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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마태복음 강의에 대한 질문과 지난 주 누가복음 강의 시간의 질의 시간에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붓 가는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성경, 역사 속에서 탄생하여 역사를 초월하다>
1. 성경시대의 영웅 문학
성경은 신적 영감으로 기록한 경전이지만, 그 시대 사회 문화를 품은 언어로 작성된 문학작품이다. 사실은 신약성경은 대부분 편지, 보고서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며, 그것이 경전으로 인정받은 것은 한참 후대의 일이다.
성경시대의 세계는 전 역사 중에 사상, 문학, 과학, 수학, 종교 등이 가장 수준 높게 발달했던 헬라시대였다. 탈레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외에도 수많은 철학자들과 문학 작품들을 배출한 시대였다. 성경이 헬라 이방에 널리 전파되고 읽혀지기 위해 당시의 문학적 패턴들이 응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마태복음에서의 예수 탄생이야기를 기술한 패턴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위대한 영웅들의 기적적 출생 이야기의 기록 패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영웅 출생이야기는 인간 여인이 신적인 애인과 관계를 맺어 영웅을 임신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헬라의 사상가 플라톤
플라톤은 B.C.399년에 처형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그는 25권에 달하는 대화, 소크라테스에 대한 변명, 그리고 진정한 것이 아닐 수 있는 편지 등의 영구적인 철학적 유산들을 남겼다.
A.D.3세기의 저술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플라톤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플라톤의 아버지 아리스톤은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 페릭토네 사이에서 플라톤을 낳았는데 여기엔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 아폴로신이 아리스톤의 꿈 속에 나타나 플라톤이 곧 출생할 것을 알려주었다. 전설에 의하면, 플라톤은 아폴로의 생일날 태어났는데, 이것은 중요한 징조로 간주되었다. 플라톤은 아폴로의 아들로 간주되었고, 그는 후에 신격화되었고, 에녹과 엘리야처럼 천상(天上)의 세계로 옮겨졌다.
플라톤의 출생이야기에서는 플라톤이 인간이며 동시에 신인 것처럼 보인다.
헬레니즘 문화를 연 알렉산더 대왕
그는 지중해 세계와 동방 지역을 정복한 후에 B.C.323년 사망했다. 그는 군사적 천재였지만 더욱 중요한 업적은 그가 그리스 문물을 전파한 그리스의 대사였다는 점이다.
플루타크는 1세기 말엽에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를 기록했다. 플루타크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그의 아버지 필립이 허큘레스(헤라클레스의 영어식 표기, Hercules)의 자손이었으며,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에기나의 1대 왕이었던 에아쿠스의 후손이었는데, 에아쿠스 자신은 제우스와 에기나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다고 한다(그리스 신화).
알렉산더의 어머니는 필립과 혼인하기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펀둥과 번개가 가녀의 자궁에 내리쳤다. 후에 필립도 꿈을 꾸었다. 필립은 꿈속에서 사자의 형상이 새겨진 인장(印章)으로 아내의 자궁을 봉인했다. 선견자 텔메수스의 아리스탄더에 의하면, 그의 아내의 자궁을 봉인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올림피아스의 임신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본문이 있는데 그 하나는 올림피아스가 잠든 동안에 뱀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쑈다. 그 이후로 필립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를 두려워했는데, 아내가 자신에게 마법을 걸까봐 두려워하였거나, 아니면 그녀가 보다 높은 존재와 관계를 가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본문에 따르면, 올림피아스가 거대한 뱀을 길들여 마신적인 제의를 행하였다. 그 뱀은 그녀가 이 야만적인 제의를 위해 갖고 다니는 마술 지팡이를 감싸고 올라가 남자들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었다. 이 두 본문 모두에서 올림피아스는 알렉선더를 임신하는데 있어서 보다 높은 존재와 연합했다고 전한다.
