 날을 고대해 봅니다.
그집 부근에 트럭을 비롯한 여러 대의 승용차들이 주차해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저는 민물고기 맛에 익숙치 않아 아직도 뚜거리탕을 먹지 못했습니다. 양양의 자랑 뚜거리탕을 꼭 먹어보아야 하겠어요.
뚜거리탕 끓이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어 올 여름엔 뚜거리는 아니라도 버들치탕이나 끓여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