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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 대한산악연맹 신년 하례식 때 한국산악회 유학재 대장을 만났다. 올해 매킨리(6,194m)를 웨스트립(West Rib)으로 오르는 원정을 계획한다고 했다. 얼결에 “나도 끼워 주세요”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또한 심플하게 “같이 갑시다”였다. 무모한지 무지한지 그 물음에 그 대답이다. 지난해 내내 오지탐사대를 이끌며 내 자신만을 위한 등반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될 줄이야!
설악산 ‘죽음의 계곡’ 훈련 등반이 취소됐다. 내친김에 눈 많은 일본 중앙알프스의 야쓰가다케(八ケ岳) 쪽으로 가잖다. 일주일 만에 내려진 결정에 공동 카톡 방을 만들어 여권 사본 주고받고, 비행기 티케팅하고, 승합차 렌트하고, 식량 및 장비 등이 일사불란하게 준비되었다. 홍대 앞 모처에서 짐 패킹하고 3월 1일 오전 8시 40분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누가 그러던가, 그 팀은 배고픈 원정대라고. 사람은 삼시세끼 먹을 뿐이고 등반 중에는 그 한 끼니를 행동식으로 대신할 뿐인데 좀 더 못 먹은들 얼마나 배고프겠어? 단지 패킹 때 매 끼니 쌀, 즉석국, 김치로만 아주 단순하게 분류되어 있던 것이 어렴풋하게 생각났지만 ‘다른 반찬류도 있겠지’ 했다.
8인승 승합차에 짐과 함께 7명의 대원들이 끼워 타고 도쿄의 도시고속화도로를 달릴 때에도 오른쪽 주행이 아찔할 뿐이지 축소지향형의 일본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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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코다케를 오른 후 주능선을 따라 지주네 갈림길로 내려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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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너 무늬만 특공대인 ‘물공수’ 맞지?”
치노의 몽벨 장비점에 들러 EP 가스도 구입하고 제법 규모 있는 마트에서 고기도 사고 술도 사고 내일 있을 고된 짐 수송에 대비해 푸짐하게 먹었다. 미노토구치산장에서 짐을 다시 패킹하고 날씨가 좋아 아카다케(赤岳)산장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잠을 청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눈이 제법 쌓여 있다. 도저히 차량 운행 불가! 훈련 와서 조금이라도 편해 보자는 마음 한 자락을 들킨 기분이랄까? 일찌감치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눈 쌓인 임도를 재촉해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팀 새내기인 안준형은 배낭이 점점 삐딱하게 기울어 등을 밀어내는 모양새로 허리를 펴질 못했다.
“으이구, 너 무늬만 특공대인 ‘물공수’ 맞지?”
사랑어린 지청구 속에도 준영은 느긋하다. 사실 그는 등반력이나 출중한 체력보다는 현지 언어 가이드 겸 취재를 하러 온 기자다. 그러나 우리에겐 어리버리한 막내일 뿐이고 그의 서투름에 즐거울 뿐이다.
짓눌리는 무게에 가다 쉬기를 반복하는 동안 가까이서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린다. 비로소 4시간에 걸친 운행이 종점인 적악광천(赤岳鑛泉)산장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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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버행 벽 하단 트래버스. / 선등인 유영직씨가 이성종씨의 확보를 받으며 설사면을 오르고 있다.
- 오밀조밀한 20m 남짓의 인공빙벽장엔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이고, 간이천막에서는 뜨끈한 어묵 된장국을 나눠 주고 있었다. 신동석(한국산악회)씨 왈, 눈치가 빨라야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나. 모두들 줄줄이 한 공기씩 후후 불어가며 마시고는 ‘왜’스러운 일본인 특유의 감성에 시시덕거리며 즐거워했다.
텐트 3동을 구축한 후 가벼운 몸으로 주봉인 아카다케를 정찰하기 위해 행자소실 쪽으로 이동한다. 삼나무 숲길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약 40분간 오르내리다 보니 폐쇄됐지만 제법 규모가 큰 산장이 눈 속에 묻혀 있다. 넓은 텐트 사이트 경계 또한 어림잡을 수 없는 눈 세상이었다.
“오겡키 데스카(おげんきですか : 안녕하세요)~.”
영화적 감성으로 유영직(한국산악회)씨가 장난스럽게 외치지만 가스가 잔뜩 낀 앞 능선에선 메아리조차 삼켜진 침묵만 있을 뿐이다.