알렉산더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에 타버린 날 태어났다. 이것은 더욱 큰 재난의 징조로 간주되었다. 동시에 필립은 자신의 군대가 일리리아인들을 대파시켰다는 소식과 자신의 말이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승리의 소식들은 알렉센더가 무적(無敵)이 될 증거라고 해석되었다.
예수와 동시애인이었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
플라우스 필로스트라투스는 A.D.170년 경에 태어나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전기를 썼는데, 그는 예수와 동시대인이었으며, 방랑하는 현자이며 철학자였고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 아폴로니우스의 어머니는 환상 중에 자신이 신을 낫게 될 것이며, 또한 그가 태어난 곳 근처에 신전이 세워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아폴로니우스의 어머니에게 기적적인 임신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다. 그러나 그의 출생은 매우 비상했고, 위대한 일들이 나타나리라는 전조들이 있었다.
예수가 유대땅 전역에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있었던 바로 그 시대에, 헬라권에는 캅파도키아 티아나 출신의 아폴로니우스라가 대중들을 빛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예수의 라이벌로 불렀다.
그가 가는 곳마다 이적과 기사가 따라다녔다. 온갖 병자들을 치유했고, 죽은 사람을 살렸으며, 귀신을 내쫓았고, 전염병을 퍼트리는 마귀를 잡아냈고, 이오니아 지역과 크레타섬의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예언했고, 네로 황제가 번개에 맞을 뻔했던 사건, 네로 황제의 코린트 운하 공사 중단 사건, 티투스 황제의 죽음과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당하는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을 예언했고, 이집트, 에티오피아, 바빌론, 페르시아, 인도, 티베트 등 세계 곳곳의 영적 수행처들을 방문했고, 진리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았고, 심지어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들에게도 강력한 영적인 지도자로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걸었던 삶의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똑같았다. 이 모든 업적들은 아폴로니우스로 하여금 헬라권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라이벌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 필로스트라투스 저, 박지호 역, 썬탈북스, 2019년).
이 외에도 B.C.3,000년대 바벨론의 위대한 왕 사르곤, B.C.6세기의 고레스 대왕, 로마의 창시자였던 레무스와 로물루스, 아더 대왕의 출생 이야기 등 위대한 영웅들을 그려내는 전기들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문학적 패턴에 따라 기록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 뛰어난 조상들을 보여주는 족보
② 비상하고 신비한 잉태
③ 천사 혹은 꿈속에서의 통고, 즉 수태고지
④ 출생과 그에 동반되는 초자연적인 징조들
⑤ 찬양, 혹은 앞으로 일어날 위대한 일들에 대한 예고
⑥ 잠재적인 경쟁자의 박해
또한 영웅들의 생애가 다했을 때도 공통된 패턴이 있다.
① 반대자들의 박해
② 순교
③ 신격화(神格化)
④ 영웅을 숭배하거나 영웅의 이름으로 예배하는 종교 탄생
(예수세미나의 로버트 펑크 저, 김준우 역의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문학적 패턴이라 함은 모든 문학은 그 시대 문화와 언어적 특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과 이후에 기록된 구약성경 또한 고대 근동의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2.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와 창세기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기술하는 패턴 또한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과학적 세계관의 논리가 개입된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 사람들이 우주를 해석하는 신화적 세계관으로 표현한 패턴임을 잊어선 안된다.
창세기가 이집트의 “헤르모폴리스”, 아카드의 “에누마 엘리쉬”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성서신학계에서 보편적 상식이 된지는 오래됐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학적 세계관”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창세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적 세계관으로 보지 과학적 세계관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할지 몰라도, “천지창조시 첫째날에 빛을, 둘째날에 궁창을, 셋째날엔 식물을, 넷째날 해, 달, 별들을, 다섯째 날에 새들과 물고기를, 여섯째날에 동물과 인간을 창조했다면서 그 창조순서에 따라 완벽하고 과학적으로 창조됐다고 증명하려는 논리”를 열거한다면, 이것이 바로 과학적 세계관이 아니고 무엇인가?
