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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대한민국 주책(酒冊)이 만만치 않은 50줄 중반에 이르러 자식 둘 남매가 장성하여 사회에 발을 디뎠고, 큰 아이 ‘경희’가 지난 봄에 결혼을 했다.
딸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저녁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불안으로 많은 하객들 앞에서 축하를 받는 결혼식은 접어야 하는 속상함과 어려서부터 영민했던, 딸 경희에게 그동안 다해주지 못한 어미의 회한(悔恨)이 밀려와 혼자서 많이 울었다.
이곳저곳 고향 친구들과 친지에게 전화 연락을 하면서 코로나19 병원균 대유행에 결혼식이 뭐냐고 말은 못하면서도 이런 핑계 저런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다는 언질을 받을 때마다 어찌나 속상했던지, 가슴 조렸던 일이 엊그제 일 같다.
그래도 결혼식장에 가까운 친지와 고향 친구들과 수석사랑 애석인(愛石人)들이 많이 참석하여 축하 말씀과 덕담을 해주어 큰 위안이 되었다. 특히 ‘전의사랑’ 정수 회장과 축하를 해주는 가까운 옛 친구들이 있어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날 딸 사위 친구들이 엄청 많이 참석하여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딸 ‘경희’가 결혼하던 날 안사돈과 함께 입장해 결혼식을 알리는 촛불을 밝혔고, 새 신랑 사위가 총명하고도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면서 당당히 들어와 하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잠시 고요한 침묵 뒤에 사랑하는 딸 ‘경희’가 잔잔한 웨딩 음률에 맞춰 우아하게 입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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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라서가 아니라 새색시 ‘경희’는 미모와 지성을 갖춘 성숙한 여인으로써 무척 아름다웠다.
이색적인 결혼식 진행으로 양가 가족 대표로 장모인 내가 연단에서 혼사 덕담과 함께 혼인서약을 받아 공표해주는 주례자(主禮者)의 영광을 얻기도 했다.
그날 딸 사위 결혼식을 앞두고 준비한 글이 컴퓨터에 남아있어 이곳에 옮겨 적는다.
“뜻 깊은 딸애의 결혼식을 맞아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내빈들 그리고, 사돈댁 친인척님들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사랑하는 우리 딸 경희를 사랑과 믿음으로 흔쾌히 받아주신 사장어른, 사부인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혼인은 인륜지 대사로 부부만의 인연(因緣)을 넘어 두 가문이 서로 연(緣)이 되고,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사랑으로 맺어져 한 가정이 되고, 혼인서약처럼 서로가 진심 된 사랑과 책임으로 하나가 되는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자리입니다.
오늘 두 양가의 아들과 딸이 결혼으로 맺어지는 이 순간 저는 딸애의 어미로써 말할 수 없이 큰 감동과 기쁨을 느낍니다.
딸애를 떠나보내는 아쉬움도 있지만 믿음직한 아들처럼 든든한 우리사위 '최 서방' 을 얻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에게 이 자리에서 말합니다.
고지식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딸 경희야!
너는 이제부터 최 씨(崔 氏) 집안 가족임을 명심하여 시부모님께 진심된 마음으로 공경하고 가문의 가족으로 진정 슬기로운 며느리가 되길 바란다.
또한, 시부모님께 큰 사랑을 받는 집안의 귀인(貴人)이 되기 바란다.
믿음직한 사위에게도 말합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 부부의 남편으로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사회에서도 믿음직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한 가정이 되어 첫발을 떼는 이 성스러운 시간을 늘 가슴에 새기고, 너희 부부 앞날에 아름답고도 행복한 삶이 있길 기원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슬기로운 부부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부가 되어 첫발을 떼는 너희들 앞날에 무한 축복과 행복한 날들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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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연단에서 사랑하는 딸 사위에게 주례사를 겸한 덕담을 마치면서 겉으로는 웃는 표정이었지만 여러 가지 감성이 혼재된 내면의 심정에 기쁨과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하는 딸애는 그렇게 늘 함께 살던 집과 가족을 떠나 최씨집사람으로 시집을 갔다.
다행히 능력 있는 사위와 딸이 부부로써 서로 깊이 사랑하는 신혼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다.
결혼은 두 남녀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인이 되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인륜지 대사로 서로를 존중하며, 믿음을 주는 진실한 사랑을 해야 한다.
딸이 결혼을 하여 나가니 집에는 남편과 나와 아들 세 식구의 단출한 가정이 되었다.
호주로 유학을 갔던 아들이 돌아와 취직을 했고, 경희가 쓰던 방은 자연스럽게 아들 차지가 되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애교 많은 아들은 척박한 사막에 갖다 놔도 잘 살아갈 녀석이다.
호주에 유학을 갔을 때도 녀석은 그곳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현지에서 자동차를 구입해 나름대로 뜻 깊은 생활을 했다.
아들 진욱이 대학교 졸업식을 보러가서 딸 경희와 함께 호주여행을 한 것이 예쁜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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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딸애가 산부인과 병원에 함께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축하합니다. 아이가 들어섰네요.”
인상좋은 의사 선생님께서 축하 덕담과 함께 경희에게 산모로써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내가 벌써 할머니 대열에.....?”
딸애가 아이를 가졌다니 얼마 후에 아이가 태어나면 나는 삶의 계절에서 진짜 할머니 대열에 들어서고
“누구 할머니!”하고 불러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내가 진짜 할머니가 된다니, 믿기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인생 삶에서 세월이란 순리는 거짓도 없고, 쉬어가지도 않는다.
어스름 직전 황혼빛 노을이 아름답고, 가을빛 저물 때 만추(晩秋)의 계절 풍광이 아름답다. 수석(壽石)도 오랜 물 씻김으로 양석 된 숙암(熟岩)의 질박한 멋스러움이 좋다.
바쁘게만 살던 40줄 중반에 들어섰을 때 취미생활로 수석문화(壽石文化)를 알았다.
수석(壽石)은 내 인생길에서 활력소가 되었고, 시간을 쪼개서 써야하는 병원 생활에서 내 존재감을 찾고, 보람과 기쁨을 얻는 가교 역할을 했다.
자연의 축경이 담긴 돌 한 점에서 시(詩)를 읽고, 자연예술 풍류를 보고, 바람소릴 듣는 석인(石人)의 심미안(審美眼)은 경이롭다. 그 안에 문학이 있으며 하 세월 자연의 역사와 경이로운 사계풍광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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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장성하여 자족의 길을 찾아가고, 얼마 후에는 할머니란 호칭을 듣게 되는 내 삶의 여정, 좀 더 여유로운 시간에서 수석 취미생활을 보람되게 할 수 있는 현재 나의계절은 어디쯤일까?
人生 길 오십 줄에 뒤돌아보니
질곡한 인생 喜怒가 있는 삶이었네.
어린 시절 부모 품
가족울안은 참 따뜻했었지
고향들녘 왕매미 우렁차게 울던
동구나무 그늘아래
댓바람 지날 때마다 계절은 바뀌고
세월 따라 여인의 고운피부
목선에 안착한 잔주름
이즘에 내 인생 삶의 여로
덧없는 계절을 찾아보니
고개 숙인 오곡백과 영그는 만곡이라.
나풀대며 떨어지는 낙엽
서녘하늘 능선 위에
황금빛 노을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