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남대문
문 남선
조간신문 일면을불타는 남대문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국보 1호남대문이 불타 버렸다. 어제 저녁 남대문이 불타고 있다는 뉴스 속보를 접한 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약간의 손상만 입고 즉시 진화되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만 했었다. 왜냐면 남대문은 도심 한 복판의 대로 중앙에 소재한 그리 높지 않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대문은 전손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몽땅 타버렸다. 남대문 화재 소식을 접한 순간 김동인의광염 소나타가 생각나며 100% 어떤 미친 사람의 소행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은 바로 상식을 벗어난 규제의 틀 탓에 초기 진화를 놓쳐버린 일이었다.문화재에 화재가 일어났을 경우 문화재의 손실을 막기 위해 소화기 대신 물을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50여 대 이상의 소방차가 동원되어 즉시 화재 진압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규제때문에 화재 진압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인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잘못 된 규제는 바로 잡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문화재 담당 직원이 문화재 관리청과 협의를 하는 동안 이미 상황은 끝나버린 뒤였다 한다. 참 답답하지 않은가? 이런 경우를 두고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하나보다. 솔직한 심정으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이럴 땐 차라리 무식한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옷을 벗기를 각오한 누군가의 용단이 없었던 점도 문제였고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에게 전권을 일임하는 예외조항은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런 규제가 만연한 현 여건에서 소방대원들만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재 화재라 해도현장 상황을 가장 잘 판단 할 수 있는 소방대장에게 전권을 준다.는 특별 조항 하나쯤 만 있었더라면 …….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일상에서 특히 관공서에 가보면 쓸데없는 규제 때문에 속상한 일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상식과 규제가 공존할 때 내 생각은 상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은 끄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보고불을 물로 끌까요? 흙으로 끌까요?라며 묻는 것과 다를 바 무엇이 있겠는가?
며칠 전 미군 부대에 있는 아들의 접이식 책상을 살 일이 생겼다. 공항의 모 마트에서 적당한 제품을 발견했지만 전시품을 빼고는 품절이었다. 하여 제품 코드를 적어 안내소에서 조회해 보니 근방의 타 점포에 똑같은 제품이 3개 있다는 확인을 했다. 잠시 후 그 곳으로 가기위해 전화 하던 중 참으로 답답한 경우를 경험했다.
전후 상황을 설명한 뒤 제품 하나를 확보해 달라는 내 요청에 이쪽에서 저쪽으로……전화를 몇 번씩이나 바꾸면서도 누구 한사람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았고 담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전화를 모두 피하고 있었다. 결국은 그들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이거 보세요. 타점에서 제품 코드를 확인해서 그 쪽으로 전화할 고객이라면 반드시 그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고객이에요. 담당 파트에 전화 한 통 해주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고객에게 몇 번 씩이나 전화를 하게 해요?날카로운 내 지적이 있고서야 180도 달라진 직원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때로는 고착된 생각 탓에 많은 불편과 손실을 입을 때가 많다. 좀 빗나간 이야기지만 우리의 장묘 문화도 바뀌어야 될 점이 많지 않나 싶다. 여행을 할 때면 우리의 후손이 대대로 누려야 할 아름다운 풍광이 망자의 안식처로 인해 훼손된 경우를 많이 본다. 그때마다 산사람도 차지하기 힘든 좁은 땅에 죽은 자가 차지하고 있는 우리 문화도 많이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이어져 온 장묘 문화를 한 번에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우리의 의식 변화를 위해 모두가 조금씩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남편과 사댁 식구들은 시골 선산에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 사후에 시어른과 시댁식구 모두,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같이 지내고 싶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흠뻑 젖어 대를 중시하는 시댁 문화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가난한 6남매의 장남 며느리 역할이 버거워 사후에라도 그 힘든 올가미에 다시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탓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풍요와 자유로운 시대에 살면서 우리와 다른 문화에 젖은 아이들의 의식 때문이다. 이렇게 문화와 의식이 다른 자녀들이 훗날 지구촌을 바쁘게 누비며 지낼 것인데…. 그런 아이들의 발목을 그 경상도 골짜기까지 끌어 들이기 싫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대문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나라 국보 제 1호! 병자호란과 임진왜란까지 피해가며 600년 이상 존속해 온 우리 민족의 얼이다. 오랜 시간 우리의 가슴 속에 귀한 보물로 자리 잡고 있던 자존심이다. 이런 귀한 상징적 존재인 남대문이 상식을 벗어난 규제에 묶여 잿더미가 된 일이 마치 우리 정신의 일부가 전소된 것만 같아 더욱 안타깝다.
2008년 2월 11일
첫댓글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남대문에 어떤 미친 사람이 불을 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그 다음날 조간 신문을 보고 아침 9시경 정신없이 글 한편을 썼다가 오전 10시 30분경 문우들이 드나드는 까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모두들 어떻게 이렇게 후다닥 글 한편을 쓸 수있냐고 난리 부루스였지요. ㅎㅎㅎㅎㅎ 급하게 썼던 것 만큼 글 속에 화가 난 내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요즘 남대문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100% 원형대로 복원은 힘들겠지만 거의 비슷하게 복원한다고 합니다. 글은 그 당시의 느낌이기에 좀 거친 말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세염. ㅎㅎㅎㅎ
나머나라 살다보면 속 터져 죽을일이 너무많타
내가 요즘 속이 터져 가고 있다 신분증을 전부 분실
요즘 사연이 많타 이럴땐 한국 가서 살고싶다
언니 잘 지내냐??
우짜냐? 여기처럼 쉽게 발급이 안될지도 모르겠구나. 한국서 잊어버려도 골치 아픈데.... 돈 많이 벌어서 한국에서 멋진 전원주택 하나 지어서 텃밭에서 야채도 심고 화초도 기르면서 살아라. 내가 맨날맨날 놀러갈게. 그나저나 큰일이네.
좋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지요..
6.25도 견뎠던 남대문이 불타던날. 참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울기도 했지요. 벌써 2년이 후딱 지나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