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으로부터 '세대주의'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질문을 받은 것이 벌써 꽤나 날자가 지났습니다. 가능한 빨리 답변해 드리고 싶었으나 여의치를 못했었는데 오늘에서야 답글을 올립니다. 세대주의가 지닌 신학 사상은 오랜 세월동안 늘 연구할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기에 이를 간단히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대주의에서 무엇을 말해야 이해를 도울 수 있는지를 가지고서 한참이나 궁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아래와 같이 답변들 드립니다. 세대주의에 대한 설명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일부조차도 보다 더 충실하게 내용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을 갖습니다. 우선 이 정도의 설명으로 답변을 드립니다만 언제 기회가 되면 더 살펴서 내용을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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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世代主義 ; Dispensationalism)
세대주의(世代主義/Dispensationalism)는 '시대주의'라고도 말합니다. 세대주의의 기원은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교부 시대의 교회로 거슬러 올라가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이 세대들(dispensations)에 대해서 말했었다고 하지만, 대체로는 19세기에 일어난 플리머드 형제 운동(Plymouth Brethern Movement)의 한 지도자인 다비(Hohn Nelson Darby, 1800-1882)에서 찾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갖고 오신 방법이 시대마다 각각 달랐다고 말하는데 우리 나라 교회가 갖는 종말관(내세관)은 이 세대주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부흥집회나 사경회를 지칭하는 일부 집회에서 강론하는 종말론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이 세대주의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큼 우리 나라 교회에서 많은 교회가 이 세대주의에 의한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주의는 불건전한 신학 사상입니다. 이러한 세대주의는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천년왕국과 관련하여서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실은 두 가지와 관련하여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역사관(시대관)에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천년왕국에서입니다.
Ⅰ. 세대주의의 역사관(시대관) 이해
세대주의는 구약과 신약의 전 시대를 6천년으로 봅니다.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의 기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1천년의 기간이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모두 7천년의 기간으로 역사(시대)를 이해합니다. 이러한 세대주의적 견해를 갖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장차 앞으로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진행될 천년왕국의 시기로 보는데 따른 것으로 그 기간을 문자적으로 계산하여서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으로 구분하고 이를 전시대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이 역사관에 의해서 인류 역사를 구분하는데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다른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시행하셨다는 견해를 갖습니다. 그러니까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세대'[시대] 라고 하는 것은 구분되는 각 시대에 특정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들이 성경을 가지고 나누는 시대의 구분은 다시 모두 일곱 세대로 되어 있습니다.
1. 무죄(無罪) 세대 : 죄가 없던 때의 세대(창 1-2)
2. 양심(良心) 세대 : 양심을 발견한 때의 세대(창 3-7)
3. 인간정부(人間政府) 세대 : 인간 스스로 통치하던 세대(창8-11)
4. 약속(約束) 세대 : 약속이 주어진 세대(창 12장-출 18장)
5. 율법(律法) 세대 : 율법이 주어진 세대(출 19장-말 4장)
6. 은혜(恩惠) 세대 : 교회가 세워진 세대(마 1장- 계 19장)
7. 왕국(王國) 세대 :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 시대인 천년왕국 세대(계 20-계 22장)
세대주의가 세대를 7천년이란 기간의 역사관에 의해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로 특정하게 구분하여서 나누는 견해를 갖게 된 것은 스코필드 성경(New Scofield Bible, 1967; 1909년도 판의 개정판인 이 책은 9명의 지도적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위원회에 의해서 편집된 것으로 현시대의 세대주의를 대변한다)의 영향에 따른 것입니다. 스코필드는 소책자인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구분함'(Rigbtly Dividing tbe Word of Trutb)에서 "성경은 시간(time)을 보통 '시대'<한글 개역성경에는 '경륜'으로 표기되고 있음. 엡 3:2>라고 불리우는 각기 다른 일곱 시대로 구분한다<여기서 시간이란 말은 아담 창조로부터 요한계시록 21장 2절의 '새하늘과 새땅'에 이르는 전 기간을 의미한다)고 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기본 사상은 스코필드 성경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코필드 성경은 세대[시대]를 정의하기를, "인간이 하나님의 뜻의 어떠한 구체적 계시에 대해 그들의 순종을 시험받는 일정한 시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각 세대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다른 방법으로 나타내곤 하시지만 이 시대들은 결코 구원을 위한 별도의 방법들은 아니다. '각각의 세대 동안에 인간은 오직 한 방법으로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즉 십자가에서 성취되고, 부활 사건을 통해 증명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만이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다.' "라고 말합니다.
