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란 안젤라 할머니의 기적
성지순례는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성인들의 삶과 영성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지난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아씨시에서는 프란치스코를, 로마에서는 베드로와 바오로를, 파티마에서는 루치아,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어린이들을, 루르드에서는 벨라뎃다를, 아빌라에서는 대데레사를, 로욜라에서는 이냐시오를 그리고 파리 외방전교회에서는 한국에서 순교하신 열 분의 성인들을,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는 카타리나 라브레 성녀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나 뵈올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그 장소에서 생활하셨던 성인, 성녀들의 삶과 영성은 오늘을 살고 있는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분들의 영향이 미치는데 그 당시에 그분들과 함께 사셨던 가족이나 친구들은 얼마나 그 감동이 더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사람의 소중함은 그 사람이 떠난 후에야 드러난다는 말이 있듯이 정작 성인, 성녀들과 함께 살던 사람은 그 사람의 소중함을 잘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분의 삶과 영성이 성인품에 오를 만큼 거룩하고 숭고하였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 곁에도 성인처럼 거룩한 삶을 사셨던 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김금란 안젤라 할머니입니다. 안젤라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어느 누가 쓸쓸하게 아무도 없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 생을 더 연장시키고자, 아니면 자신의 고통을 덜어보고자 의학의 힘에 의지하여 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안젤라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성전건축헌금으로 봉헌하셨습니다. 그리고 칠순잔치 때 받았다는 금반지도 아낌없이 팔아서 보태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몸소 실천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안젤라 할머니는 마지막 반모임 때에 밀린 반회비라며 만원을 반장님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차분하게 예수님을 만날 날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잔에 기름을 충분히 채워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에 소파에 누워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이신 요셉성인의 보호하심아래 하느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 역시 중요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장례미사 전에 아들 내외에게 또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이곳으로 이사 오시기 전에 살던 곳에서 남의 밭 품을 팔며 사셨다고 합니다. 새 호미가 손잡이 자루만 남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서 버신 돈을 아들에게 힘들 때 쓰라며 통장을 만들어 주셨다고 합니다. 삼우미사를 지내고 며칠 뒤에 아들 내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이 돈을 하늘의 문 성당을 짓는데 쓰기를 바라셨을 것이라며 통장의 돈을 찾아서 봉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2월초 어느 날 강원도 인제에서 경작한 서릿태 콩 11가마를 그 아들 내외가 성당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지난여름에 콩밭 매시며 마지막으로 경작한 콩이라고 하시면서....
이번 크리스마스(그리스도의 미사)는 예년에 비해 따뜻했습니다. 성탄 밤미사 끝나고 여러분이 맛있게 드신 백설기 속에 안젤라 할머니 콩이 듬뿍 들어있어서 아닐까요?
첫댓글 안젤라 할머니 께서 신부님께 더 고마워 하실것 같네요^^누군가가 기억 해준다는건 행복한 일이죠,,,안젤라할머니 천상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드립니다......
묵주기도 검은콩.우리지역 병에 넣으면서 늘 할머니 한번씩 떠올리도록 할께요. 하느님품에 계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