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잔물결
손 수 자
강당을 가득 메운 그들이 기타반주를 따라 손뼉 치며 김수철의‘젊은 그대’를 노래한다. 건물 입구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핸드폰을 비롯한 소지품 일체를 맡긴 후, 마당에 있는 육중한 철문과 복도를 가로지른 쇠창살이 달린 유리문을 또 몇 개 통과할 때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재소자들의 표정이 밝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다만 그들이 입은 푸른색 옷이 그들의 얼굴을 파리하게 보이도록 할 뿐인 것만 같다.
우리 일행은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프로그램이 시작 될 때까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내 옆에 앉은 낭송가는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려는 의도인 듯 흥겹게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노래한다. 어느 사이에 약간 긴장되었던 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강릉의 ‘어울림 시낭송회’가 매월 한 차례씩 강릉 교도소를 방문하여 시낭송을 하는데, 오늘은 일년에 한 번 있는 재소자들의 문학작품 발표와 함께 한다. 어울림 회장 임정무 목사님의 사회로 시낭송과 문학작품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은 예비 심사를 통과한 재소자들의 글 여섯 편을 글쓴이가 직접 읽게 되고, 그 중간 중간에 어울림회원들의 시낭송이 있으며 찬조 출연자가 노래도 하게 된다.
제일 먼저 차명자 낭송가가 이미애의 시 ‘아버지의 기침 소리’낭송으로 막을 열자 장내는 이내 숙연해 진다. 가끔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분명 누군가가 아버지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소리일 게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달랬다.
가슴에 3*3번을 단 첫 발표자는 약간 긴장 된, 그러나 미소 띤 얼굴로 단상에 올라선다. 장년층의 사나이다. 그는 천천히 자기의 글을 읽기 시작한다. 수필 제목은 「감사하는 마음이 곧 행복」이다. 호감 가는 깔끔한 외모에 호소력 있는 음성으로 낭독하는 그가 우리를 글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낭독하면서, 자기는 다행히 생산적인 일에 동참하게 되어 2층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높은 담장 안의 생활에서 시선이 담 너머 사회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계절의 정취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2층 공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매일 새롭게 거듭나야 담장 밖을 나갈 때 당당할 것이라며, 우리가 이곳을 인생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갈 수 있는 마지막 여백으로 활용해 보면 어떨지….”라고 하면서 울먹였다. 글의 짜임새와 문장력으로 보아 많은 독서와 글쓰기에 열심인 듯해 보였다.
「슈퍼맨의 비애」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하는 이는 중년쯤으로 보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화재 및 재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위급한 상황에 뛰어들어 얻은 별명이 슈퍼맨! 어느 추운 겨울, 철교를 걷던 할아버지가 기차가 오자 강물에 떨어졌는데, 119 구조대원이었던 그가 밧줄을 몸에 감고 강물에 뛰어들어 그 밧줄로 할아버지를 구했다. 나는 슈퍼맨, 슈퍼맨이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그런데 지금은 그 밧줄이 죄인을 묶는 포승줄이 되어 자신을 묶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목이 메어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더니 끝내 눈물을 보인다. 나는 안경 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냥 두었다. 옆줄에 앉은 재소자의 감정에 누를 끼칠까 해서다. 낭독을 잠시 멈췄던 그는 다시 차분하게 글을 읽어 내려간다. 자기의 과욕 내지는 탐욕이 슈퍼맨을 거부하여 사업을 하다가 부정을 저지르게 되었는데, 남은 형기 동안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서 반드시 진정한 슈퍼맨으로 거듭나리라고 다짐하며 낭독을 마쳤다. 실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목이‘1박 2일’인 글도 가슴이 찡하다. 아내의 뱃속에 석 달 된 아이를 두고 교도소에 들어 온 지 2년. 특별 외박을 얻어 가족과 함께 지낸 1박 2일 동안의 꿈같은 생활을 적은 생활 수기다. 두 돌이 가까워 걷기도 하고 재롱을 부리는 딸을 번쩍 들어 품에 안으려 하자 마구 울어대어 당황했던 그. 그러나 1박 2일이 지나 다시 헤어질 땐 귀여운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딸. 그는 그 1박 2일의 추억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힘겨움을 이겨낸다고 한다.
그 외에 세편의 글 낭독을 포함한 여섯 편의 글 발표와 시낭송을 마치고 글에 대한 심사평이 있다. 심사평은 내정되었던 선배 수필가가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여 엉겁결에 내가 하게 되었다. 나는 두 시간여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재소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될지 잠시 고민스러웠지만 용기를 가지고 단상에 올라섰다. 나에게 집중되는 수많은 푸른 시선에 마음이 압도되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어 글을 발표한 여섯 사람에게서 받은 감동만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이들의 글을 문학적 장르의 틀에 넣어 이러 쿵 저러 쿵 평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루함에 술렁일 줄 알았던 실내 분위기가 의외로 잠잠했다. 재소자들은 앞에서 받은 감동을 되새기는 듯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내 목소리가 간간이 떨렸다. 나는 ‘글쓰기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지름길이요,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라는 어느 수필가의 말을 인용하며 일기쓰기라도 열심히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름을 떨칠 작가가 탄생되기를 바라고, 그리 될 줄 믿는다면서 말을 맺었다.
어쩌면 나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글을 낭독하는 그들의 모습과 진솔한 글에서 받은 감동이 내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그들은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며 보람된 삶을 향하여 거듭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감했다.
시상식을 끝으로 모든 행사를 마쳤을 때 재소자들이 감사의 마음을 눈인사로 전했다. 그들은 동료들로부터 받은 감동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 가슴 속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는 듯 한 표정이었다. 그 감동의 잔물결을 타고 교도소를 나오는 내 마음이 선뜻 떠나지 못하고 그곳을 맴돌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면서…….(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