세대주의가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이라는 시대 구분에 의한 역사관을 가지고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시대]에 의한 구분을 갖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죄와 그 책임 문제를 다루어 가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그 세대에 살던 인간들에게 각각 다른 계획과 다른 역사(役事)를 하신 것을 발견한다는데 따른 것입니다. 세대주의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사람에 관한 자기의 의지를 변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각 세대의 구분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는 각 세대에서 언약을 주심을 통해서 각각 다른 계획과 다른 역사를 펼쳐나가시지만 결국은 실패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세대를 심판하시며 이에 따라서 각 세대는 심판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세대에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려 나가실 필요를 갖고서 이를 새로운 언약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알려 나가신 것이며 이것에 의해서 일하여 나가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럼에도 각 세대에 주어진 언약들 중에서 어느 것도 성취된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언약은 이스라엘을 위한 언약으로서 장차 올 천년왕국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는 완전히 성취될 것이 아닌 언약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가령 구약 성경의 많은 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다가올 세계인 미래의 어느 때에 다시 한번 가나안 땅에 모여들게 될 것이고, 다윗 왕국에서 보는 번영과 축복의 시대가 찾아오며, 그 나라는 열방 위에 있어서 특별한 권한을 갖는 지위를 얻을 것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의 자비로운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이 약속들 중 어느 것도 아직 성취된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약속들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 기간 중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통해서 구속 사역을 해 나가신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유대인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제시하였는데 이 왕국은 구약 예언들의 성취 속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상적 통치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이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산상보훈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높은 도덕적 기준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거절했고 배척했으므로 이 왕국의 최종적 건립은 천년왕국 시기 때까지 연기되고 있는 상태 속에서 그동안 신비 속의 왕국을 형성하는 가현적 교회의 시대가 펼쳐져 나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신비 속의 왕국을 형성하는 가현적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하는 것으로서의 교회 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돌아오는 때인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교회는 유대인들이 실질적 형태로서의 왕국을 거부하고 배척했기 때문에 이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우시기 시작한 것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유대인들을 회복하는 그러나 특별히 이방인 신자들을 모으는 기간으로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에 의하면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모음'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휴거를 위해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상태로 있다가 천년왕국 시기를 맞이하는 것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기간을 통해서 최종 상태인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여서 이곳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신자들이 들어갈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Ⅱ. 세대주의의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 이해
세대주의의 역사관은 시대를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에 의한 7천년 기간으로 보면서 각 세대에서 실패해 온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천년왕국 기간에서 맞이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시작되는 천년왕국에 이들이 가진 신학 사상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가 갖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과 천년왕국 기간에 어떤 일이 있게 되는지에 대한 견해가 독특합니다.
