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랑하기가 민망한 정말로 바람잘 날이 없는 역경의 역사다.
사학자에 의하면, 그동안 99차례나 중국 등 외세침략이 있었다니,
50년마다 전란을 겪은 민족이다.
지금은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졌고, 더러는 물질만능과 세상의 부자 행세를 하지만
우리 국민이 밥걱정 안하고 산지는 5,000 년 역사에서 겨우 30년 남짓이다.
사건에 소스라치게 잘 놀라고, 벌떼 처름 몰리고, 예민하고, 남을 잘 속이고,
귀가 얇아서 잘 속히고 그래서 잘 믿지 못하고, 세사람만 있어도 편을 나누는 것도
생존본능에 근간을 두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은 북한정권이 생존의 수단으로서 집착하던 핵문제가 그 클라이막스에 이른 날이다.
더한 클라이막스는 미국 7함대에서 발진한 크루즈 미사일이 영변의 원자로를 조준 폭격하고,
북한이 한국에 있는 미군시설을 공격한다면서 한국을 공격하고,
한국은 북한공격에 응사하고, 궁지에 몰린 북한이 핵폭탄을 안고 자폭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머리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악마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북한 핵문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독도를 노리는 일본, 북한역사가 중국의 일부라는 동북공정으로 열받지만,
북한은 대륙열강(소련, 중국)과 해양열강(미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쓰러지는 것에 위협을 느낀 김일성 정권에 의하여
민족의 자주적 생존수단이라면서 핵무기 보유에 진력한다.
잘 숨겨놓았으리라고 보았던 북한은, IAEA, 국제원자력기구 감시사찰에
몇 Kg의 플루토늄이 추출된 단서가 포착되자 그만 핵확산금지조약인 NPT탈퇴를 선언한다.
이를 둘러싼 살벌한 협상이 진행되면서, 우리 국민들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1994년 6월, 한반도는 전쟁위기설까지 악화된다. 이것이 제1차 북한핵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인위적으로는 현실화되지 않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지미 카터 미국 전대통령이 평양으로 들어가서 김일성 주석과 담판을 짓고는
그 해 10월, 전격적으로 제네바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합의에 이른다.
구한말, 우리민족을 분단시킨 이른바 제네바 회담의 그 역사적인 장소에서...
내용을 요약하면, 북한은 핵활동을 중지한다.
미국은 북한이 전기 때문에 원자로를 가동한다고 하니 ① 2000 Mwe급의 경수로를 지어주고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하여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하니 ②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선언을 하며,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적대정책을 펴니 ③ 북미 정치.경제관계를 정상화하며,
북한은 앞으로는 안한다 하면서 뒤로 몰래하니 ④ NPT복귀와 IAEA의 핵시설 사찰을 받는 내용이었다.
세월은 흘러, 미국은 부시행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북한은 김일성에서 김정일 체제로 바뀐다.
한국은 IMF라는 국란을 겪으면서도, 북한의 전기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규모인
한국이 10여년에 걸쳐서 기술을 자립한 한국형 경수로 2기를 신포에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 사태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샤론총리가 예루살렘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을 자극하고
시아파 회교도의 대표주자인 빈라덴은 배후가 미국이라면서
여객기로 맨하탄 빌딩에 돌진한다.
열받은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북한도 대량 살상무기의 생산국으로 지목된다.
식량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북한도 한국으로부터 쌀과 경제협력을 받아
숨통이 트이면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한 것이다.
첫댓글 걱정입니다. 문제의 주범이 아파트와 거품든 서비스업인것 같은데요. 제대로 정책을 펼치지 못하니...
불안전한 경제를 걷겠지요
개성공단 진출의 한국기업들이 철수해야겠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