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헐레벌떡 달려 온 지난 날이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헉헉거리며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과속에 치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창조주의 안목으로 보면 인간이 제아무리 발발거리고 뛰어도 시궁창에 사는 하찮은 미물이나 다름없이 꾸물거리는 존재이리라. 그런데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가 되면서 속도가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다보니 현대인들은 속도에 매달려 가혹하리만치 자신을 들볶으며 느린 것을 안달하고 살아간다. 더구나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전국이 두 시간 생활권으로 바뀌면서 이동거리뿐만 아니라 일처리에도 속도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시테크, 아침형 인간 같은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하는가 하면 ‘열심히 부지런히’가 현대인의 모토가 되었다. 그러면 빠른 것은 편리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과속은 일의 능률은 가져왔지만 그 대신 조화로운 생활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느림을 게으르다고 몰아치며, 시간을 줄이려고 속도를 강조하다 보니 우리 민족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 고유의 미풍양속도 예의범절도 잊혀져 간다. 이와같이 어느 시대, 사회에도 치열한 생존경쟁은 천천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마음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면 지구촌에서 가장 근면한 민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아온 한국인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시간에 쫓기다 보니 행복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누릴 여유도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1년 삶의 질을 수치로 발표한 행복지수는 OECD 34개 국가 중 26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속도는 빨라졌으나 속도를 제어할 기능이 없다. 제어기능이 없으니 자고 일어나면 심심찮게 크고 작은 사건사고다. 현대사회는 고속문명이 가져다 준 과속의 충격에 심한 몸살을 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 고속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다.
밀란 쿤테의 소설 <느림>에 보면‘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고 했다. 그리고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ecstasy라고 했다. 엑스터시(황홀경)는 순간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속도는 지속할 수 없는 것이며 적당히 느림 속에 끼어들어야 제 빛을 발한다는 말이다. ‘빨리 빨리’로 대변되는 우리네 정서가 정작 필요한 것을 놓친 어리석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피에르 쌍소는 그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허둥지둥 바쁜 사람들에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전 세계에 느림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투지 않고, 시간의 조급함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관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피에르 쌍소의 말을 따르면 느림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하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느림은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시간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경건하고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바람직한 생활방식이다. 그런데 느림은 우리 시대에 가장 가혹하게 매도되어 온 가치이다. 이제 느림은 매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시간에 쫓기어 잊었던 나를 찾고, 진정한 나의 자유를 찾는 키 워드Key word가 되어야 한다. 빠른 속도만을 떠받드는 사회일수록 시련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성급함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지저분한 시궁창에서 삶을 이어가는 미물은 느림을 불평하거나 삶을 원망하고 남과 비교할 줄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면서도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무엇이든 남보다 빨라야 한다고, 오로지 내 것만 생각하지 않는가. 차라리 미물처럼 때로는 유유자적, 느림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자연의 이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농경문화에서 태어난 우리 문화는 본래 저속문화의 원조라고 할만하다. 밥을 지을 때도 뜸을 들여야 하고, 국도 푹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옛날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속도를 앞세워 날걸로 먹는 유목문화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도를 무시하는 과속의 위험하고 슬픈 광경들을 매일같이 보는 것도 모자라 탐닉하고 있다고나 할까. 속도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지는 모르나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살찌우지는 못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늦게나마 느림의 미학을 몸으로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난 날 성공을 가져왔던 가치들이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한 시대에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고정관념들이 미래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과속의 어지러움으로 팍팍해진 세상살이에 진저리가 나서 하는 말이다. 남들이 모두 뛰어가는 시대에 혼자 사색하며 사부작사부작 걷는 것도 용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기쁨과 설렘으로 행복을 찾아 숨바꼭질하며 “오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고지를 향하여 빠르게 앞으로만 내닫는 사람들은 차근차근 시간을 요리하면서 맛깔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람도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