세대주의는 '전천년기'(Premillennialism)를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를 놓고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데 따른 구분입니다. 그러니까 전천년기는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 견해입니다. 천년왕국은 무천년기(Amillennialism), 전천년기(Premillennialism), 후천년기(Postmillennialism)의 세 가지 학설이 있으며, 세대주의는 이 중에서 전천년기를 택하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학설이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것은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을 각기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천년기에서 Millennium은 ‘천년동안의’이라는 기간적 의미를 갖는 신학 용어인데 여기에 왕국이라는 독특한 특정 사상의 견해를 갖게 되면 'millennialism'(천년왕국주의, 천년왕국설)이 됩니다. 이때 '천년동안의’기간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면, 그래서 숫자적 기간의 의미를 갖지 않는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와 재림을 말하면 '무천년기'(Amillennialism ; 제이 아담스는 'The Time is at Hand'에서 무천년기라는 용어는 '실현된 천년기론<realized millemmialism>이라는 표현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필자도 동의합니다. 그것은 무천년기라는 용어보다는 실현된 천년기란 용어가 사실은 무천년기의 의미를 보다 더 정확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천년기라는 용어가 천년왕국에 대한 일반적인 신학적인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만큼 일부러 무천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실현된 천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무천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것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실현된 천년기라는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 듯 여깁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는 천년왕국 전기에 출현하는 설이면 '전천년기'(Premillen-nialism), 후기에 출현하는 설이면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이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왕국이 '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통치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놓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천년기설은 서로 다르게 나뉘어집니다.
이 중에서 세대주의는 '전천년기'를 주장합니다. 그런데 전천년기는 세대주의에서만 주장하는 신학 사상은 아닙니다. 전천년기에는 '역사적 전천년기'(Historic Premillennialism)가 있습니다. 이 둘은 다같이 전천년기를 말하면서도 또한 명확히 서로 구별이 되는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기는 개혁교회가 지녀온 천년왕국에 대한 신학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필자는 개혁교회가 지녀온 천년왕국에 대한 신학 사상으로 역사적 전천년기와 함께 다루어지고 있는 천년기설에서 '무천년기'<무천년왕국>를 지지합니다.그것은 '무천년기'가 다른 천년기에 대한 견해보다 보다더 근접된 성경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다른 천년기설(특히 무천년기설)과 함께 끊임없이 비교 연구하면서 어느 것이 보다 더 성경적 관점에서 말해지고 있는 견해인지를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주의 전천년기는 개혁교회가 지녀온 천년왕국에 대한 신학 사상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이장림의 다미선교회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의 재림일을 말하며 휴거를 준비한다는 등 교회에 큰 해악을 끼쳐왔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전천년기에 있어서 여기서는 역사적 전천년기와 세대주의 전천년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들이 갖는 신학 사상의 차이를 다루지는 않고 다만 세대주의가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것이므로 세대주의 전천년기만을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천년왕국
세대주의는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천년'을 문자적 숫자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천년 기간'으로 봅니다. 그리고 천년 기간을 '왕국' 기간으로서의 개념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4절),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6절)고 부활한 신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할 것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며 여기서 '천년'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라틴어 'millennium'는 1천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를 번역한 것으로 그 단어가 왕국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왕국은 출애굽 이후 등장하는 이스라엘 왕국이 보여주고 있는 '중보적 왕국'(中保的王國)이, 그러나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중지 혹은 정지 상태에 놓여 있어 연기되고 있는 이 중보적 왕국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심으로 비로소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
세대주의는 '역사적 전천년기'와 마찬가지로 '전천년기'의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계해서 연대기적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역사적 전천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이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나며, 그리스도의 재림 후 1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후에 최종의 상태인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있게 되는데 이는 두 단계에 걸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게 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신자들은 변화 받아 영화롭게 되어서 다같이 함께 휴거[하늘에 들어올림]되어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한 후[혼인잔치에 참여함]에 그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왕국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세상을 통치하고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천년왕국의 통치 기간에 사단은 결박당하여 무저갱 속에 갇혀 있게 되지만, 구약 성경 이사야 65장 17-25절에 예언된 것처럼 자연은 그 본성이 회복된 상태에서 평화와 의가 충만한 세계를 이룹니다. 이때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메시야로 믿어 구원을 얻는 개종이 있게 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서 이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중건되나 제사 제도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복음 전파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왕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사단은 잠시동안 놓이게 되어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려 나가는 통치를 거스르기 위하여 민족을 선동하고 모반을 일삼고 돌아다니는데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미혹 받아 추종의 세력을 이루어 반역의 무리를 형성하게 되지만 결국은 하늘로부터 떨어진 불로 멸망하게 되어 마침내 사단은 불못에서 최후의 운명을 맞게되고 그 뒤를 이어 악인이 최후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에 처해짐으로써 사단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신자 -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 - 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실질적인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룹니다.