과연 고대인들도 천지창조의 순서를 “물질적 존재로 창조했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창1장의 천지창조와 가장 유사한 “에누마 엘리쉬”도, 이집트의 “헤르모폴리스”도 전혀 그런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 않다. 다만, “기능 존재론” 즉, 각각의 피조물들이 우주 안에서 어떤 기능을 배정받고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존재한다는 의미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즉 빛의 기능, 땅의 기능, 바다의 기능, 그리고 인간에게 부여한 기능과 역할, 즉 인간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 바다, 태양, 달, 별, 동식물들을 신으로 섬기는 고대인들과 달리 유대인들은 그것들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다스리고 정복할 대상임을 분명히 말하면서 그들을 창조한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란 유일신 신앙을 고수하면서도 “기능 존재론”적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패턴은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했다는 “물질 창조론”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과학적 세계관으로는 성경을 기록한 시대를 살았던 성경기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에 영향을 끼친 문명 즉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와 바벨론, 인접 문명국 이집트 등의 고대 근동의 신화적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이해하려면, 장르가 무엇인지(대서사시), 당시 그 용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카드, 수메르, 이집트, 우가리트, 히타이트 등 고대 근동 문헌을 세심히 읽고 그 안에 담긴 우주론과 세계관을 추출한 뒤 이를 창세기 1장과 정밀하게 비교해야 한다. 창세기 1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시간적인 계시의 산물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인지 환경과 상당히 많은 내용을 공유하는 역사적 산물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문헌은 최소 두 가지 측면에서 세계관을 공유한다.
첫째,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에서는 물질의 기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그 기능과 질서에 초점을 맞춘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언제 어떻게 만드셨느냐가 아니라, 세상을 무슨 목적으로 만드셨느냐가 된다. 곧 창세기 1장 이야기는 하나님이 자기가 만드신 우주와 세계에 기능과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둘째, 고대 근동 문헌에서는 신들이 엿새에 걸쳐 신전을 세운 뒤 일곱째 날에 신전에서 안식하며 신전을 통치하는 행위가 반복되지만, 하나님은 우주를 하나님의 임재의 성전으로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 완성된 성전에서 신적인 통치를 시작하셨다.
이렇게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의 인지 환경은 정확히 대응한다.
하지만 양자 간에 차이점도 있다.
첫째, 고대 근동 문헌에 등장하는 신들은 우주의 일부로써, 우주 안에 내재한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우주 밖에서, 우주를 창조한 초월자로 등장한다.
둘째, 고대 근동 문헌에서 신들이 인간을 창조하는 목적은 신들의 노역을 대신 담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까닭은 그분의 형상으로서 우주 성전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역할을 위임하기 위함이다.
( 존 H. 월튼 저, 강성열역,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 2017, 새물결플러스)
창세기는 바벨론 포로기를 경험한 유대인들이 고대 근동의 문명에서 사상적, 종교적 영향을 받았다. 거꾸로 믿는 이들에게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남한 땅의 1/5 면적도 안되는 이스라엘이 대문명국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에 식민지로 살면서 절대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겠는가?” 묻고 싶다. 오히려 긴 식민지 생활에 지친 유대인들이 주변국의 문명에 영향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틈만 나면 이방 신들을 섬기며 배교하는 죄악에 대해 선지자들로 하여금 징계를 내리는 내용들을 수없이 보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천년의 역사 중에서 안정된 정부, 온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춘 기간이 얼마나 있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가? 오직 온전했던 국가였던 다윗을 대망하며, 메시아로 오실 왕 또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왕을 대망했었는가?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이고, 마태복음 역시, 바로 직전까지 이스라엘을 지배했고, 사상, 종교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페르시아의 영향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3. 신약의 문학적 배경 :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를 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자”(사 44:27, 28; 45:1-5),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로 여겼다.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파사의 고레스왕은 페르시아의 종교(최초의 종교라 불림)인 조로아스터교의 정신을 식민지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유대 백성들에겐 감사하게도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중요한 “관용”적 특징 때문에 페르시아와 유대인들은 서로의 문화와 사상을 존중하고 관대하여서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였고 타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며 살았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586에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황제인 크세르크세스 1세가 “나는 관대하다.”고 말한 장면을 보면 페르시아의 통치 이념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황제를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부를 정도로 친화적이고 관용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차 페르시아 문명을 관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예로, ‘바리새파’라는 유대교의 종파도 페르시아의 성경 이름 ‘파사’에서 가져오고, 부활과 영생, 물세례도 조로아스터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외에도 조로아스터교의 종교 문화는 유대묵시문학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초기 유대교와는 달리 신약시대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영지주의적, 혼합주의적 유대기독교가 형성되어 초기 기독교를 지배하면서, 초대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네 개의 복음서 외에도 수많은 복음서가 있었지만, 정경에서 제외된 이유 중 하나도 ‘영지주의적 성향’ 때문이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초기(원시) 기독교가 형성될 때,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신은 인간이 될 수 없다”며 예수의 신성만을 인정하고,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며 기독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영지주의적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성육신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 요한은 펜을 들어야 했다.
