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살림에서는 생산지 일손 돕기로 합천에 배 봉지 싸기를 간다고 하였다. 나는 ‘배 봉지’라는 흔하지 않은 단어에서 익숙한 계절감을 느꼈다.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 할아버지 집 마당은 나의 세상에서 가장 넓은 놀이터였다. 마당에 선을 하나 그어 놓으면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다. 선 위에서 놀다가 지루해지면 원을 그리고 그 위를 뛰어다녔다. 사실 지루하다는 감정을 느낄새도 없이 놀이는 놀이로 이어졌다. 아직 지루함이 발명되기 전의 이야기다.
그곳에는 앵두나무도 무화과나무도 감나무도 있었지만 가장 큰 나무는 배 나무였다. 신문지도 귀하게 쓰이던 시절이라 종이 하나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대청마루 위에 앉은 할아버지는 신문지로 배 봉지를 접었다. 나는 그 옆에서 나의 어린 배를 깔고 누워 신문지로 만든 배 봉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고래를 그리고 물살이를 그리고 잠수함을 그렸다. 파란색 크레파스는 언제나 가장 키가 작았다. 배 봉지는 하나하나 나무에 걸려 바다를 이루었다.
아, 5월이었구나.
나는 내 손으로 배 봉지를 싸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배 봉지를 쒸우고 키워서 수확한 배를 매번 먹기만 했다. 배는 그런 사랑의 손들이 키워냈다. 내 손도 배를 포근히 감싸는 사랑이 깃든 손이면 좋겠다. 나도 생산지 일손 돕기 가야지.
우리 몸은 우주와 같단다. 배나무도 우주와 같다. 우주의 순환도 몸과 배나무의 순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배 나무는 배가 맛있어져서 과실 안의 씨앗이 멀리멀리 퍼지길 희망하겠지. 사람의 사랑도 누군가의 마음을 채우고 멀리멀리 퍼져 바닷속 고래에게로 물살이에게로 아련하게 서리면 좋겠다. 5월은 어린 배를 감싸는 할아버지의 손길처럼 포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