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예멘 난민신청자들과 제주 사마리안하우스*에서 함께 지내던 때부터 시작해서, 느슨한 가족으로 연결된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일을 말하고 싶던 때가 왕왕 있다. 가볍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얘기하고 싶은 얘기도 있지만,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만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하고 싶은 얘기 또한 한가득이다.
‘누구나 배움터’는 이런 마음으로 제안했다. 누구나 이런 얘기들이 있지 않을까?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듣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시대를 사는 청년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배움터가 만들어지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차적으로는 함께 활동하는 길 위의 청년학교의 청년들이 서로에게 자신의 관심사를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더 넓게는 군산 지역 청년들의 오프라인 공론장과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역할을 기대했다.
‘어서 와, 압둘라는 처음이지?’라는 제목은 사실 2018년, 제주 사마리안하우스에 있을 때 만들어졌다. 우리가 캠프에서 경험한 것을 같이 경험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어서 와, 압둘라는 처음이지?’라는 오픈 하우스 행사를 기획했고, 포스터까지 만들었지만, 우리가 만난, 함께 사는 난민을 얘기하는 이 행사가 어쩌면 이들을 대상화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했고,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실행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냥 사람 사는 얘기니까, 이들에겐 단지 일상이니까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난민’이라는 주제는 대개 낯설고 무겁다고 여긴다. 별생각 없이 수다 떨 듯 한 시간 반을 얘기하겠다고 했는데 함께하는 청년은 깜짝 놀라며 30분으로 줄이자고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 개중에 재밌거나 의미 있는 얘기,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를 추리고 추려 목차를 만들었다.
난민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에 난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견 표명이 정치적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3년이 넘는 동안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다 올라오는 세월호에 관한 기사를 보는 것은 부채감을 더했다. 군 생활을 마칠 때쯤 듣게 된 예멘 난민들의 제주행에 대한 소식을 따라가는 것은 마음의 빚을 덜기 위함이기도 했다.
2년 가까이 예멘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도, 느슨한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면서 인식의 사각지대를 넓혀간 여러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정직하게 이 길의 시작을 돌아보자면 절반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머지 절반은 나이브한 온정주의로 시작된 난민과의 동고동락이었다. 이역만리에서 생존을 위해 한국으로 온 이들의 서사를 듣고, 그리고 단지 생존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을 곁에서 함께하면서 나의 천진한 환대를 성찰하게 되었고, 성찰하는 환대는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로 배움터를 마무리했다.
오프라인으로 참가한 이들, 그리고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 여러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난민 활동에 끌리게 된 동기, 예멘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나라로 오게 되었는지, 무슬림, 아랍권 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 다른 문화로 발생한 유쾌한 에피소드 등 누구나 궁금할 만한 좋은 질문들을 받았고, 동시에 내가 그 많은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견했다. 배움터 이후에 재미와 의미가 있는 에피소드를 글로 엮어 책을 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 그리고 난민이라는 이슈를 어떻게 청소년과 엮어나갈 것인지 기대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재미와 의미가 있는 삶을 지속해서 살고픈 나에게 ‘어서 와, 압둘라는 처음이지?’는 충분히 뿌듯한 시간이었다.
* 2018년 제주로 온 예멘 난민신청자를 위해 긴급구호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