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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홍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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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정 세상만사 스크랩 어머니의 용돈을 노리는 사람들
우리 도사 추천 0 조회 8 09.07.31 12: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먼 옛날로 시계추를 잠시 돌려봅니다. 필자는 고등학교를 목포에서 다녔습니다. 중학교를 서울에서 마쳤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목포로 발령이 났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선생님을 따라간 보기드문 경우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한 총각선생님이라 필자를 정말 동생처럼 챙겨 주셨습니다. 그때 당시 하숙비가 월2.000원이었는데 형님께서는 야박하게도 하숙비만 달랑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래 학교와 하숙집이외는 다닌 기억이 없어, 지금도 목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그래도 잊지못할 추억이 많습니다. 학교에 가는 길목에 앞을 못보는 눈뜬 맹인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에도 언제나 평상에 나와 앉아있었습니다.

 

   우연한 일로 할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6.25때 실명을 했는데 자식들이 원호금이 나올때만 잠시 얼굴을 비치고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 않아 누군가 밥을 챙겨주어야 식사를 해결하는 딱한 처지라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하숙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그 할아버지께 전해주고 점심을 굶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내가 한끼를 굶으면, 할아버지가 하루종일 굶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갖다 주던 일을 하루는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용봉 축제라고 전국 고교생 백일장 대회가 아침 10시부터 열리는데 당일 아침에 목포에서 출발하는 것은 무리라고 문예부 학생 5명을 필자가 책임지고 대회에 데리고 갔다, 오라고 학교에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매일 가져다 주는 도시락을 기다릴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옆방에 하숙을 하든 여학생에게 하루만 도시락을 우리가 지나다니든 길목에 있는 할아버지께 전해 달라고 어렵게 부탁을 했더니 일언지하에 나는 그런 일 못한다 고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분도 지금은 나이먹어 누구라고 하면, 다 알만한 사람입니다. 하는 수 없이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 다음 날 어제는 사정이 있어 도시락을 전해주지 못했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 어제도 도시락을 잘 먹었다' 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여학생이 교육청에 편지를 보내 선행 학생으로 표창까지를 상신해서 송구스럽게 학생의날 표창까지를 받게 되었고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 기사를 써주어 민망한 날을 보냈고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도시락을 두개 싸주어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까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꿈이 훗날 복지 사업을 꼭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고작 복지관장을 6개월하고 아직 까지도 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올리고 싶은 글은 어머니 용돈을 탐내는 못난 자식들의 얘기를 전해주려고 했는데 자화자찬을 하는 글로 서설을 너무 길게 늘어 놓고 말았습니다. 며칠전 필자가 다니던 회사의 이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들이 휴가를 나왔는데 귀대 여비를 걱정하는 전화였습니다. 서울 천지에 전화할 사람이 없어 필자를 머리에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피해를 많이 주었던 사람인데 그래도 어려울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그랬습니다. 전화를 했던 그날이 어머니 생신 날이었는데 자식들이 용돈이라도 얼마씩 드리고 갖겠구나 싶어 전화를 하려다 말고 필자에게 했다고 했습니다. 오즉하면, 어머니 생신에 참석도 하지 못하면서 그 어머니가 받았을 용돈을 머리에 떠 올렸다니 세상사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인생은 항상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있을때 잘하라' 는 유행가도 있습니다만, 노후를 위해서 알뜰하게, 정직하게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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