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글/사빈 이은자
내 손에 연필이 쥐어지면
주변은 온통 낙서장이 된다
지렁이가 기어 다니고 지네발이 춤을 춘다
겹쳐지고 포개지다 튕긴 문구 하나에
굵은 눈물방울이 철퍼덕 엉덩방아라도 찧는 날이면
누구 하나 죽여 놓아야 끝이 난다
볼록렌즈 속에 갇힌 문구 하나
퉁퉁 불어 널브러지면
볕 좋은날 보송이 말려야 하는데
앞뒤에 붙은 새로운 수식어가
이젠 너무 무거워 엄두도 못 낸다
다시 새겨 놓으면 될 테지
그래도 참 다행이다
세상이 다 내 낙서판이니
그려 넣고 써 넣고 싶을 때
맘대로 행할 수 있는
그런 버릇하나 생겼으니
그렇게 토해 내다보면
하루하루
내일
또 내일을 덮어 가겠지
첫댓글 나와 인생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시인의 낙서쓰기에 의해 그 형상화에 의해 희화화되는 것이 통쾌하다는 느낌을 줌니다. 금강경에 세상만사는 우리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위의 시기 그 엄중한 경구를 쉽게 시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합니다. 제 3 연에 보이는 겸손함이 제 4 연의 결의에 의해 뒤집히는 반전이 참 좋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