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범죄 심리사 심규보
어릴 적,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는 화상을 입었다. 치료하는 동안의 아픔도 생생해서 화상 환자를 보면 그 아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음의 상처도 화상과 같은 것. 특히 청소년들이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며 겪는 아픔은 어쩌면 평생 깊은 상처로 남을지 모른다. ‘별을 만드는 사람들’ 심규보 대표는 길 잃은 아이들의 상처를 마음으로 품는다. 자신이 소년원과 구치소를 거치며 같은 상처를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심 대표에게는 그늘 속 아이들도 모두 빛나는 별이다. 마음을 다친 아이들에게는 이해가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어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이의종 기자
편집부가 독자에게 ...
별에서 온 것 같은 그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별입니다. 우리는 빛나는 별에만 눈길을 주지만 그중에 상처받고 약한 별을 찾아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많은 별들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가 저절로 떠올랐지요. 그동안 ‘이해한다’는 말 속에 담긴 편견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아이의 ‘꽃길’만 생각했던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늘 속 별들에게 마음과 손길을 건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테마 인터뷰를 통해 길 잃은 별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_김지민 리포터 |
‘별을 만드는 사람들’ 의 심규보 대표를 만나기로 한 곳은 안양의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는 과거 안양 소년원으로 불리던 곳. 깔끔한 운동장과 화단은 보통의 학교와 같았지만 ‘소년원’이란 선입견에 왠지 말소리도 발소리도 조심스러웠다. 심 대표는 매달 이곳을 찾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
“선생님께 웃음을 드리고 싶어요”
강의를 마치고 나온 심 대표의 손에 작은 엽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 밖에 나가면 사회 정착 잘해서 규보 쌤 사무실 놀러 갈게요.… 언젠가는 저도 선생님께 힘이 되는 카드를 드리고 싶었어요….” 손수 그린 엽서에는 심 대표를 향한 감사와 믿음이 가득하다. “저에겐 이런 것들이 가장 큰 선물이죠.” 엽서를 읽는 심 대표의 얼굴에 흐믓한 미소가 가득하다.
‘별을 만드는 사람들’ 심규보 대표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대구. 안양에 자리한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서 강의하기 위해 이른 새벽 대구를 출발했다고 한다. 소년원의 아이들에게 심 대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아이들의 교화를 위한 교훈적인 이야기일지 혹은 위로나 격려일지 궁금했다.
리포터의 생각을 읽은 듯 심 대표가 말한다.
“오늘 제 강의는 ‘심리학 관점에서 바라본 마케팅’이었어요. 교훈적인 얘기를 하면 아이들은 다 엎드려 자요. 비록 잘못된 행동으로 이곳에 있지만 이 아이들도 사회에 나가면 구성원으로 살아야 하거든요. 필요한 얘기를 해줘야죠.”
경상도 사나이의 걸쭉한 입담에 아이들 언어를 틈틈이 섞어 진행하는 강의라면 적어도 아이들이 졸지는 않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재활심리학 석사,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비롯해 범죄 심리사, 전문 상담사, 임상 심리 전문가 등의 자격증을 가진 ‘지식인’. 아이들이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을까?
![796_interview_0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iznaeil.com%2Fupload%2Feditor%2F0v2LeQ9cQu5aXm1S.jpg)
아이들은 나의 과거를 알고 있다
“아이들은 제 과거를 알고 있거든요. 하하하. 아이들의 지금은 지난날 저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아이들도 저도 만나면 저절로 마음이 열려요.”
고등학생 때 부모의 이혼을 알고 엇나가기 시작한 그의 생활은 17세에 시작된 뇌전증(뇌파 전달 문제로 몸이 굳고 떨리거나 감각 이상 등의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으로 인해 더 나빠졌다. 절도로 한 달 동안 소년원을 다녀온 뒤 고등학교 중퇴, 검정고시로 들어간 전문대에서 전기기사 자격증도 땄지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저지른 폭행으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꼈어요. 저도 구치소 안의 수많은 범죄자 중 하나였으니까요,”
구치소 안의 지식인(?)이었던 그에게 함께 수감된 이들이 탄원서를 써달라며 찾아왔다. 탄원서를 쓰면서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삶을 불평하기만 했던 자신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서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았다. 누군가의 ‘기댈 언덕’이 되어 범죄로 들어서지 않도록 돕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자신이 걸었던 길을 밟지 않도록 돕고 싶었단다. 10개월 만에 수형 생활에서 풀려났다. 이후 2천400시간이 넘는 봉사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아이들을 도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문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흠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특히 임상 심리 전문가 과정이 힘들었다고.
