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를 바로 잡는 방법으로 특수학교를 폐지한다면 구성원들의 극한적 투쟁도 걱정이지만 10년 후 정권이 바뀌어 보수정부가 다시 허가를 남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전임 정부가 허가한 학교라도 존중하는 게 정책의 신뢰성 연속성 면에서 낫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과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두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특수고의 존재는 다양성과 선택을 강화한다는 면에서 나쁘지 않습니다.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특목고, 자사고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반고와 함께 선지원 후추첨으로 하고, 학비를 낼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need-blind) 학생을 선발하자는 겁니다. 학교는 학비를 올리더라도 고소득자의 자녀에게는 학비를 전액 받고, 중산층 자녀에겐 일부 지원, 저소득층 자녀에겐 전액 지원 등으로 학비를 차등지원하는 방식으로 사학재단에서 백퍼센트 학생의 학비를 부담하라는 거지요. 부모 경제력 불문 선발은 미국의 명문 기숙학교에서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처럼 기회균등전형으로 저소득층 10퍼센트를 뽑아 따로 관리하는 일은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침해입니다.
물론 미국 명문고는 성적이나 인터뷰 등으로 학교의 철학에 맞는 학생을 선발합니다. 그러나 미국학생들은 여기에 들어가려고 경쟁을 치열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명문고 출신은 내신에 불리해 좋은 대학 가기가 어렵거든요 (제 대입안이 수시, 정시 모두 내신을 골격으로 하자는 주장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와 상황이 유사한 미국의 제도를 들여오되 우리에 맞게 수정해서 사용하자는 겁니다.
과학고와 영재고는 과학점수 몇 점 이상 중에서 추첨하는 방법을 사용하되, 입시에서 미국처럼 내신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함으로써 학생 스스로가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도록 제도를 만들면 됩니다. 국제고의 경우는 외국 대학에 진학하는 수요를 생각해 존치시키되 국내대학 진학시에는 역시 내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사학이 모든 학생의 학비를 감당하는 경우는 존치를 택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스스로 일반고 전환을 택하도록 자율권을 주자는 거지요. 교육청은 이들 사학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그 재원을 일반고에 집중 투입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신 상대평가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송인수 대표님의 질문이 제기될 듯 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절대평가를 해도 모든 학생에게 1등급을 주는 일은 미국에선 없습니다. 통계학적으로 학생 수가 100명이 넘으면 정상분포곡선이 저절로 나옵니다. 절대평가권을 줘도 교사들이 매우 신중하게 정상분포에 맞춰 성적을 주는 이유는 대학에 성적 분포도가 보내지기 때문입니다. 성적을 부풀리는 학교는 대학에서 뽑아주지를 않습니다.
교사는 평가권을 확보하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고, 학생은 친구를 적으로 삼아 무한 경쟁할 필요가 없게 되지요. 대학은 평가권을 악용한 학교는 징계할 권한이 있습니다. 상호 자율을 존중하면서도 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참여민주파의 교육철학이라 생각해 만든 대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