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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무예 여행 스크랩 고수를 찾아서 <16> 국제공권도협회 차병규 회장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251 13.08.31 11: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수를 찾아서 <16> 국제공권도협회 차병규 회장
"돈에 자존심 구기지 않는 이가 진정한 무술인"
일본의 산 속에서 극한수련하며 공권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 IMF 사태 후 어려워진 협회 정상화 위해 고물상일도 마다않아



한 달 가량 도장에서 운동을 하던 거구의 한 관원이 대뜸 "공권도라는 게 뭡니까"라는 질문을 해 왔다.

타 무술 4단의 실력자인 그는 술을 한 잔 걸친 상태였다. "오랫동안 운동을 한 나도 모르겠는데 겨우 한 달 해본 네가 어찌 알겠느냐"는 답을 던지자 그 관원은 대련을 부탁했다. 술 깬 뒤 다시 오라고 타일러 보낸 바로 뒷날의 대련에서 큰 아픔을 맛본 그는 한동안 도장엘 나오지 않았다. 얼마 뒤 다시 도장에 온 관원은 여전히 불량했다. 더 이상 참아서는 남아 있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힘들 터.

수도로 아문(목 뒤의 목뼈 셋째 마디와 넷째 마디 사이가 되는 오목한 곳)과 귀쪽 사이를 내리쳤다. 단 한방이면 충분했다. 졸지에 기절을 한 관원은 30여 초가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후 그는 솔선해서 도장 청소를 하는 등 그야말로 개과천선의 길을 걸었다.

"무술은 살법(殺法)과 활법(活法)으로 나눕니다. 인체에는 팔불타(八不打)라고 해서 때리지 않아야 할 치명적인 여덟 군데 급소가 있습니다. 또 인체는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살(煞)의 오르내림에 따라 약한 부위가 생기게 됩니다. 그 시점에 그 곳을 때리면 죽고 마는 곳이죠. 예를 들어 오전에는 특정 부위를 맞아도 멀쩡하다가 오후에는 그 곳을 맞으면 생명이 위험해 진다는 뜻입니다. 무술을 하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차병규 국제공권도협회 회장이 재빠른 자세로 다리를 걸어 상대방을 넘어뜨리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기본자세를 취한 모습. 날카로운 눈매에서 고수의 체취가 묻어난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공격이 곧 방어

차병규(54) 국제공권도협회 회장. 우리나라에 공권도를 처음 도입한 차 회장을 처음 만난 곳은 뜻밖에도 비철금속이 가득 쌓여 있는 대구시 외곽의 한적한 곳이었다. 비철금속업. 쉽게 풀이하자면 고철을 수집하는 일. 전화로 위치를 묻는 기자에게 차 회장은 "고물상을 찾아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무술 고수와 고물상. 쉬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궁금증은 차 회장이 말문을 열면서 풀렸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전에는 전국 16곳에 시·도지부를 세울만큼 공권도가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후원기업도 꽤 많았고요. 그런데 IMF가 시작되니 후원이 뚝 끊기더군요. 협회를 더 이상 운영하기가 어려워져 결국 고물상업을 시작했습니다. 협회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후원을 받으려면 거지 취급을 당하기 일쑤고. 제자들에게 베풀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느 정도 돈을 벌면 협회에 넣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식들에게도 분명히 이 말을 했습니다."

사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고철수집 분야도 초보자가 뛰어들기에는 녹록지 않은 곳. 주먹 꽤나 쓴다는 이들이 적지 않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칼을 든 다섯 명을 한번에 무릎 꿇린 적도 있는 차 회장에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차 회장은 "그들이 지금은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인사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7살 때 당수를 시작한 차 회장이 공권도를 접한 것은 합기도도장을 하던 20대 때. 공권도의 창시자인 일본인 다이몬지 사부로를 우연히 알게되면서부터다. 중국무술과 가라테 등을 수련한 다이몬지 사부로는 38살때까지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대련을 요청하는 이른바 '도장깨기'를 한 실전무술인.

차 회장은 1980년부터 1989년까지 한 해 평균 8개월 가량을 일본에 머물며 스승으로부터 직접 공권도를 사사했다. 각오를 다지기 위해 삭발까지 했다. 훈련은 주로 후쿠오카의 산 속에서 이뤄졌다. 시내 구경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훈련은 엄격했다. 고된 훈련의 성과 때문인지 차 회장은 1987년 일본에서 열렸던 프라이드의 전신격인 격투기대회에 참가해 우승하기도 했다. 무체급으로 진행된 이 대회에서 신장 170㎝의 차 회장은 거구의 상대를 차례로 물리쳐버렸다. 우승 덕분에 차 회장은 적지않은 상금을 손에 넣었다.

"공권도는 유(流:흘려 보내고) 기(氣:힘을 모아서) 원(圓:둥글고) 유(柔:부드럽게) 강(强:마지막에 강하게 친다)의 원리로 이뤄집니다. 상대가 들어오면 이를 흘려 보낸 뒤 공격을 하는 겁니다.쉽게 도리깨질을 생각하면 됩니다. 도리깨는 가볍게 휘두르지만 엄청난 힘을 낼 수 있지 않습니까. 또 공권도는 공격이 곧 방어입니다. 상대의 주먹이나 발이 들어오면 막음과 동시에 물 흐르듯 공격이 가해집니다."

