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 별명은 여러가지이다.
주로 신체상의 외모때문에 생긴 것이 대부분이지만,
기분이 썩 좋은 기억은 없다.
벙어리.
나는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이 나더러 벙어리라고 놀릴 때
왜 그런 말을 해대는 지를 몰랐다.
나는 말을 할 줄 알았으니까...
한참 후에, 그것도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가르친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닐 때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그제서야 내가 어려서 왜 벙어리라고 불렸는 지를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어린 내가 말을 하면 혼을 내었다.
어린 것이 어디 어른들 말하는데 끼어드냐고...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내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들께 유독 혼난 이유를 알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알아 듣겠다고...
혀가 짧다며, 목소리가 안들린다며...
부모님에게, 형이나 누나에게, 친구들에게, 주변사람들에게도
내가 하는 말은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소리를 지르고 혼을 내고...
"무슨 소리인지 못알아 듣겠단 말야!"
"왠 목소리가 그렇게 작아! 크게 좀 말해!!"
그러다보니 친구들이 없고 왕따를 당하고 놀림도 받고 괴롭힘도 당하고...
무척 친한 친구가 있다.
없는 친구 중에 유일한 친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3년만엔가 만났다.
어찌저찌해서 연락처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더니
기겁을 하고 놀란다.
"시골버스야~ 네가 말을 다하다니!
나는 네가 전혀 말을 못하는 줄 알았어!!"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말을 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대입면접시험이나, 직장을 구할 때에도,
필기시험이나 서류전형에는 합격하면서도
왜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지를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면접만 보려하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내 전공은 영문학 외에도 "스포츠의학"이 있다.
서류전형과 영어시험과 면접으로 뽑았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면접관이 5명있었다.
5명의 교수가 두루 돌아가며 질문을 하였다.
뻔할 뻔자 질문에 무난히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5번째 교수가 그런다.
"자신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아마도 자기표현력을 실험하는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말하였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다 붙었는데 나만 떨어졌다.
1년 후에 다시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같은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왜 불합격시켰는 지를...
말을 너무 못해서 말하기 연습을 하고 난후에
응시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대학다닐 때에도 우여곡절끝에 알게된 여학생을 만나
말을 하면 왜 여학생들이 ' 저, 그만 가볼께요.'라며
뒤도 안돌아보고 갔는 지를...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했나보다.
글을 쓰면 늘 누군가와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에 맻힌 아픔과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날이었다.
갈비뼈 수십대가 부러질 만큼 예쁜 여학생을 보았다.
대학에서...
그때는 김희애랑, 고현정, 그리고 채시라가 뜨더만,
뜯어고친 그들의 얼굴을 생얼굴인 그 여학생은
어딜 넘보냐며 싸다구를 때리고도 남을 만큼 예뻤다.
정말 사귀고 싶었지만, 말한마디도 못붙여 보았다.
평생의 슬픔이었다. 어떻게 말한마디 못붙일 수 있지?
매일 그여학생 옆자리에 앉으면서도...
이 주길눔의 주둥이!!
하며 입을 찢어버리려 뒤틀었으나 아프기만 했다.
결심을 했다.
말을 잘해서 예쁜 여자를 꼬셔서 결혼해야지.
어떻게 하면 말을 을 잘할까?
이책저책을 들여다 보다가 한가지 사실을 알았다.
거울을 보고 입을 크게 벌리고 큰소리로 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하라고...
책을 읽을 때고 큰소리로 읽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큰소리를 질러대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대고...
그래도 몸에 밴 습관이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아마도 평생을 노력한듯 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의 구강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혀가짧아서 그런 탓도 있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럴 것이라고도 하였다.
다들 맞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혀가 짧은 모양이다.
성격이 내성적인 탓도 있겠다.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남들보다 힘들고 어렵게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남들은 'How are you?'를 두어번만 말하고도 금방 따라하지만,
나의 경우는 수백번을 말하기 연습해야한다.
감각적으로 혀가 굳어지는 느낌을 늘 받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한다. 그냥 끝없이 노력할 뿐이다.
남들은 한권의 영어소설책을 읽을 때 나는 수십권을 읽었다.
남들 영어단어 10개 외우면 나는 수백개를 외웠다.
남들 영어표현을 한두번 말할 때 나는 200번을 말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영어로 글을 썼다. A4용지 5장이다.
잘 아는 영어원어민에게 보여주고는 틀린 곳 있으면 고쳐달라했다.
영어원고를 끄적거리더니 나에게 내준다. 전치사와 접속사 몇개만 고쳤다.
영어로도 글쓰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이다.
벙어리라고 놀림받으며 지내던 어린시절이 종종 생각난다.
