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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수고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가지고 요즘 이것도 기상이변이라고 하더라고요. 춘천은 뭐 그냥 비가 많이 오는 정도 수준으로 그쳤지만 저기 남부 지역들은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그런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몇십 년을 사신 한 70대 어르신이 내가 70 평생에 5월달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걸 처음 봤다고.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적인 뉴스들을 이렇게 보게 되면 가뭄 어디는 너무 심각하게 가물고 어디는 너무 심각하게 비가 많이 오고 또 태풍도 수없이 몰려오고 이런 모습들을 보는데요.
우리가 탄소 금식이라는 귀한 시간을 가졌지만 정말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큰 해가 없어 보이지만 또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올 여름이 또 어떠한 우리에게 날씨로 다가올지 참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데 더욱더 기도하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더욱더 실천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한번 따라해볼까요?
믿음은 좋은데 왜 저래?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좋은데 왜 저래? 저 사람은 참 믿음은 좋은데 성격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저 사람은 믿음은 참 좋은데 삶에서 좀 왜 저렇게 살아가지?
혹시 여러분들이 주변에 있는 어떤 신앙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나 혹 그런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뉴스를 듣다가 어떤 큰 사고를 쳐가지고 감옥에 가게 되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거나 그런 사람들 중에 또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을 보더라도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정말 신앙인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하는 걸 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죠.
믿음은 좋은데 왜 저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데 참 믿음은 좋아 보이는데 별로 우리랑 다르지 않네.
우리가 그런 말을 혹시 듣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먼저 질문 믿음이 좋다는 건 도대체 뭘까? 그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믿음이 좋아라고 하는 그 개념이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좀 잘못된 오해의 요소가 있는 건데요. 먼저 우리는 흔히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좋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열심히 예배 생활을 하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또 규칙적으로 헌금을 하고 또 때로는 금식을 하고 큰 목소리로 기도를 하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이 좋은 분이야라고 표현을 많이 합니다.
근데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라고 하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그 모습들은 외형적인 평가라고 볼 수 있죠. 물론 내면의 믿음이 외형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모습에서는 그것은 눈에 보이는 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은 사실상 외형보다는 내면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그건 얼마든지 포장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 내면의 모습의 내면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건 성경에서도 여러 군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면이 중요한 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늘 발견하지 않습니까? 외모만 보고 결혼을 했는데 막상 살다 보니 참 as 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고통스러운 부부 생활을 하는 분들 뭔가 능력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자인 줄 알았더니 성격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배우자들 껍데기만 보고 부부 관계가 맺어지면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처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뭔가 우리의 신앙은 내적인 게 더 중심인데 외형의 모습만 보고 우리가 너무 믿음이 좋고 안 좋고를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또 직분 가지고도 이야기를 하죠. 근데 그 직분을 받아놓고 또 그에 맞는 자신들 나름대로의 그 아우트라인을 넘어서지 못하면 저분은 왜 저래 이렇게 또 평가하기도 하고요.
또는 말로 잘 고백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분들은 믿음이 좋은 분이야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입술로 내 마음에 있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말로 고백하는 것은요. 믿음의 시작이지 그것이 믿음 자체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말을 잘하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믿음이 좋을 수도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말을 잘합니까? 포장을 얼마나 잘해요. 마치 우리의 이 고백은요. 씨앗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씨앗이 생명력이 있어서 점점 성장하고 그것이 자라나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처럼 믿음은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면서 씨앗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자라나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겁니다. 열매를 맺는 믿음이 참 좋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 어떤 분들은요 과거의 경험이나 실적이 있는 분들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또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에 지금 현재는 뭔가 신앙적으로 좀 뭔가 막혀 있고 지금 기도도 잘 안 되고 뭔가 신앙의 열정도 또 없는 것 같고 그런데 과거에 나는 막 뭔가 어떤 환상을 봤다든지 뭔가 은사를 경험했다든지 또는 치유의 역사를 경험했다든지 과거에 어떤 체험을 한 것이 내 믿음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과거에 선교 단체 활동을 했다든지 또는 훈련을 아주 힘든 훈련을 받았다든지 또 신학을 했다든지 뭐 이런 것들 이런 어떤 코스를 통과하고 나면 저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거의 경험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믿음은 현재를 지금 중요시합니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이게 바로 믿음의 핵심입니다.
아주 작은 예를 들어볼게요. 친구 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친구가 초대를 해가지고 친구가
야 오늘 고기 꺼 먹자
그래서
야 웬일이야 무슨 고기야
그랬더니
아주 신선한 굉장히 좋은 소고기가 있어. 이거 오늘 구워 먹자.
