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서산시·당진시 지역답사
◇ 당진시 면천읍성 :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930-1(충남 기념물)
- 조선 초에 왜구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평지 읍성(邑城)
당진시 면천읍성(沔川邑城)은 조선 초 1439년(세종 21)에 관아와 면천 읍을 왜구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쌓은 평지 읍성이다. 이 읍성은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전투가 치러지는 등 역사적 사건의 주요 무대이다.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이 진행되어 현재 남문과 옹성, 장청 등이 복원되었으며, 읍성 안에는 1,100년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있다. 고려시대 복지겸(卜智謙) 장군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복 장군 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의 진달래꽃과 안 샘물로 술을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집 앞에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들이면 나을 것이라고 해서 산신령의 말대로 했더니 복지겸의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이다.
마을 사람들은 면천 은행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여겨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목신제(木神祭)를 지내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 군자정을 지나면 연암 박지원이 직접 설계해 지었다는 건곤일초정과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절경인 골정지가 있다.
면천읍성은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3,235자(약 986m), 높이는 15자(약 4.5m)이고, 적대(敵臺 : 망루)가 7곳, 성문이 3곳, 옹성(甕城)은 1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서쪽 성벽 일부의 성 돌만이 남아 있으며, 성 돌에 ‘기미년(己未年)’이라 새겨져 있는 것과 1439년(세종 21)에 이 성을 쌓았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성 돌에 새겨진 기미년은 이 성을 쌓은 연대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면천면사무소·보건지소·노인정·면천초등학교 등을 둘러싸고 있다. 이 읍성은 조선시대 관방(關防) 시설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 당진시 골정지(骨井池)·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 :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714
- 연꽃으로 유명한 골정지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건립한 정자
면천읍성에서 동쪽으로 나오면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이 1797년(정조 21)에 면천 군수로 부임하면서 만든 연못인 골정지(骨井池)와 골정지 내 섬에 세운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주역(周易)’에 밝았던 박지원은 면천(沔川)의 주산인 몽산(蒙山)을 본 후, 산 밑에 샘이 솟아남을 뜻하는 산수몽(山水蒙) 괘(卦)와 어울린다고 보아 1800년에 건곤일초정을 건립하였다. 건곤일초정이란 하늘과 땅 사이의 초정이란 뜻으로 중국 당나라 때 두보(杜甫)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박지원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해결하기 위해 <과농소초 課農小抄>와 <한민명전의 限民名田義> 등의 개혁정책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애민사상을 기리기 위해 건곤일초정을 세웠다고 전한다. 당시에 버려진 연못 한가운데에 돌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 정자를 지었다. 이곳은 인근 면천향교의 유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익히는 장소로 쓰였다.
이 정자는 일제강점기에 소멸하였으나 2006년에 당진시(당시 당진군)가 1억 6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복원하였다. 연꽃으로 가득한 9,900m²(3,000평)의 골정지(骨井池)에 예전처럼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약 33m²(10평) 크기의 초정(草亭)을 지은 후 돌다리를 놓았다.
즉, 골정지는 어리고 몽매한 이들을 잘 가르치고 기른다는 주역의 의미가 담긴 곳이다. 지금은 ‘골정 쉼터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연꽃 탐방 명소가 되었다.
◇ 간월도(看月島) :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섬
이 섬은 피안도(彼岸島)라고도 불렸다.
이름에 '도'(島)가 들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섬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에 천수만 간척 사업으로 인해 간월도 인근에 간척지가 생겨 뭍과 연결됐다.
천수만 간척을 위해 지어진 두 방조제 중 하나인 서산A지구방조제가 간월도 일대로 바로 이어진다.
여기서 물때를 잘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서산시에서 마애삼존불, 해미읍성과 함께 주요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 위치한 암자 간월암(看月庵) 또한 유명하다. 이 암자의 과거 명칭은 피안암(彼岸庵)이다. 삼국시대 당시에는 옛 명칭으로 불리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암자는 한 때 폐사되었다가 1941년에 현재의 구조로 재건되었다.
◇ 서산 버드랜드 (Birdland) :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로 655-73
- 천수만을 보전, 관리하고, 생태 관광의 활성화를 위한 생태공원
서산버드랜드(Seosan Birdland)는 천수만을 체계적으로 보전, 관리하고, 생태 관광의 활성화에 주력하기 위해 충청남도 서산시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서산버드랜드 내에는 철새의 박제 등을 전시하는 철새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천수만에 서식하는 큰기러기, 가창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 200여 종의 철새 표본과 전시자료, 영상자료, 새소리 등이 있다.
◇ 철새박물관
천수만의 새와 숲은 상징하는 조형물의 형태이며, 큰기러기, 가창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 200여종에 가까운 철새들의 다양한 표본 및 전시자료를 접할 수 있다. 4D영상관과 함께 서산버드랜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 4D영상관
천수만의 산을 상징하는 조형물의 형태이며, 4D영화 "날아라 부르르"가 상영된다.
◇ 둥지전망대
배를 형상화한 하부구조물과 역동적인 회오리 모양의 상부 구조물이 철새알을 상징하는 다양한 크기의 원형공간들과 조화를 이루는 전망대이다.
◇ 자생식물원
무궁화동산, 연못, 산책로 등이 조성된 자연생태학습공간이다.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번지 (국보 제84호)
- 은은한 미소를 드러내는 여래 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의 보살상, 오른쪽의 반가사유상
계곡을 가로질러 비탈길을 타고 올라가니 커다란 자연 암벽에 새겨진 서산 마애여래 삼존상 3기의 불상이 오전의 햇빛을 받아 은은한 미소를 드러내고 있다. 불상은 햇빛의 방향,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독특한 표정과 미소를 짓는다.
현재를 의미하는 여래 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의 보살상과 오른쪽의 반가사유상은 각각 과거와 미래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 모습에서 천진스러운 보살들의 웃음소리도 묻어나는 듯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문화관광해설사는 “서산 마애불은 동짓날(올해는 12월 22일)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날 동이 틀 때 여래 불상의 입술이 가장 붉게 빛나면서 아름다운 미소를 드러낸다”고 한다.
얼굴이 복스럽게 통통한 느낌을 주는 서산 마애여래 삼존상은 당시 백제인들을 닮았다고 한다. 이 불상은 백제가 위례성에서 충청도로 수도를 이전한 뒤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모습에서 언뜻 6세기경 백제 성왕(재위 523∼554년)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성왕은 수도를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면서 백제의 중흥을 꿈꾸었던 인물이다. 그는 태안반도를 통해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 양나라와 친선을 맺어 서해 루트를 확장하는 등 백제를 해상강국으로 거듭나게 했고,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는 등 백제 문화 융성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따라서 1400년 남짓 한결같은 ‘백제의 미소’를 보여주는 서산 마애불은 동아시아의 찬란한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서산 마애불에 대해 ‘속세적인’ 해석을 하는 점도 흥미를 끈다. 1958년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이 불상은 ‘산신령’으로 통했다.
“바위 위에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가운데 석가여래상)이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의 작은마누라(미륵반가사유상)가 다리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며 ‘용용 죽겠지’ 놀리니까, 왼쪽의 본마누라(제화갈라보살상)가 짱돌을 쥐고 집어던지려 하고 있슈!”
현지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불상을 바라보노라면 유쾌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는 서산 마애불이 K 문화의 해학적 감각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백제의 미소’가 시대와 국경과 종교를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보편적 미소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자료 : 「동아일보」 2023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