차 회장이 공권도의 본격적인 보급을 위해 도장을 개설할 무렵에는 외부로부터의 도전도 많았다. 20여년 전 대구의 팔달교나 지금은 없어진 비산동의 오스카 극장 주변에는 차 회장의 말마따나 '별난 애들'이 적지 않았다. 차 회장은 "체육관을 하려면 대차야 한다"며 "건달들을 장악하지 못하면 도장을 할 수 없었다"며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를 넌지시 들려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 않습니까. 지금은 누구와 싸울 수가 없죠. 그냥 웃으면서 맞아야죠. 자꾸 참아야 합니다. 힘이 없다면 울면서 맞아야겠지만 힘이 있으면 맞으면서 웃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누군데…' 하다 보면 사고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무술인은 거짓말 않아야

제자가 운영하는 공권도 도장에서 차 회장이 도복으로 갈아 입고 사범과 나란히 섰다. 크지 않은 체구지만 위엄이 느껴진다. 사범의 공격이 시작되자 부드럽게 받아 넘긴다. 몸을 돌려 피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공격으로 연결된다. 주먹을 막는 듯 하더니 지체없이 반격동작으로 돌아선다. 동작도 간결하다. 그러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상대의 가격을 흘려 보낸뒤 강하게 친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상대방과 마주한 순간 차 회장이 갑자기 자세를 낮추는듯 하더니 잽싸게 사범의 장딴지 부분을 걸어 발로 감아 넘어뜨린다. 이어지는 공격으로 대결은 끝. 근데 문외한의 눈으로 언뜻 보기에 어설픈 자세. 설마 저런 공격에 걸려 넘어지겠는가 싶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련이니 살살 하는거 아닐까.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차 회장이 기자를 부른다. '까짓거, 다리에 힘주고 한 번 뻗대보지 뭐'라는 생각으로 차 회장 앞에 섰다. 그런데 웬걸. 버티기는 고사하고 장딴지를 강타하는 단 한 번의 공격에 속절없이 앞으로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관원들이 보고 있어 괜히 머쓱해졌다.

"공권도는 타격 부위에 따라 공격방법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발차기의 경우, 상대의 허벅지를 때릴 때는 발등을 사용하고 옆구리를 가격할 때는 발을 꺾어차야 합니다. 또 옆차기를 하려면 엄지발가락을 당긴 상태에서 발날을 이용해야죠. 이는 타격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무술도 비슷한 방법으로 차기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차야하는지를 가르치는 사람도 모른다는 겁니다.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기 때문이죠."

무술의 원리를 안다는 것은 실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체구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몸이 빨라야 하겠지만 그 보다는 어디를 어떻게 쳐야 효과를 볼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친김에 차 회장은 무술계의 달갑지 않은 행태에도 일침을 놨다. 얼마 되지 않는 초청비 때문에 무술단체들이 격이 떨어지는 지자체 행사에 앞다퉈 참가하는 꼴이 눈꼴 시어서다. 최근 어느 지자체의 축제에서는 무술관련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이 무술단체 대표에게 좌석조차 배려하지 않는 횡포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그 수모를 당하고서도 재정이 어려운 무술단체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는 것. 또 관원 모집을 위해 자신들의 무술을 과대포장하는 것에도 마뜩잖은 심정을 드러냈다. 족보조차 찾기 어려운 무술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 '민족 고유의 무예…' 등 허황된 말들을 들이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술인은 죽더라도 찍하고 죽어야 합니다. 무술인은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돈 몇 푼에 자존심을 구겨서는 안되죠. 또 정말로 무술인은 제자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공권도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무술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역사가 짧은 데다 IMF 사태의 영향 탓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권도에 대한 편견도 한몫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권도라는 이름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뭔가 다가서기 힘든 무서운 무술이 아니겠느냐는 지레짐작을 한다. 그래서 차 회장은 제자들이 도장을 열 때 공권도 외에 다른 무술의 이름을 다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있다. 공권도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서다.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알 수 있다는 가공할 내공을 가진 차 회장.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현재 고등학생 신분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중도에 포기했다가 다시 입학을 했다. 차 회장은 지금 2학년 수업을 듣고 있다. 졸업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대학에 진학한다는 계획도 세워둔 상태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잘되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회를 활성화시킨 다음 연수원을 건립해 제자들을 키우는 것이 남은 꿈입니다."


# 가라테와 중국권법 장점 모은 무술

- 공권도란

일본인 다이몬지 사부로가 1973년 가라테와 중국권법의 장점만을 뽑아 만든 실전 추구 무술이다. 사부로는 기존의 가라테가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유연성이 부족한 반면 중국권법은 부드러운 대신 파괴력이 모자란다는 점을 감안해 두 무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파를 창시했다.

현재 공권도는 세계 38개국에 퍼져 있으며 우리나라 수련 인구는 2만~3만 명으로 추산된다. 정권찌르기 손날막기 발차기 등의 기초부터 시작되며 초단과정의 기본형을 마치면 봉술 검술 쌍절곤 등 고단자용 무기술을 배우게 된다.

권(拳) 장(掌) 손목 팔꿈치 발 등 급소를 뺀 신체의 전부를 무기로 사용하는 공권도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 특징이다. 일반 무술처럼 상대의 공격을 방어한 뒤 가격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막는 움직임이 곧바로 공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드 등 일본에서 열리는 이종격투기 시합의 선수들 가운데 공권도 수련자가 많다.

1987년 사회단체로 등록한 국제공권도협회는 지난 1991년 사단법인이 됐다. 협회는 현재 대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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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三流人生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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