그리고 벙어리라고 놀림받는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너희들은 벙어리가 아냐. 바보도 아냐.
단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뿐이야.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나올 때는 글을 써.
나중에 말을 걸고 싶은 멋진 사람이 나타나면
그 멋진 사람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야.
그럴 때 말하는 법을 배워. 그리고 노력을 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남들보다 늦더라도 남들보다 멋진사람을 사귀게 될거야."
그러고 보니 그리이스이 명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가 생각난다.
그는 어려서 반벙어리였고 놀림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는 심각할 정도로 말을 더듬었으며 폐가 약해
긴 음절이나 문장을 한꺼번에 말할 수가 없어서
말하는 중간 중간에 숨을 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어느날 그는 명웅변가가 되기로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유명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리라.
그는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입 속에 작은 돌멩이를 넣고 발음 연습을 하였으며
호흡을 키우기 위해 가파른 언덕을 뛰어오르며 발성 연습을 하였다.
제스처를 연구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연습했으며 어깨를 추켜올리는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예리한 칼날 밑에서 연습을 하였다.
또한 지식을 갖추기 위해 지하실 서재에서 한 달이 넘도록 독서만 하기도 하다.
그 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려고 머리와 수염을 반쪽씩 깎았다.
또한 문장력을 기르기 위하여 세지데이즈라는 역사가의 저서를 여덟 번이나 베껴 쓰기도 하였다.
그결과 데모스테네스는 그리이스에서 가장 유명한 웅변가가 되었다.
그당시 그리이스에서는 웅변을 잘하는 사람을 왕으로 뽑았다.
왜냐하면 왕이 되려면 다른사람들을 말로써 감동을 주고 설득을 해야하고
지시를 해야하므로 말을 잘하면 사람들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벙어리가 말을 잘해서 왕이 되었다면 그의 노력이 어떠했는 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결과를 놓고 말한다.
과정을 잘 알지 못한 탓이지만,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자기들보다 못하겠지만, 당사자는 죽을 각오로 노력해왔다.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도 그랬을 것이다.
김연아도 위대하고 훌륭하지만, 이희아도 못지않은 까닭이 그것이다.
잘 아는 뇌성마비 여자약사가 있다.
본래 손발이 뒤틀어지고 얼굴이 두부 찌그러지듯 찌그러진 얼굴이다.
본인도 고통스럽고 괴로왔겠지만,
100에 50은 고칠 수 있다는 방법을 알아냈나보다.
운동도 하고 침도 맞고 기공체조도 하면서 몇년을 노력했다.
말을 하려고 유치원생들과 말을 하고
몸을 움직이려고 유치원생들과 운동도 하고...
그러기는 4~5년.
이제는 등산도 잘하고 포크댄스도 잘 추고
말을 할 때면 발음도 명확하다.
언뜻보면 정상인보다 떨어지고 모잘라 보이지만,
그로선 죽을 각오로 노력한 결과이다.
100%는 아니지만, 70%는 달성하였으니
그것을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들은 시지푸스처럼
지겹고 어렵고 고달픈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할테니
그것을 두고 실패한 삶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은 잘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곳이 아니다.
잘나지 않았지만,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곳이지.
근래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추스르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해대지 못하는 일에 무의미하게 매달리지 말자고.
또다른 목숨걸고 노력할 일이 있을 테니 그 일을 찾아보는 중이다.
자기몸을 불살라 또다른 영생을 얻으려는 불사조처럼
슬픔을 불살라 또다른 영원한 위대함을 희구할 때가 되었나 보다.
나이는 들어도 욕망이란 사그러들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대학에서 고현정만큼 예쁜 여학생에게 말한마디 못붙인
반벙어리가 한이 되어 말하기 연습을 한 지 23년 후에
고현정보다 더 예쁜 여자를 말로 꼬셔서 결혼하였다.
알고보니 고현정보다 더 예쁜 그여자는 나보다 말을 더 못했지만...
첫댓글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게다 감동적인 글이라는 말씀까지~ *^^*!
시골버스님 글에서 갈수록 감동이 더 진하게 다가옵니다.^^
제가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상해에 갈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게 읽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
말 잘하는거보단, 잘~ 말하는게 낫구요 그것보단 글이 더 마음에 와 닿는거 같습니다.
미모의 사모님 한번 뵙고 싶네요.^^ (참고로 저는 여성)
저도 글 잘쓰는 분들 참 부럽습니다... 시골버스님의 글은 언제나 공감이 가니까요 !
좋은글에 감사 ....가정에 행운 가득 깃들길 소망하며~~~^^
그동안 좋은선물 많이 주셔서 감사드리며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겠읍니다. 그리고 바램이라면 말 많이 않하셔도 좋으니 한번 뵐수있으면 고맙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