웃고 즐기는 사이 여러 갈래 길을 지나 제법 경사진 길을 오르는데 장비를 주렁주렁 매단 일본인 2명이 내려온다. 준영이 대화를 나눠 보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 아미다다케 쪽인데 장비 없이는 오르기 힘들다고 했다.
“모두 백(back)~”
허둥지둥 아까 지나친 갈림목으로 되돌아 눈 속에 묻혀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구름에 가린 연봉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저녁 또한 단순한 식단인 밥, 즉석국, 김치 그리고 아쉽지 않을 만큼의 술로 내일을 기약했다.
다소 구름이 많지만 청명한 하늘 사이로 대동심(大同心)과 소동심(小同心)이 숨바꼭질하는 사이 잽싸게 카메라로 그 모습을 잡아 본다. 오전 8시30분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어제의 그 길을 쉼 없이 오르다 보니 어제보다 10분 이상 단축했다고 대원들이 신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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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쇄된 정상천망장산장으로 내려서고 있다.
- 삼나무 길이 끝나고 자작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등산로 철책까지 눈 속에 묻혀 있는 지능선 길로 접어드니 경사가 가팔라진다. 내심 ‘100걸음 가서 쉬어야지’ 마음먹지만 60~70쯤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으이구~, 이 저질체력 앞으로 어쩔 거야’ 자책도 하지만 경사는 점입가경으로 세 걸음마다 쉬어야 하는 현실에 당장 집중하기로 위안했다.
어느덧 거칠 것 없이 쭉쭉 뻗기도 하고 휘감아 용솟음 쳐 올라 ‘악’의 정점을 이루는 아카다케 주능선 위에 올랐다. 바람의 결대로 피어난 상고대의 세상은 나름 규칙이 있으면서도 저마다 괴괴한 모양을 한 채 한바탕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인간세상과 다른 듯 닮은 듯하다.
가파른 설사면을 킥스텝으로 오르다 보니 드디어 아카다케(2,899m) 정상, 오전 11시40분이다. 신의 정령을 모시는 제단과 정상 표시석 등이 역시 일본스럽다. 가까운 곳에 적악정상산장이 있고 20~30분 떨어진 곳에 적악천망장(天望莊)이 있으나 지금은 폐쇄되어 양지를 찾아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코펠이 너무 커서 끓지 않는다는 영직씨의 나직한 투덜거림에 팔팔 끓는 국물 대신 적당히 불은 라면도 이 산정에선 최고의 선택이었다.
오후에 기압의 배치가 바뀌나보다. 바람이 더 강해진다. 지조오네 능선 표지판을 뒤로하고 급설사면을 글리세이딩하는데 멈춰지지 않는다. 피켈도 없는데, 2~3m 앞 나무에 부딪치면 어쩌나 하는 순간 승철씨가 밀고 내려온 눈 더미에 튕겨나갈 것 같은 불안감에 서로 소리 지르다가 공포감은 어느새 신바람 나는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숲길 속으로 이어진 러셀 자국을 따라 내려오니 교자산장(行者小室) 못미친 삼거리에 도착했다. 가파른 능선 길은 끝나고 어제 그 길을 소리 없이 베이스캠프 쪽으로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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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장 앞에서 기념촬영한 대원들. / 폭설로 산양이 먹이를 구하러 등산로까지 내려왔다.
- 뜻하지 않게 산행이 일찍 끝나자 대동심과 소동심 쪽으로 정찰을 갔다. 적악광천 뒤쪽 길을 따라 요코다케 방향으로 계곡 쪽을 쭉 타고 40분 정도 오르다 보니 대동심 쿨와르의 오타키 빙벽이 보인다. 높이 20~25m, 폭 7~8m 정도의 아담한 수직 빙폭인데 60~70m 인공빙벽에 익숙한 우리 눈에 앙증맞아 보일 뿐이다.
유학재 대장이 대동심 능선 쪽까지 길을 뚫라고 명하니 영직씨는 신나게 옆으로 러셀해 갔다. 허벅지까지 빠지며 헤쳐가기를 약 30분 만에 주능선 길과 만났다. 기쁨도 잠시 세 걸음마다 쉬어야 하는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르다 보니 제법 넓은 터가 있고, 대동심과 소동심이 한눈에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다. 루트를 촬영한 후 전원 하산해 내일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주먹밥과 차 한 잔으로 허기지고 얼어붙은 속 달래
밤사이 기온이 급강하해 새벽 한기에 모두 일찍 일어나 등반 준비를 서둘렀다. 산장에 주문한 주먹밥도 챙기고 하네스와 필요장비를 달고서 오전 7시50분 대동심으로 출발했다.
