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시집 [소리가 강을 건너다]가
2011년 8월, 동학사에서 나왔다.
이광 시인은 1956년 부산 출생으로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등단하였다.
다음은 '시인의 말'의 일부이다.
"... 첫 시집을 엮으며 갚아야 할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는
심사가 있었지만 부끄러움이 앞선다. 살아간다는 건 빚을 지는 일이다."
다음은 정미숙 문학평론가의 해설 '별빛 사랑과 시의 길'에서 발췌하였다.
"... 이광의 시를 민중시 혹은 현실주의 시로 간단히 구분할 수 없는 것은
만물-민중의 현실과 존재방식을 읽어내는 시선의 구체성과 심오함에 있다.
그의 시선은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발생시키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세상과 '나', '주체'와 '대상'간의 대립각은 날카롭지 않다.
시련과 응전을 통한 이력이 생의 유연한 탄력이 된 듯하다.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
'시' 혹은 '삶'이라는 시인의 고백은 비장과 숭고의 미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 이광의 시적 과정은 도(道)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 자기를 벗어나야
타자가 보이고 길도 보인다. 자기애에서 비롯한 자기 생명의 인식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타자를 향해 열려 가고 마침내 감추어진 생명의 아름다움을 현현하는 과정이
참된 시인의 시작 역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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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이광
어두움 지워 내고
이제 시가 나를 쓴다
영혼의 다락방에
초 한 자루 타는 밤
찻잔에
나를 따른다
우러나라
우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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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삼장(三章) / 이광
1. 단소
바람의 회초리에 불볕 아래 여문 시절
곁으론 당당해도 채울 수 없던 허기
푸른 꿈 동강난 마디
소리꽃이 맺힌다
2. 징
두드린 자국 위를 더 두들겨 지워 내던
무수한 망치질로 방짜 되어 담은 소리
때리면 쏟아져 내려 넘쳐흐를 서러움
득음에 이른 침묵 감추어 둔 지난 날
홀로는 긴 울음을 감당할 수 없나니
그대여 나를 치거든 이 몸 잠시 잡아 주오
3. 해금
님 떠난 포구에서 기다리듯 떠 있는 배
빈 돛대 매어 둔 줄 삿대 저어 흐느껴
소리가 강을 건넌다
메아리 이는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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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사람들 8 - 떡집 개업날 / 이광
팥고물 듬뿍듬뿍 시루떡이 먹음직
백설기 무지개떡 한입 꿀떡 꿀떡 경단
옷가게 하던 자리에 떡집이 들어섰다
한복에 앞치마 두른 새댁이 사장이고
떡메 든 젊은이가 연하의 신랑이다
시장통 입방앗간도 구시렁 쿵덕쿵덕
개업떡 돌리는 거 쟈들도 다 알 낀데
코앞에 떡집 내고 맛배기도 안 가오제
파라이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바가지다
바빠서 난리던데 그랄 정신 있건나
새댁이 해볼라꼬 하는 짓이 이뿌더마
신랑은 몸짱이란 기 벌써 소문 났부꼬
말랑말랑 쫀든쫀득 인절미 나올 차례
신랑은 떡을 치고 각시는 썰어낸다
손님들 줄 잇고 있다 시장이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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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다 / 이광
우리 집 가는 길목 붕어빵 굽는 여자
모자와 마스크로 눈매만 남은 얼굴
물 찾아 먼 길에 지친
베두인 아낙 같다
막걸리 따르는 듯 주전자 속 반죽 붓고
빵틀을 뒤집는 손 서툴다 여겨질 때
노바디 노바디 버츄
휴대폰이 울린다
응, 아들
엄마 바뻐, 좀 있다 전화할께
보란 듯 피어오른 마스크 벗은 얼굴
별이다
사막의 별빛
봉지 가득 담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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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을 재다 / 이광
오른발 살짝 들고 왼발로만 디딘다
액정 달린 체중계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동무랑 앙감질하며 깔깔 웃는 날 만난다
무럭무럭 자라날 땐 주렁주렁 달리던 꿈
성장의 시곗바늘 멎은 뒤 흐른 시간
여전히 꿈은 잘 있나 체중 재듯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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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많은 시인을
오늘의시조학회에서 만났다.
지금은 오늘의시조시인회의가 되었지만
단체의 이름이 대수랴!
(아니다, 이름도 대수다!)
이광 시인을 처음 만난 곳도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행사 뒷풀이 자리였다.
시끌벅적한 자리였는데
소리내 웃지도 않고 누구와 귀엣말을 나누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 계시던 모습을 보고
과묵하신 분이구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시인의 첫 시집을 보니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들끓고 있다.
<시장 사람들> 연작을 읽으며
마치 광주의 양동시장에 서 있는 듯 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