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溪小傳」 편집자 윤상홍 글 퍼옮(예안중 15기 카톡방 금창석동기 올린글 다운받음 2020.11.20)
<29회> 退溪小傳
「退溪哲學의 概要」
퇴계는 유가사상(儒家思想)의 원천(源泉)인 주자학(朱子學)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성리학(性理學)으로 대성시켜 놓은 동양철학의 태두(泰斗)다. 그는 성리학에 대해 심오한 저술을 수없이 남겨 놓았는데﹐ 그 방면에 문외한인 필자가 퇴계의 학문에 대해 섣불리 언급한다는 것은 경솔의 한계를 넘어 오히려 망발에 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퇴계의 전기를 쓰는 이상 그 학문에 대해 전연 언급을 아니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내 나름대로 지극히 세속적인 측면에서 그 학문을 간략하게나마 소
개해 볼까 한다.
성리학은 본디 유가사상(儒家思想)에서 비롯한다. 유가사상이란 정치(政治), 윤리(倫理), 철학(哲學), 종교(宗敎), 교육(敎育) 등이 분화(分化)되기 이전의 도덕사상이므로﹐성리학에는 이상 모든 분야의 학설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의 유가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등이었는데, 그 학문이 송(宋)나라 때에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頣)﹐ 횡거 장재(橫渠 張載), 강절 소옹(康
節 邵雍), 명도 정호(明道 程顥), 이천 정이(伊川 程頣), 연평 이동(延平 李侗)을 거쳐서 회암 주희(晦庵 朱熹)에 의하여 대성되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사상을 사람들은 주자학(朱子學)이라고 일컫는데, 주자학이란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을 기거(基據)로 하여 인격과 학문을 깊이 닦아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학설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고려말기에 수입되어 회헌 안 유(晦軒 安裕), 이재 백이정(彛齋 白頣禎), 역동 우탁(易東 禹倬)﹐ 목은 이색(牧隱 李穡),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등에 의하여 소개되어 왔고﹐ 이조에 들어와서는 퇴계 이 황에 이르러 비로소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퇴계는 주자학의 심오한 이기·심성(理氣·心性)의 원리를 철저하게 규명하여 주자 자신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학문적으로 정립(定立)하여 주자철학의 체계를 뚜렷하게 성립시켜 놓았다. 퇴계의 귀중한 저서의 하나인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심경강해(心經講解) 같은 책이 바로 그러한 철학저서들인 것이다.
동양 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인 주자학의 발원지는 물론 중국이었지만, 그것이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미처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가 우리 나라 학자인 퇴계에 의하여 비로소 철학적인 학문으로 체계화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로서 크게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퇴계는 주자학의 근본을 어디다 두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학설을 간추려 말하면,
그는 이(理)와 기(氣)를 엄격히 구별하되 이(理)로써 기(氣)를 다스려 가며 이(理)에 기(氣)가 순종해야만 도덕사상이 확립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퇴계는 자연관에 있어서나 인생관에 있어서나 「동화(同和) 내지는 「조화(調和)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보아왔다. 순천자는 흥하고(順天者興), 역천자는 망한다(逆天者亡)는 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성현의 말씀이거니와 퇴계는 어려서부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오는 것을 인생관의 기본 철리로 삼아 왔었다.
퇴계의 기본적인 자연관과 인생관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시를 한두 편 인용해 보기로 하자.
그는 19살 때에 이런 시를 지은 일이 있다.
홀로 초당에서 만권 책을 애독하며
獨愛林廬萬卷書
한결같은 뜻으로 십년을 지내왔소
一般心事十年餘
이제사 우주의 원리를 깨달은 듯 싶어
邇來似與源頭會
내 마음 꽉 붙잡고 태허를 보았노라
都把吾心看太虛
이 시를 자세하게 음미해 보면 퇴계는 자연에 완전히 동화되어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과 동화됨으로써 자기자신을 몰각시켜 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과 동화됨으로써, 오히려 광활한 자연 전체를 자기 마음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을 대자연계의 극한에 까지 확대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면을 우리들은
「이제야 우주의 원리를 깨달은 듯 싶어 내 마음 딱 붙잡고 태허를 보았노라.」
는 귀절에서 넉넉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서 보면 퇴계는 자신(인간)을 대우주(大宇宙)에 대한 소우주(小宇宙)로 여겨왔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약관 19살에 이미 그와 같이 심오한 천리를 터득하였거니와
, 그러한 사상은 노후에도 변함이 없어 그가 50대에 지은 「산거사시음(山居四時吟)이라는 시에도 그러한 사상이 여실히 나타나 있는 것이다. 가령
아름다운 석양빛이 산과 물에 동하는데
夕陽佳色動溪山
바람 없는 구름가에 날새가 돌아온다
風定雲閒鳥自還
홀로 앉은 그윽한 회포 누구와 풀어보리
獨坐幽懷誰與語
바위는 말이 없고 물만 졸졸 흐른다
巖阿寂寂水潺潺
이러한 시라든가 또는
안개 걷힌 봄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霧捲春山錦繡明
진기한 새들 어울려 제각기 우지진다
珍禽相和百般鳴
이즈음은 나를 찾는 손님조차 없으니
山居近日無來客
푸른 풀이 뜰 안에도 마음껏 자라났네
碧草中庭滿意生
이러한 시들을 읽어보면 퇴계는 인간 세계를 떠나 자연 속에 파문혀서 자연과 동화된 생활
을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확고한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즉 자기 자신을 대우주와 대등한 소우주로 생각하는 동시에 그러한 주체확립이 대우주와 조화를 이루면서 대우주 조차 자기 소유로 만들어 가는 비결이기도 했던 것이다.