코가 닿을 정도의 가파른 능선 길을 1시간30분가량 치고 올라 벽 밑에 섰다. 칼바람에 아직은 응달,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 예상 등반 루트의 1~2피치가 오버행이라 확보물 설치가 어려워 우측 끝 쪽으로 줄을 40~50m 풀어 고정시키고 모두 이동했다.
등반기점의 쌍볼트를 확인한 후 영직씨가 60m 더블로프로 선등을 시작했다. 암각에 슬링을 걸어 확보하면서 전진하고, 이성종(경동고 OB)씨는 50m 더블로프로 다시 줄을 풀어 영직씨의 등반선을 따라 올랐다. 눈이 간간이 떨어졌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낙석은 없었다. 60m 줄이 다 풀려 갈 즈음 “완료!”라는 무전과 함께 줄을 고정시켰다는 영직씨의 신호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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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원지대를 등반 중인 필자. / 대동심 등반 전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맨 앞은 필자. / 세컨드인 이성종씨가 상단 침니 구간을 등반 중이다.
- 세컨드로 유 대장이 줄 정리하며 오르고, 나는 다른 스테틱 로프에 베이직을 걸고 출발했다. 크러스트 된 눈과 홀드들이 양호해 아이스 툴을 걸었다 손으로 잡았다 하며 오르니 등반에 흥이 났다. 그래 이거였지 이 감촉, 이 리듬감!
하지만 곧 무게에 짓눌린 채 걷다 보니 등반의 짜릿한 즐거움을 잊고 말았다. 1피치 종료 지점은 완만하고 좁은 설원 위였고 낡은 슬링들이 다 썩어가는 문고리 볼트에 매여 있었다. 발 디딤이 좋은 곳이니 이곳에 매달리지는 않겠지만 다음 등반자가 줄에 매달린 채 어센딩이라도 한다면?
혹시나 하는 불안감도 잠시 선등자가 10m 아래 암각에 슬링을 걸어 줄을 고정시킨 것을 확인했다. 역시 등반의 달인들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지시 없이 일사불란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단순하게 등반하고 있었고, 오랜 호흡 속에 이루어진 수백 만 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선등. 영직씨와 유 대장이 10m 위 상단 설원으로 나가 루트 파인딩을 하고 우측 침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60m 다이내믹 로프가 올라가고 다시 성종씨가 설원으로 올라갔다.
막내 준영이는 숨을 몰아쉬며 올라왔다. 무서워서 크램폰을 북북 긁으며 올라 오느라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발은 뭐하고 손만 일을 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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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벅지까지 빠지는 설벽 구간을 오르고 있다.
- 웃으면서 핀잔도 주지만 그래도 “우리 물공수 자~알 했어”라는 말로 위로해 준다. 마지막으로 승철씨가 오르고는 100m 로프를 바로 올린다. 모두 상단 헤드월 아래 설원에 모였다. 선등인 영직씨는 침니 오른쪽 벽 쪽으로 줄을 깔며 나아가 25m 정도 올라 넓은 테라스에서 피치를 종료했다.
세컨드로 성종씨도 줄 정리하며 오르고 바로 빨간 줄로 내가 오르면서 침니 옆 오른쪽 벽으로 붙으려 하는데 자세가 영 불안하고 몸이 뒤틀려 밸런스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발 디딤이 좋아 생각보다 수월하게 등반할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승철씨가 건넨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얼어붙은 속을 달랬다. 오른쪽으로 소동심 크랙을 등반하는 다른 팀 선등자가 정상에 오른 것이 보였다. 유심히 보지만 등반 루트가 돌아 앉아 있어 확인이 불가했다.
대동심 정상에 올라섰다. 남쪽으로는 구름 위에 우뚝 솟은 후지산이 보였고 북쪽으로는 북알프스 연봉들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줄달음질 하고 있었다. 10평 정도 넓이로 도봉산 만장봉과 같은 느낌이었고 소동심 방향으로 하강 볼트가 보인다. 저 아래 소동심 쿨와르 쪽으로 두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아뿔싸, 영직씨와 승철씨가 소동심 크랙도 등반하는 줄 알고 이동하고 있었다. 소리소리 질러 겨우 무전으로 통신했다. 크랙 시작점을 확인하고 거기서 바로 요코다케 쪽으로 올라갈 수 있으면 바로 오겠다고 했다. 서둘러 정상 인증 샷을 찍고 발걸음을 돌려 너울너울 이어진 주능선을 따라 요코다케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오후 1시쯤 5명의 대원이 요코다케 정상에 다다를 즈음 소동심 크랙 쪽으로 간 대원들이 우리가 올라온 길을 따라 느리게 오고 있었다. 바로 치고 올라오는 길이 없나보다.