그래가지고 가가지고 냉장고를 딱 열고 끊으려고 하는데 친구가
야 근데 고기가 좀 이상한데 냄새가 나
그러니까 그 주인이 하는 말이
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 달 전에 내가 거기다가 넣어놓을 때 얼마나 신선한 1등급 한우였는데
한 달 전에는 1등급 한우로 넣어놨을지 모르지만 한 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벌써 냄새가 나고 먹기가 좀 불편한 그러한 상한 고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뭘 말하는 걸까요? 믿음 역시도요 죽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막 뭔가 역동력이 있고 내가 믿음이 경험되는 어떤 나의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요. 지금 현재 내가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이거는 현재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거 그러면 믿음이 좋다는 건 도대체 지금 우리가 지금 말한 오해적인 믿음이라고 하는 걸 표현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도대체 성경은 믿음이 좋다는 걸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이제 그 내용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골로새 성도들이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면서 그들이 믿음이 좋은 것을 보고 기뻐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믿음에 대한 설명이 6절 앞부분에 나오는데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짧은 구절이지만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좋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신앙의 너무나도 초보적인 말이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 여러분 근데 여기서 너무 기본적인 내용인데요. 그리스도 예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아주 입에 달고 살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의미 그 자체가 무엇인지도 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말이죠.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신 예수님 한마디로 우리를 깊이 구원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근데 뭘 구원하냐고요 근데 한번 생각을 정리를 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왜 이 땅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까? 왜 메시아로 보내셨습니까? 그 이유를 한번 머릿속에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알아요. 그런데 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인다. 그거는 뭔 말이냐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 그리고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그리고 나를 통하여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그 일을 받아들이고 그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 이게 바로 우리의 믿음의 핵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분을 믿겠다는 말은요. 그분을 따르겠다는 말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발견될 믿음의 중요한 요소가 뭐냐면 믿음은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믿음이 딱 생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번 믿음이 들어오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계속 성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6절 하반부에 보면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살아간다는 말은 걸어간다는 말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가게 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 성장이 가능한지 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부하가 감춰져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게 다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아까 전에 찬양했잖아요.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이 고백이 진정한 우리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보아가 지식이 지혜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사도바울은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식물을 연상시키는 7절의 표현을 쓰면서 뿌리를 박으라.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서 우리가 그 진리와 보아를 끌어당겨야 한다. 그리고 세우심을 입어서라는 말 속에서는 건축물을 세우는 그림을 이미지를 그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들이 기초를 다지고 거기에서 든든하게 집을 지어가라. 두 가지의 큰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야 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 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성장하고 든든하게 세워져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좁은 믿음은 뭐냐 이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진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반응하며 살아가는 삶이 좋은 믿음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주님을 우리가 더 알아가길 원합니다. 여러분들 너무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아는 걸로 우리가 그냥 생각을 해요. 신앙생활 지금 몇 년 했어 10년, 20년 30년 지금 평생을 해왔다고 마치 내가 성경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렇지가 않아요 알면 알수록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기에 대한 반응을 우리가 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하면서 알아나가게 될 것이에요.
그런데 결코 그 길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알아간 만큼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요 성장하지 않고 멈춰서거나 후퇴하는 그러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그전에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이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새롭게 알아가는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놀라운 은혜를 너무나도 귀하게 여긴 나머지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발견한 데서 따라가지 않으면요. 성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요즘 하나님의 어떠한 부분을 발견하고 있으신지 한번 나의 삶을 점검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따라가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삶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믿음 어떻게 좋은 믿음을 더 우리가 그러면 가지고 더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 몇 가지를 점검하려고 하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먼저는 당연하게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지금 심각한 위기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제가 어제 서울신학대학교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여름에 청소년부 연합수련회를 준비하는데 기독교 교육학과라고 하는 학과 학생들 그 임원들이 이렇게 이쪽 지역에 와서 좀 도와주겠다고 해가지고 협의차 잠시 방문하고 만나고 왔는데요. 기독교 교육학과 교수님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좀 더 더 면밀히 알고 또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신학대학교 안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지금 전체의 모습을 다 보게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여러분 반에 아이들이 학교 학급에 평균적으로 좀 이렇게 큰 학교들 한 반에 몇 명 정도 애들이 있는 걸로 아세요?
30명 네 40명까지는 없고요. 요즘 보통 20명대예요. 30명이 약간 안 되게 있더라고요. 근데 그 인원에서 여러분들 시대에는 만약에 여러분들 시대에는 40명대 50명대였잖아요. 60명대도 있었나요? 근데 여러분들이 만약에 30명대의 반이라면 그 반에 기독교인이 몇 명이었을까요? 반 이상까지 가셨어요 권사님들은 대략 어느 정도 되셨어요? 10명 정도 한 3분의 1은 된 것 같다 그래요. 요즘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딱 이야기를 하는데요. 한두 명 한두 명이면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20명이라고 할 때 한두 명이면 10%도 안 되고 55%에서 10%라는 거예요. 근데 이것도 너무 크게 잡은 거래요. 5%가 원래 안 되잖아 그럼 5%가 안 된다는 말은 뭔 말이냐면 한 명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이 반에 만약에 20명이면 한 명도 안 될 수 있다는 그러니까 애들이 종교를 파악할 때 손을 못 들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게 지금 심각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교회가 운영되는 부분에 있어서 물질적으로 외형적으로 그런 것들이 문제다. 여러 가지 교회 안에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합니다.
근데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그것은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는 이미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냥 여러분 우리가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밥 먹을 때 고개를 잠깐 숙여서 감사합니다 하고 먹는 그 정도의 신앙으로 머물러 있으면 될까요?