(요 1:14)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일 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4. 성경의 역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도 존중받지 못한다.
이로써 우리는 성경이 그 시대의 사회 문화 세계 속에서, 그 시대의 양식을 사용했지만, 그 안에 용어 하나 하나에 새로운 사상 즉 여호와 하나님 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 등을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본문이 시대문명의 영향하에 신화화된 용어를 쓰는 패턴을 따라 작성됐다고 하더라도 성경 기자는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성경 해석의 중요한 핵심이다.
예수의 행적과 설교를 성경기자마다 다르게 기술하고 있으므로, 누가 한 말이 실제로 예수가 한 말인가를 찾기 위해 자료를 찾고(자료비평), 편집을 분석하고(편집비평), 어떤 패턴을 사용했는지(양식비평),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의 의미가 무엇인지(사회과학적 비평)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 부활과 승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신앙은 더욱 견고하다. 단지 우리의 언어와 해석이 예수의 진짜 모습을 오염시키는 것을 덜어보자는 것이다. 즉 예수가 동정녀로 탄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동정녀 탄생이든 부활이든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경전을 읽는 우리가 그것을 기록한 성경기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그렇게 탄생했다, 그렇게 부활하셨다”는 식의 문자적 인식으로 머물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과학적 세계관으로 동정녀탄생을 증명해서 믿고, 부활을 증명해서 믿으려 하는 우리가 도리어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 기자가 당시의 언어와 사상으로 탄생과 부활을 기록한 것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기자의 음성을 현장에서 듣듯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경을 써야 한다.
새로운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면서 “예수가 하지 않은 말을 찾아서 지우는 게 아니라, 누가 한 말이든 예수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선 “예수가 진짜로 한 말은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써 역사를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만 더.
문자중심의 근본주의적으로 성경을 보면,
우리와 같은 모세오경을 제2의 경전으로 삼고 문자 하나하나를 지키면서도 911 테러를 일으키는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우리와 같은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문자 하나하나를 지키면서도 팔레스타인에 폭탄을 터트리며, 기독교인들을 암살하는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우리와 같은 신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말씀대로 산다면서도 흑인이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라면서 인종차별하는 백인우월주의 복음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진정 예수가 원했던 세상은 분열과 차별이 없는 세상, 주인과 종이 없는 세상, 부자와 빈자가 없는 세상이었다. 현대 우리는 예수란 이름으로 노예제도를 합리화하고, 십자군 전쟁을 합리화하고, 분열과 전쟁을 합리화했다.
우리는 기독교로 종교화된 예수가 아니라 기독교가 탄생하기 전 예수의 가르침으로 기독교를 재정비하고 싶다.
예수의 첫걸음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내가 잠시 기존의 신앙을 포기해도 전혀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수가 살아야 죽은 세상이 살아날 수 있다.
비오는 날 쪽방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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