오후에 바람이 더 사나워져 눈 알갱이들이 뺨을 후려쳐 얼굴이 따끔 거리고 선글라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눈을 뜰 수 없다. 두꺼운 우모를 걸쳐 입고 그들이 합류할 때까지 기다렸다. 요코다케 정상 샷을 남기고 아카다케 쪽으로 이동했다. 등정시비 때문에 정상 샷이 중요해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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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단이 차려져 있는 아카다케 정상에 올랐다.
- 등정시비 이야기에 모두 한바탕 웃음으로 장단을 맞췄다. 막내 준영이 앞사람과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더니 걸어오는 것인지 기어오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힘들어 했다. 얼른 행동식을 꺼내 나누어 먹고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막내에게 부드러운 양갱을 건넸다. 오늘은 날이 맑아서 그런지 등반하는 팀이 여럿이다. 가이드와 손님, 줄로 엮인 상징적인 관계에서 알 수 있듯 솔로 등반이 아닌 경우 모두 기본에 충실한 것 같다. 오고 가는 사이에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눴다. 힘든 산길에서 힘내라는 서로의 격려일 것이다.
교자산장으로 해서 오후 4시쯤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오늘은 목적 등반인 대동심의 등반이 있었고 모두 안전하게 완료했다는 의미로 산장에서 저녁만찬을 했다. 맹렬한 바람과 추위에 맞서 온 터라 너무 반가웠다. 따뜻한 공기가 꽉 채워진 산장에서 신선한 샐러드, 과일, 생선구이, 알코올램프에 의해 끓는 탕, 맥주와 소주 등이 만찬의 전부이지만 그 사이에 정이 든 대원들의 마음까지 합하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고, 우리만의 이야기로 충만해 있었다.
어제 밤 9시부터 싸락눈으로 시작하더니 26시간 넘게 눈이 내렸다. 간간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등산객에 의해 러셀 자국이 희미하게나마 이어 가고 있다. 한 시간 간격으로 텐트 주위의 눈을 치워 내고 휴대폰에선 김광석과 심수봉의 노래가 이어져 흘렀다.
“이러다 우리 고립되는 거 아닌지 몰라.”
식량 사정은 내일 아침, 쌀과 어묵 탕이 전부이지만 다행히 여기 산장시설이 훌륭해 모자란 끼니는 매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는데 이제는 공항까지 가는 것도 걱정이다.
오타키빙벽~대동심~소동심 등반 꿈 폭설에 묻혀 버려
산 아래 동네에도 눈이 많이 온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침과 점심과 비슷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저녁. 산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으나 어제와 같은 감흥은 없다. 오타키 빙벽을 올라 대동심 쿨와르의 눈길을 뚫고 소동심 크랙을 오르는 멋진 계획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대원들의 눈빛은 요요하고 침이 바짝바짝 말랐지만 입술 윤곽은 선명했으며 고개는 뻣뻣하게 들려 정수리가 하늘의 기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안전하게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최선인 지금 눈 폭풍과 눈사태가 빈번한 대동심 쿨와르는 다음 기회로 미루거나 우리 중 다른 등반 팀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아쉬움이 남아야 기억에 오래 남고 다시 돌아올 이유가 된다며. 화려한 성찬이 차려지고 적당량의 술도 오갔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어둠과 함께 땅으로 깔리고 있었다.
첫댓글 내년에 다시가고 싶어요^^
지난 연초에 영동빙장에서 부산의 김창수씨 텐트에서 만난 머리 허연 마산의 김용식이라는 사림입니다.
혹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잘 다녀왔다니 다행이고요,
혹 다시 이곳을 간다면 저도 한번 불러주세요.
@걸음마(김용식) 네~~기억납니다..장백이형님이 잘부탁한다고 당부당부하던되요..내년에가게되면 연락드릴깨요^^
@유영직 아! 예. 이 장백선배님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판대에서 뵈었는데 굉장히 자상하시더군요.
열정도 대단하시고요..
혹 뵈오시거든 안부 좀 전해주십시요.
저는 마신팀과 함께 2/13~18끼지 적악광천산장에서 어프로치끼지 럿셀만하고 폭설로 등반을 포기했지요.
등반하신 분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우와~ 머쮜다. 부럽구요. 저도 등정시비에 웃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