임상 심리 전문가가 되려면 병원에서 3년 동안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질병 증상, 정신 병리와 관련된 용어까지 다 외워야 해 심리학 전공자 중 10% 정도만 임상을 전공할 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다. 심 대표는 지난해 임상 심리 전문가 수련 과정을 마쳤다. “아이들을 위해 그 어려운 것을 제가 해냈지 말입니다. 하하하.”
내 인생의 Key Person_병운 형
심 대표의 얘기를 들으며 문득 든 생각. ‘그럼 심 대표의 곁에는 누가 있었을까?’
10년 동안 말없이 그의 곁을 지켜준 이는 동네 슈퍼마켓의 ‘병운 형’이다. “철학을 전공했는데도 노부모를 위해 가게를 운영하는 효자 형이었어요. 처음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 세상은 멀게 느껴졌지만 체구도 자그마하고 조용한 그 형은 만만해 보였어요. 밥이나 술을 사달라 하면 다 사 주고. 그 형도 제 과거를 알았지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왜 그랬는지 한마디도 묻지 않았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형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같이 기뻐해주는 형이 좋아서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심 대표는 말한다.
“수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에요. 이해라는 말 자체에 ‘해석’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판단의 필터를 거치는 거죠. 아이들은 판단당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길 바라지요.”
심 대표는 병운 형이 자신의 Key Person 중 하나라며 위기의 아이들에게도 Key Person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Key Person은 서로 지지하고 사랑하며 어떤 말도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서로의 Key Person이 되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아이들의 삶이 빛나는 콘텐츠 되길
그는 현재 대구 지역 경찰서 아홉 곳을 관할하는 ‘범죄 심리사’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언제라도 달려가 아이들을 만난다. 범죄 심리사는 소년범의 가정환경과 태도는 물론 여러 심리 검사를 통해 판사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판사가 범죄 심리사의 자문을 참고해 판결을 내리는 만큼 범죄 심리사의 자문 결과는 중요하다.
“범죄 심리사는 프로파일러와는 달라요. 프로파일러는 수사 방향을 설정하고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 주는 일을 하지만 범죄 심리사는 아이의 ‘범죄’만을 보지 않아요. 행동의 원인은 물론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모든 아이가 다 아픈 손가락이지만 얼마 전 재판을 받고 대구 소년원에 있는 열일곱 살 상우(가명)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안 계시고 장애를 겪는 형이 있어요. 상우는 형의 보호자인데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 거죠. 면회를 갔더니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우리 형 잘 돌봐 달라’ 였어요.”
아직 어린 상우 옆을 지켰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심 대표는 그 아이들은 ‘가해자가 아니냐? 죄를 지었으니 벌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선이 가장 안타깝다. 그는 자신이 구치소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것처럼 잘못의 대가를 치르는 아이들의 삶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이들의 삶은 그저 한줄 한줄의 문장(Text)에 불과해요. 보잘것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의 삶이 세상과의 맥락(Context)을 찾는다면 어젠가는 아이들의 삶도 빛나는 콘텐츠(Contents)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년원을 나와 새로운 길을 찾는 아이들을 돕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집이 없어 고시원에 있는 아이들의 방세를 내주고, 밥을 먹이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일은 일상. 밤이면 대구 거리를 경찰과 함께 돌며 ‘위기의 청소년’들을 찾아다닌다.
“‘별을 만드는 사람들’은 비영리 단체예요. 운영도 아이들을 돕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점점 도움이 늘고 있어요. 더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에 돌아와서 빛나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계속 찾을 생각입니다.”
그의 이름 규보(奎輔)는 별을 돕는다는 의미. 그는 이름처럼 살고 있다.
소년원은 범죄를 저지른 19세 미만의 청소년을 교정 교육 하는 법무부 소속 특수 교육기관. 실형이 확정된 소년범의 형을 집행하는 소년교도소와는 다르다. 수용 경력도 전과로 남지 않는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