우리는요 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여러분들 각자의 삶에서 큐티나 또는 말씀을 읽어가면서 각자의 기도 가운데서도 주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자연의 이 변화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열리면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님이 수없이 많이 열어놓으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지 않다는 거 우리가 입술로만 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주님을 발견하는 일에 우리가 집중해 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씨앗이 있습니까? 그 씨앗이 씨앗으로만 머물면 되지 않고요. 성장해야 합니다. 싹이 나고 열매 맺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 그러한 성장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은 믿음이 되려면요. 알아가는 만큼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 예수님의 사랑 지금도 나를 붙드시는 그 은혜를 느끼면서 우리는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면 우리 안에 더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 일어나고 더 예배의 자리에 또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삶의 반응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는 주님을 닮아 우리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사람은 변화되게 돼 있어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양육할 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갓난 아이를 낳아서 첫째 아이를 낳아서 엄마가 뭔지도 정확히 잘 모르고 뭘 해야 될지도 잘 모르는데 여러분들 아이의 응어리 소리만 들어도 잠자다가 깨가지고 아이 기저귀를 만지고 이렇게 아이들을 케어했던 그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그냥 젊은 청년에 불과했던 사람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하기 시작하니까 그 아이가 행동하는 하나하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히 막 똥기저귀도 막 그냥 덥석덥석 만지고 예전에 여러분들 처녀 때는 벌레 한 마리만 봐도 어마어마하면서 뒷걸음질 쳤을 텐데 내 아이 옆에 벌레가 나타나면 손으로 잡았을 거예요.
사랑하니까 가능한 일 아닙니까? 근데 사랑하다 보니까 그 사랑으로 돌보다 보니까 그 사랑이 더 깊어졌죠.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그 자녀들을 양육해서 지금 이렇게 자녀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예요. 신앙생활은 억지로 뭔가 정해져 있는 대로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할수록 더 우리의 삶에 반응이 일어나서 그 반응 속에서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관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격적인 변화가 의지의 문제라고 이야기를 해요. 의지를 가져야 변화가 일어난다. 근데 여러분 우리는 솔직히 내 의지의 한계가 큰 사람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내가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단을 해도 잠깐 하다가 또 거꾸로지 아무리 내가 신앙적으로 결단을 해도 내 의지만으로는 솔직히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그 이유는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은혜로 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좋은 믿음을 가지려면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현재 여기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에 열등감과 무기력에 빠져 있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요즘 경제적으로 상황적으로 많이 어렵다 보니까 무기력해지고 특히 신앙적으로요 어쩔 수 없어라고 하는 이유를 대면서 신앙적으로 머물러 있거나 뒤로 후퇴하는데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근데 여러분 신앙은요 그 상황 속에서도 쉽지 않지만 믿음으로 반응하는 거라고 여러분들이 만약에 지금 경제적인 문제가 닥쳤습니다. 근데 경제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 그때
내가 어떻게 이런 허드렛일을 하겠어 뭐 어떻게 내가 이런 일을 하겠어? 하나님이 알아서 먹여주실 거야
하고 그냥 기다리는 게 좋은 믿음일까요?
아니면 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생각을 하고 내게 맡겨진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면서 그 일을 임하는 것이 믿음일까요?
여러분들 안에 깨어진 관계로 인하여서 어려울 때 그때 그냥 나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 아시니까 해결해 줄 거야라고 하고 그냥 믿음으로 맡기고 기도만 하는 것이 좋은 믿음일까요?
아니면 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대하면서 어떻게든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계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믿음일까요?
상황이 좋을 때는요 다 좋은 믿음 같아 보입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상황 좋을 때는요 다 좋아 보여요. 그런데 어려운 상황이 딱 닥치면 그때 진짜 문제의 믿음이 드러나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내서 우리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 사람들마다 각자의 믿음의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일률적으로 볼 수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믿음이 아주 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삶이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이만큼 성장했는데 그게 아직 저 바닥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정말 믿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저 위에서 믿음의 그 행위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서로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은혜를 가지고 그 믿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좋은 믿음이라는 것이 믿음은 좋은데 왜 저래?
여러분 이 말은요. 어쩌면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과 삶을 다르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면 관계에 있어서도 좀 더 손해 보더라도 배려해주고 좀 더 양보해 주기도 하고, 물론 지금 당장 내가 그런 삶을 못 살더라도 조금이라도 변화되는 삶을 보여주는 게 믿음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좋아질수록 깊어질수록 굳건해질수록 우리의 삶에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도 그 사랑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이라고 그러니까 믿음이 좋은데 왜 저래라고 하는 말 그런 말을 우리가 들으면 그건 지금 나 자신을 먼저 점검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좋은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매일매일 주님을 알아가는 데 힘쓰기를 원하고요. 그 주님을 알아가는 만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 주님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닮아가서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어제보다 오늘이 작년보다 내년이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한 우리의 신앙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녀들이 우리 옆에 있는 이웃들이 우리를 보면서 또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달라지는구나라는 걸 발견하게 될 때 복음의 확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