요컨댄 퇴계학의 요체를 한 마디로 요약해 말하면 그는 천지운행의 자연의 섭리를 학문적으로 십분 터득하고 있어서﹐ 성리학에 있어서도 이(理)와 기(氣)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되, 궁극에 가서는 이(理)로서 기(氣)를 다스려 모든 사물을 냉철하게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이(理)와 기(氣)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이(理)란 이성(理性)을 말하는 것이오. 기(氣)란 감성(感性)을 뜻한다고 말해도 그다지 과오가 아닐 것이다.
퇴계의 학설에 의하면,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을 함께 타
고 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생활에 있어서 이성도 무시할 수 없고 감성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감성을 무시하고 이성 일변도로 살아가면 인간생활은 인정도 애정도 없는 삭막하고도 냉혹한 생활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또 그와 반대로 이성을 전연 무시한 채 감성만으로 살아가면 각종 범죄가 성행하고 윤리 도덕이 퇴폐하여 인간생활이 동물생활로 전락해 버린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이성과 감성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면서도 이성이 감성을 다스리며 살아나가야만 그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감성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역시 감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면서도 이성이 많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감성이 억압을 당하여 모든 행동이 이성일변도로 치우쳐 버렸을 뿐이다.
감성적인 사람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이성을 전연 소유하
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이성을 소유하고 있기는 하면서도 감성이 유난히 발전되었기 때문에 매사를 감정에 치우쳐서 무분별한 행동을 취하기 쉽게 되는 것이다.
퇴계는 인간성의 그러한 면을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이론화 하여, 이수기졸론(理帥氣卒論)을 주장하였고 이와 기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되 이는 기를 다스려 나가는 입장에서 조화를 이루어야만 생활도덕이 확립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은 기론적 이기론(氣論的 理氣論)을 이미 논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理)와 기(氣)는 상관관계에서 천지만물이 형태화하면서 음(陰)과 양(陽)으로 분화한다고 말하여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했었다. 서경덕은 기와 이를 일원(一元)으로 보고, 퇴계는 이와 기를 대대(對待)하는 것이라고 보되, 이가 기를 다스려 나가는 입장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퇴계의 제자로서 성리학에 밝은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고봉은 퇴계와는 또 달리 이와 기는 전연 별 개의 것이라고 이기공발론(理氣共發論)으로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주장하고 나선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퇴계와 기고봉은 비록 사제지간이기는 하면서도 8년동안에 걸쳐 철학적인 질의 응답을 계속해온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이거니
와 퇴계는 60세 되는 해에 기고봉에게 보낸 변론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주장한 일이 있었다.
「사단(四端)은 정(情)이오, 칠정(七情)도 역시 정입니다. 다 같은 「정이면서 어째서 사단
칠정이라고 다른 이름을 사용합니까. 보내온 편지에 보면 〈대상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
했는데﹐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대개 이(理)와 기(氣)가 서로 힘입어 체(體)가 되고, 서로 기다려 용(用)이 되는데, 진실로 이 없는 기도 있을 수 없고﹐ 또한 기 없는 이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남을 측은하게 여길 줄 안다든지﹐ 불의를 부끄러워 하고 불선(不善)을 미워할 줄
안다든지, 사양한다든지﹐ 시비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발하여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성(性)에서 발하여 나온 것입니다.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은 어디서부터 발하여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바깥 물(物)이 그 형상에 부딪쳐서 안으로 동(動)하여 그 곳을 연유하여 나온 것입니다. 사단(四瑞, 仁、義, 禮,智)에서 발하여 나오는 것을 맹자는 심(心)이라 하였은 즉 심은 진실로 이(理)와 기(氣)가 합한 것입니다.」
그리고 퇴계는 계속하여 이렇게도 주장하고 있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는 모두가 이(理)에서 발한 것으로서 그 네 가지는 모두가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그 네 가지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였고 또 정(情)은 근원이 착하여 선이 될 수 있으면서도 악에 흐르기 쉽기 때문에 마음의 바탕을 경유하여 나옴으로써 절도에 맞는 화(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절도에 맞지 않는 것' 이 한번 있고 보면 마음은 이미 바른 것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위의 이론으로 보더라도 퇴계는 자연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조화」라는 것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겨 왔듯이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독주를 배격해 가면서 항상 이와 기의 조화를 극력 강조해 왔었다.
천지만물이 음(陰)과 양(陽)으로 조화를 이루며 운행되어 가고 있음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일이거니와 퇴계는 지금부터 근 5백 년 전에 이기론에 있어서 이론의 근거를 이미 조화에 두고 있었으니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四端(유교: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가지 마음씨)
仁(惻隱之心), 義(羞惡之心),
禮(辭讓之心), 智(是非之心)
<29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