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4-5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왜,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셨을까?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가인과 마주한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산 받지 않았다.
가인의 입장에선 “차별”이었다. 결국 분노한 가인은 혈육살해라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하나님께서는 왜?
히 11: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의 제사, 믿음... 믿음이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을 생각한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음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인에게 내려진 벌은 “유리하는 자” 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인 것 같다. 떠돌아다님..
하나님 앞에서 떠난 가인은 안정과 평강이 없이 그 마음이, 그 생각이 허무 속을 헤매었다.
이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라지와 알곡을 추수때까지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함께 둔다는 비유와도 통하는 말씀이다.
우리 마음에도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있는 것 같다. 가인과 아벨이 함께 사는 듯하다.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즉시 없애지 아니하심은 바로 “나를 사랑하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안의 가인, 분노하고 살인하며 불순종하는 요인들을 멸하지 아니하시고 내버려두심은
내 안의 아벨... 믿음을 지키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우리 안의 가인으로 인해서 평안함이 없다. 정함이 없다.
내 안의 가인은 우리의 삶을 허무가운데로 이끌려 한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아벨의 믿음이 더 강건해져서 가인의 악행을 이겨내길,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며, 이를 기다리고 계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