이런 역사적 전천년기에 반해 세대주의 전천년기는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대주의 전천년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7년 대환란을 거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전천년기는 7년 대환란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교회가 놓인 상태인 상징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70이레를 천년기설과 연계해서 보면서 아닥사스다왕이 예루살렘성의 재건령을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 받은 왕 그리스도가 끊어지는 때인 신약 시대의 시작 전까지를 69주(483년)가 지난 것으로 보며, 이제 남은 1주를 신약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세상 끝나는 때까지로 해석하여서 남은 1주를 그리스도가 끊어진 시간부터 세상 끝까지 즉 신약 시대 전체를 7년으로 보고 이를 환란 기간으로 다루면서 이때 세상 끝날 직전에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시대 전체를 7년 대환란의 기간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고 여기에 교회가 놓여져 있으며 이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하실 때 휴거되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들을 데리고 함께 지상재림 하여 천년왕국에 참여시킨다는 해석인 것입니다.
반면에 '세대주의 전천년기'에 의한 천년왕국의 시작은 좀 이해가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방식에 있어서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단일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 단계의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해석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 전천년기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과 여기에 따르는 신자들[교회]의 휴거 사건[공중 혼인잔치]이 일어나고서 이 휴거에 함께 하지 못하고 남은 자들에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7년 대환란을 일으킨다고 이해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 7년 대환란의 기간에 예수님의 공중재림을 목격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환란을 통과한다고 봅니다. 세대주의자들의 문자적 7년 대환란설도 다니엘서에 나오는 70이레를 염두에 두고서 갖는 이해인데 7년 대환란의 시점을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성도의 휴거 직후로 보는 것이 역사적 전천년기와 다릅니다.
세대주의가 갖는 천년왕국은 7년 대환란을 거치고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7년 대환란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하여 계신 기간이며 또한 휴거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하여 있는 기간입니다. 한편 7년 대환란 기간에 휴거되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대환란을 겪습니다. 이 환란의 기간 중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격한 유대인 중에서 이스라엘의 선택된 남은 자 144,000명이 회심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데 7년 중에서 절반인 3년반(1,260일) 동안 이들에 의해서 복음이 증거됩니다. 그렇게 해서 3년반이 끝나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대환란을 일으키며 일곱 대접 재앙이 쏟아집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 보호를 받는 혜택을 입고 살아남습니다. 이렇게 해서 3년반이 다시 끝나 모두 7년의 대환란이 끝나면 공중재림 하여 7년간 공중에서 혼인잔치에 참여한 그리스도가 신부된 신자들과 함께 지상재림 하게 되는데 3년반의 기간 동안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여 지상재림 하시는 그리스도와 합류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람들은 변화 받은 영화로운 몸으로 천년왕국에 참여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구약의 제사 제도와 절기와 금식일을 회복하여 다시 제정하여 지키는데 기독교인 예배자들에 의해 기독교 정신으로 시행을 합니다. 그렇지만 지상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못하여 현 육체 그대로를 지닌 자들은 그 육체 그대로 천년왕국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육체로 천년왕국에 참여한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천년이 끝날 즈음 사단이 잠시 결박에서 풀려나 사람들을 크게 미혹하여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만들어 최후의 반란을 일으킬 때 따르고 마침내는 최후의 심판을 받아 사단과 함께 영원히 불못에서 멸망을 당합니다.
