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12년 3월 18일, 일요일 오전 10경, 고 박태서 회장님 조카 박찬준 선생으로부터
"작은 어메가 오늘 돌아가셨네. 작은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 회원들이 그렇게 애를 썼는데 작은 어메지만 알려드리네. 문상은 와 주면 고맙고...."라고 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순간, 제 마음은 아! 이제는 또하나의 그리움이 더 쌓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원들에게 문자로 별세 사실을 알려드리고 지난 초겨울을 회상했습니다.
일이 있어 신승덕, 송정근 회원이 일하고 있는 장수마을에 들렸다가 한 울타리 내 이당원에 사모님이 와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병문안을 했더랬습니다.
침대에 누워만 계시고 앉지도 못했는데 제가 손을 잡고 인사하며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보셨습니다. 다른 의사표현은 못하시는게 안타까웠습니다.
친정 조카들이 가끔 온다는 말을 듣고 다시 손을 잡아보고 돌아선게 마지막 뵌 일었습니다.
회장님 별세하시던 해 문병을 갔더니 반갑게 맞아주시고는 마지막 헤어질 때
"이제는 그 양반도 돌아가셨는데 오지시 마래요"라고 하시던 말씀이 왜 그리 마음에 걸리던지.
송분선, 최창옥, 신승덕 회원과 함께 남성수 회원까지 빈소에 절을 하고 문상을 했습니다.
남성수 회원은 노동은 교수 음악강연회 할 때 인사말씀 하시는 회장님을 한 번 뵈었는데
회원가입은 작년 가을엔가 하고 회장님 사모님이니 가 봐야 한다고 함께 문상했습니다.
정윤선 박사님께서는 외국 출장 직전에 문자 받았다 하시며 조의금을 부탁하셨습니다.
사모님 돌아가셨으니 20만원은 해야 한다고 하시며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박사님은 이렇게도 회장님과 사모님을 마음에 담고 계셨군요.
빈소에는 회장님 양아들 되시는 분께서 " 지난 번에 그렇게 수고하시더니 이렇게 또 오셨군요. 연락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요?"하시며 놀라시더군요.
올해 82세의 사모님은 당뇨가 심해 엄지 발가락 왼쪽, 오른쪽 두 개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심해져 별세하셨다 합니다.
사모님은 평생 젊어서부터 당뇨를 앓았다고 회장님께서 살아 생전에 말씀하셨더랬지요. 그당시 국내는 약이 없어 미군부대까지 찾아다니며 약을 구하신 분이 회장님이셨는데 이젠 당신 곁으로 가셨군요.
편히 잠드시고 저 세상에서 해로하소서. 왠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회장님 돌아시던 해 회원들이 사모님 병문안 한 사진을 추모의 뜻으로 올립니다.
<2010. 7.20. 영주시립병원에서 사모님을 병문하는 회원들 - 회장님과 첫 선을 봤을 때 회장님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덮은 그대로였고, "그때는 부모님이 가라면 가는 시대랬는데, 그사람이 와서 오빠하고 만나고 있는 걸 사랑방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께네 인물이 너무 못났어!"라고 하셔서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간식을 드시면서 얘기하시는 사모님>
<같은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를 보고 말을 걸고>
<두런 두런 얘기를 잘 하셔서 참 재미있는 문병시간이었지요.>
<그 사람 죽고 나니까네 글이 아까와. 글을 참 잘했는데.....하시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시던 사모님>
<회원들이 마련한 간식을 드시며 회장님을 회상하시던 사모님>
농사 짓다가 들판에 드나드는게 힘들어서 사모님이 농사 짓지 말자 하니까 당장 농사를 정리하고 고향에서 영주로 나오셨다는 회장님의 일화를 전하며 당신은 나를 위해 그렇게 애를 썼어요 하셨는데, 회장님은 당신 때문에 사모님이 마음 고생하신 것 두고, 몸이 편치 않게 평생 당뇨를 달고 살았던 것을 두고 손수 빨래하고 청소하고 다 깔끔하게 하시고 사시며 사모님을 아끼셨더랬지요. 저는 그런 회장님을 보고 퇴계선생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화에 휘말려 친정이 거덜난 퇴계선생 부인은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지요. 그런 부인을 윗동서는 무시하듯 대했겠고요. 이런 부인을 퇴계선생은 온갖 마음을 다 감추고 감싸고 아끼셨다 합니다. 한번은 제사를 맞아 온 집안이 다 모여 제사준비로 분주할 때 선생은 남정네들과 사랑방에 계셨고, 부인은 안방에서 젯상준비를 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때 젯상에 차려 놓은 배 한 개가 굴러 방바닥에 떨어지자 퇴계선생 부인은 그걸 얼른 집어 치마 속에 감추었다 합니다. 그걸 보고 한 방 모였던 부인네들이 "와하하하하"하면서 방이 떠나갈 듯 웃어제치자 그 웃음소리는 필경 부인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퇴계선생께서 안방에 나와서 왜 그런지 물었고, 자초지종을 듣고난 선생, 부인에게 왜 배를 치마 속에 감추었느냐 물으니 부인은 천진스럽게 먹고 싶어서 그랬다고. 선생은 그말을 듣고 과도를 달라하여 손수 그 배를 깎아서 한 절음씩 베어 부인에게 건네주니 부인은 그것을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받아 먹듯 맛있게 받아 드시고.....그렇게 배 한 개를 다 베어서 부인에게 먹여주신 퇴계선생, 아무 일 없다는 듯 과도를 내려놓고 사랑방으로 가셨다. 그 광경을 다 지켜본 손위 동서, 부인을 보면서 "자네는 좋겠네. 서방님이 저렇게 아껴주시니...."하며 그 뒤로는 절대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깔보지 않았다 합니다.
2007년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아 출근길에 회장님께 들려 카네이션 꽃을 가지고 들렸더니 아이처럼 함빡 웃음으로 맞아 주신 회장님께서 그 꽃을 받아들고 사모님을 보면서 "박 국장이 이렇게 꽃을 가져왔는데 자기하고 나하고 하나씩 달아보자"하시며 환자복 입고 방에 앉아 계신 사모님께 손수 달아 주시던 당시 85세의 회장님 그 모습, 퇴계선생을 보는 느낌이었지요.
가끔 신경질이 나고 짜증이 날 때 저는 생각해봅니다.
"니가 만약 그런 경우라면 니 마누라한테 퇴계선생처럼 할 수 있는가라고. 나는 그리 못한다.
그래. 퇴계선생이 그냥 존경받는 퇴계선생이 아니다. 당대 최고 학자로 이름 높고 제자들이 기라성 같고, 심지어 유성룡은 그의 제자로 영의정을 지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모자라는 부인 앞에서는 의관정제한 제사제복 차림으로 과도를 들어 손수 배를 깎아, 깎아주기만 한 게 아니라 베어서 손에 건네서 먹는 것을 다 지켜보고 자리를 떴다. 퇴계선생을 본받지는 못할지 언정, 화가 날 때 생각이라도 해라. 그럼 뭔가 달라 질 것이니....."
사모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2.3.19.
민족문제연구소 경북북부지부
첫댓글 좋은 추억도 갖고 계셨군요.사모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사모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어제 같이근무하는 직원분 며느리본다 해서
한양대 안산캠퍼스
수고 하셨고요 죄송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