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祖 如者는 指義요 是者는 定詞니 阿難이 自稱如是之法을 我從佛聞은 明不自說也라 故로 言如是我聞이라하시니라
又我者는 性也라 性卽我也니 內外動作이 皆由於性하야 一切를 盡聞일새 故稱我聞也니라 言一時者는 師資會遇齊集之時니라
佛者는 是說法之主요 在者는 欲明處所니 舍衛國者는 波斯匿王의 所居之國이니라 祇者는 太子名也니 樹是祇陀太子의 所施일새 故言祇樹니라
給孤獨者는 須達長者之異名이니 園이 本屬須達일새 故言給孤獨園이니라 佛者는 梵語어든 唐言에 覺也라 覺義有二하니 一者는 外覺이니 觀諸法空이요
二者는 內覺이니 知心空寂하야 不被六塵의 所染하야 外不見人之過惡하고 內不被邪迷의 所惑일새 故名曰覺이니 覺卽佛也니라 與者는 佛이 與比丘로 同住金剛般若無相道場일새 故言與也니라
大比丘者는 是大阿羅漢故니 比丘者는 是梵語어든 唐言에 能破六賊일새 故名比丘니라 衆은 多也니 千二百五十人者는 其數也니라 俱者는 同處平等法會니라
육조 如란 가리키는 뜻이고 是란 결정된 말이라. 아난이 스스로 일컬어 "이와 같은 법을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함은 자기가 말하지 않음을 밝힘이니라. 그러므로 여시아문이라 하시니라.
또 我는 성품이고 성품은 곧 나이니 내외동작이 다 성품으로 말미암아 일체를 다 들으므로, 내가 들었다라고 함이니라.
한대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인때이고 佛이란 설법하는 주인이며 在는 처소를 밝히고자 함이고 사위국이란 파사익왕이 사는 나라다.
祇는 태자의 이름이고 樹는 기타 태자가 베푼 것이므로 기수라 하느니라. 급고독이란 수달장자의 다른 이름이니 園이 본래 수달 장자의 것이었으므로 급고독이라 함이니라.
불이란 법어이고 당어에 覺이라. 각에는 두 가지 듯이 있으니 하나는 外覺으로 모든 법이 공함을 觀하는 것이고 둘째는 內覺으로 마음이 공적함을 알아서 육진의 물듦을 입지 않고 밖으로 남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안으로는 삿되고 미혹되지 않으므로 깨달음이라 부르니 覺은 곧 佛이니라.
더불어[與]란 부처님이 비구와 더불어 금강반야의 無相道場에 같이 주하셨으므로 與라 함이니라.
큰비구란 大아라한이니 비구란 범어이고 당언에는 능히 여섯 가지(안, 이, 비, 설, 신, 의) 도적을 깨뜨렸으므로 비구라 하느니라.
들(衆)은 많다는 듯이고 천이백오십 人이란 그 숫자이다. 함께[俱]란 평등법회에 함께 처함이니라.
冶父 如是여 說宜 如是之言을 古人이 說有多途호대 今川老는 蓋取有無不二爲如와 如非有無爲是니라
야부 여시여. 설의 여시란 말은 古人들이 여러 갈래로 說하셨는데, 지금 川老(야부)는 대개 有와 無가 둘이 아님을 如라 했고 또 如는 有, 無가 아닌 것이 是가 됨을 취한 것이다.
冶父 古人이 道하사대 喚作如如인댄 早是變了也라하시니 且道하라 變向甚麽處去오 咄 不得亂走어다 畢竟作麽生고 道火不曾燒却口니라
說宜 南泉이 問請師하사대 講甚麽經고 云講涅槃經이니다 云經中에 以何爲極則고 云以如如로 爲極則이니다
云喚作如如인댄 早是變了也니 須向異類中行하야 道取異中事하야사 始得다하야시늘 法眞一이 頌云호대 涅槃寂滅이 本無名하니 喚作如如早變生이라
若問經中何極則하면 石人이 夜聽木鷄聲이라호리라하시니 謂涅槃寂滅이 本無名字하니 若立名字하면 未免變異去在라
須向異類中行하야 道取異中事히야 圓轉不觸하야사 始得이니라 且道하라 變向甚麽處去오 咄不得亂走어다
若以變不變으로 商量하면 又却不是也니라 畢竟作麽生고 涅槃寂滅이 雖本無名이나 亦不妨因名現體니 爲甚如此오
說名之時에 早己風吹不入이요 水洒不著이라 只有一段通身寒光이어니 喚作如如인들 有甚變去리오
야부 고인이 이르시되 여여라 말한다면 이것은 이미 변한 것이라 하시니 도 일러라. 변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는가. 咄(돌) 어지럽게 쫓아다니지 말지어다. 필경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火)을 아무리 말하여도 일찍이 입을 태운적이 없도다.
설의 남전이 강사에게 물으시되 " 무슨 經을 강의하는가." "열반경을 강의합니다." 또 묻기를 열반경 중에서 무엇을 極則(제일 중요시함)으로 삼는가."
答하길 "如如로서 극측을 삼습니다." 남전이 이르길 "如如라 말하면 벌써 변해버렸으니 모름지기 異類中(다른 입장, 또는 축생류)을 향해 行해서 이중사(異中事)를 취해야 비로소 옳지 않은가." 하시거늘 법진일(法眞一)이 송(頌)하기를
“열반적멸이 본래 이름이 없으니 如如라 하면 이미 변해버림이라. 만약 經中에서 무엇이 極則인가 물으면 石人이 밤에 木鷄(나무로 만든 닭)소리를 듣는다 하시니라.
열반적멸이 本來 이름이 없으니 만약 이름을 세우면 변해버림을 면치 못하니 모름지기 異類中을 향해 行한 곳에 나아가 異類事를 취해 말해야 원만히 굴려 부딪히지 않으므로 비로소 옳다할 것이다.
冶父 如如여 靜夜長天에 一月孤로다 說宜 水與波가 無二하고 波與水가 不別하니 淸寥寥時에 元的的이요 白的的處에 亦寥寥로다
야부 고요한 밤 먼 하늘에 하나의 달이 외롭도다. 설의 물과 물결이 둘이 아니고 물결과 물이 다르지 않으니, 맑고 고요한 때가 원래 적적[的的(분명)]하고 白的的(밝고 분명)한 곳이 또한 고요하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