Ⅲ. 세대주의에 대한 비평
지금까지 세대주의가 가진 '천년기'에 대한 신학 사상을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라는 두 단계에 의한 재림 방식에 의하여 펼쳐지는 내용에 의해서 다루었습니다만 실은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휴거, 7년 대환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어린양의 혼인잔치, 곡과 마곡의 전쟁(1, 2차 전쟁), 적 그리스도의 통치, 아마겟돈 전쟁,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다루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본 글이 논문의 성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대주의가 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 말하여 이해를 돕는 본 글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세대주의의 자세한 이해는 이에 관하여 기술한 전문적인 서적에서 도움을 받도록 하시기를 바라고 세대주의의 역사관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천년기설에 대한 이해로 세대주의에 대한 설명은 마치고 이제 세대주의의 전천년기에 대한 비평을 하고자 합니다.
1. 세대주의 역사관 비평
세대주의는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에 의한 7천년의 시대로 전시대에 대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의 세계가 역사 속에서 가져온 시대는 7천년 이상입니다. 세대주의가 말하는 7천년은 성경에서 계산하게 되는 연대의 수치를 천년기를 포함한 인류의 역사 또는 지구의 나이로 뜻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역사를 7천년의 시대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현재에 이르는 세계의 역사는 그 연대가 6천년에 불과할 만큼 짧은 것이 아닙니다.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구약 4천년과 신약 2천년은 지금 인류의 역사를 6천년으로 규정하는 것인데 이를 성경의 연대기에 따른 것일지라도 이는 단지 구원의 역사를 원리적으로 계시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연대기만 말해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지 실은 그 이상의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의 시대 구분에 의해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렇게 시대를 일곱 세대로 구분하여 왕국 세대로 집중되는 세대주의의 이 역사관은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언약적 관점에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언약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점진적 발전성을 띠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은 세대주의에서는 실패한 언약사가 되지만 실은 보다 더 풍성한 계시를 담고서 일관성 있고 통일성 있는 언약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약속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 이르는 역사의 진행 속에서 점진적으로 보다 더 구체적으로 계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으로 구분되는 각 세대 속에서 실패한 언약사가 최종적으로는 천년왕국 시기를 통해서 성취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펼쳐지는 역사 속에서 예언에서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통일성 있게 성취된 언약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사는 일곱 세대로 단절된 적이 없이 예언을 통해서 점진적 발전성을 띠고 통일성 있게 진행되어 와 성취된 것입니다. 이를 계단적 점진행정(漸進行程)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다윗과 모세와 그리스도에 이르는 역사를 언약집행의 계단적 점진행정의 관점에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2. 세대주의의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 비평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는 '천년'은 그리스도의 통치 개념에서 말해지는 것으로 '천년왕국'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지라도 이것이 지상에서 갖게되는 왕국으로서의 '천년왕국'을 뜻할 수는 없습니다. 그 까닭은 이곳에서 언급되는 천년이란 용어는 독자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의 내용인 17-19장과 연계해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있게 되는 음녀로 묘사되고 있는 바벨론(요한계시록이 묵시 계시로 주어질 때는 바벨론이란 이름이 로마를 상징하지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의 해석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세상 나라를 의미합니다. 세상 나라는 절대적 강국과 영원한 나라가 없으니 한 나라의 등장과 흥함 속에서 한 나라는 쇠해지고 망합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의 성격입니다. 그리고 최후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서 세상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의 멸망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리고 20장에서 용으로 나오는 사단의 결박의 관계에서 다루어지며 그리고 교회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기쁨에 있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한 후 천년이 찰 때 있게 될 최후의 심판에 의한 멸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의 견해로 이해되어지고 있는 천년기는 세상 나라가 멸망해 나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으며 또한 사단의 결박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천년기의 '천년'은 세상 역사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기간이며 이는 지상 왕국의 기간이 아닌 상징적이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 실현된 영적인 왕국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천년기는 지상 왕국의 개념을 띠지 않으며 문자적 수치에 의한 기간의 개념을 띠지 않습니다.
더욱이 세대주의가 말하는 천년왕국이 문제 있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재림이 공중재림의 방식과 지상재림의 방식에 의해서 있은 후의 천년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붙어있는 자와 함께 임하여 통치하시는 세계이면서 또한 땅에 육체로 있는 자들 중에서 회심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하고 절기를 지키며 금식일을 갖는 등 종교생활을 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게 하는가 하면 여전히 배교하는 자들이 있는 세계의 모습인 세상 나라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시작으로 사실상 달라진 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목격한데 따른 유대인의 개종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재림 전의 세계와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 나라의 멸망을 가져오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이미' 실현되어 있으나 '아직' 미래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 나라가 '이제' 완성된 것임에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이 전파되어 비로소 세상 끝날이 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나고 그 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세상인 천년왕국이라는 괴이한 논리를 갖습니다.
다음으로 세대주의 전천년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을 보겠습니다. 세대주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의 두 단계로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두 단계는 역사적 전천년기에서 말하는 단일적 사건이 아니라 공중재림으로부터 지상재림까지는 7년 대환란이라는 기간의 간격이 있으며 지상재림으로부터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는 때까지는 1천년이라는 기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에 관한 문제이므로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 갖는 두 단계에 의한 재림이 갖는 문제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크게는 두 번 있게 됩니다. 첫 번째는 성도들을 위해서 있는 공중재림입니다. 공중재림을 성도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중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신자[교회]를 휴거시켜 공중으로 들림 받게 하여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지상재림입니다. 이 재림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휴거하여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한 성도들과 7년 대환란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킨 땅위의 변화 받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 오시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천년이 찰 때 다시 한번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자들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다루어지면서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가 주어집니다만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는 두 단계에 의한 재림 방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예수님 자신은 두 단계에 의한 재림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장 11절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씀하여 오직 한번 하늘로 가신 예수님께서는 또한 단 한번 다시 오실 것임을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어서 공중재림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 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재림 방식에 있어서 공중재림을 할 것을 해 주는 것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본 내용을 보면 아는 것이지만, 바울은 성도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린 듯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기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죽어서 세상을 떠난 모든 성도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있다고 해서 큰 소리 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살아있다고 해서 죽어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땅위에 아직 살아 있는 자들도 다 함께 구름에 싸여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살아있다고 해서 죽은 자들보다 먼저 주님을 만나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을 함으로써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은 그 몸이 변화를 입고 재림하시는 주님께로 가 그와 함께 연합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고 있는 설명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동시적인 사건이요 단일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재림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다시 오신다는 것을 표현하는 묘사이며, 공중에서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땅에 있는 성도가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으로 간다는 것에 대한 표현의 묘사입니다. 그런 것이지 공중이라는 하늘적 공간의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공중재림의 언급과 함께 지상재림의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 공중재림을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뚝 떨어진 다른 곳에서는 또 지상재림을 언급하여 재림의 방식이 두 단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재림이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에 의한 두 단계에 의한 것일 경우는 공중재림이 언급되고 있는 곳에서 지상재림도 언급이 되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같은 곳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에서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오실 때 성도가 죽어 있든지 아니면 살아있든지 간에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하려고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죽은 자로 있거나 아니면 살아 있거나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얻고자 하는 생명을 이미 얻음으로써 더 바라고 얻고자 하는 것이 없는데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말해주고자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언급하시며 또한 그 주님께서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성도를 이끌어 함께 있게 하신다는 것으로 성도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에 의한 두 단계의 방식으로 임한다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부활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Ⅳ. 글을 맺으며 남기는 말
답변을 해 나가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한이 없게 여겨졌습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마도 장문의 논문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만큼 해야 할 말이 많은 것이 세대주의가 갖는 천년기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선 세대주의에 대하여 질문한 님께서 답글을 오랫동안 기다리셨기에 이 정도에서 답변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언제 기회를 가질 때마다 보다 자세히, 그리고 추가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을 보충함으로써 더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세대주의가 갖는 역사관 이해와 천년기설을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에서만 일부 설명을 한 것이지만 이것으로서도 세대주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대략적으로나마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목사님의 명쾌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평안 하시길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