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차 산행] ♣ 낙동정맥 양산 천성산 (2)
▶ 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 [산행 코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부면 대석리 ▶ 홍룡사 주차장(11:40)→ 홍룡사[홍룡폭포]→ <오름길>→ 능선→ 화엄벌 억새밭→ 천성산[원효봉, 922m]→ 원효암→ 편백나무숲→ 원효암 계곡→ 주차장(원점회귀, 16:40)→ 상경→ 귀경(오후 10시)
*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다] — 가을이 물들어가는 산야의 나무들
오후 12시 15분, 홍룡사 절마당을 가로질러 산(山)으로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선두에서 민창우 기획이 길을 잡고, 후미는 역시 유형상 대장이 수습해 오며 대열의 중간에서는 김재철 대장이 수고하기로 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산이다. 여름에 짙푸르게 성성하던 나뭇잎들이 누릇하게 계절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시월 특유의 맑은 기운이 온몸에 감겨든다. 산길은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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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계속에서 올라만 가는 길이다. 공기는 선선하나 햇살이 따사로운 비교적 포근한 날씨, 몸이 금방 더워졌다. 경사가 급해지는 길, 대원들의 간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두의 지평이 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뒤에 오는 대원들이 도착하여 허리를 펴고 더운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시 가파른 길목으로 접어든다. 그렇게 계속해서 오르기만 하는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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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만큼 보인다] — 조용히 피어 있는 청초한 야생화
야생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지평이 간간이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피어 있는 꽃에 눈을 맞춘다. 보랏빛 ‘용담’이 청초하고, 별처럼 빛나는 ‘자주쓴풀꽃’이 정감을 더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보통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지평의 눈은 산야에 숨은 보석처럼 피어있는 들꽃을 놓치지 않는다. 사실, 어디 꽃뿐이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살면서 일상 누구든 무심코 지나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산길에서 ‘꽃눈’을 맞추듯이, ‘그’를 보고 ‘꽃’이여 하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지 않는가. 인생 만사의 모든 인연(因緣)이 그렇게 맺어져서 ‘사랑’이 되고 ‘우정’이 되고 때로는 ‘생명적 가치’를 함께 나누며 일생을 같이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오후 1시 20분, 오르막길 산록의 공지에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했다. 지평은 산의 주 능선까지는 조금 더 올라가야 하지만, 이미 점심시간도 경과했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능선은 식사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므로 여기에 자리를 잡는다고 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남도의 산록에서 멀리 서울에서 달려온 대원들이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내어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 [천성산 억새 밭] — 청람빛 하늘 아래 펼쳐진 공활한 시공
오후 2시 점심식사 후, 다시 산행을 계속하여, 금방 정상의 능선에 이르렀다. 산의 능선은 그대로 광활한 평원(平原)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억새밭 고원(高原), 화엄벌이다. 사방이 확 트인 가을 천성산의 풍치가 한 눈에 안겨 들어왔다. 멀리 아득하게 올려 보이는 정상까지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곳을 산행지로 잡은 민창우 기획의 산행 포인트, 바로 그 화엄벌 억새평원이다. 완만한 평지의 능선을 따라 억새밭 오솔길이 이어진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람빛 하늘, 끝없이 펼쳐진 고원의 억새밭, 그 자연이 안겨준 무한 자유,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공간 속에서 더운 인간의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고, 의식의 경계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갈색의 평원 위에는 오직 파아란 하늘이 팽팽하게 드리워져 있을 뿐, 있는 그대로 무위자연이다. ‘화엄벌’이라고 명명하는 이곳은 우주 대자연과 마주하는 순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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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산 고원의 억새밭] — 화엄늪 습지 보호구역
능선 길의 아래쪽에 늪이 있다. 이름하여 <화엄늪 습지 보호구역>이다. ‘화엄늪’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천여 명의 승려에게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했다는 유래가 있는 ‘화엄벌’에 형성된 산지습지로서 자연환경 변천의 귀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이탄(泥炭, 늪에 살던 식물들로 만들어진 흑갈색의 퇴적물)층이 형성되어 있고, 앵초, 물매화, 잠자리난, 희제비난,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 다양한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 [천성산 도룡뇽 사건] —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5년이나 지연시킨 …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구간(26.3km)을 터널로 통과하는 공사를 시작할 때 문제가 된 현장이었다. 민창우 기획이 이곳 천성상 자연 습지와 관련한 ‘천성상 도룡용 사건’에 대해 말을 했다. 그것은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관통하는 터널 공사’에 대한 환경단체와 불교계의 반대로부터 시작한 일련의 갈등과 대치 상황을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천성산 밑으로 고속철도 터널을 뚫게 되면 천성산 ‘화엄늪’과 ‘무제치늪’ 습지에 물이 빠져 나가 많은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의 습지가 사라져버린다고 하여 환경단체와 불교계가 이곳에 사는 ‘도룡뇽’을 원고로 하여 소송을 낸 사건이었다. 공사를 시작한 2002년부터 공사는 중단되었고 막대한 재정손실을 가져왔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 11월에 터널이 완성되었고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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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이곳 천성산 내원사에 수도하는 지율스님(본명 조경숙)이 공사장 앞 포클레인 앞에서 20차례 이상 좌선을 하면서 공사를 막은 이야기, 천성산 터널 공사 방해로 인해 6조원의 재정 손실을 초래했다는 기사에 대해 ‘허위기사’라고 소송을 한 일련의 사건 등이 그것이었다. 경부고속철도가 개통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지율스님이나 환경단체가 우려한 문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필자가 이 <산행기>를 마무리하던 중, <2018.10.27. 조선일보 A5전면>에 천성산 화엄습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지율이 "말라붙는다"며 단식한 천성산 습지, 살아 숨쉰다.” 제하에 ‘습지에 도룡뇽도 흔히 찾아볼 수 있고, 곳곳에 물웅덩이, 습지식물의 천국’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여기, 치열한 갈등 끝에 완공된 천성산 ‘원효터널’에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KTX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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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본연지성] — 사람도 하나의 억새가 되는 무위자연의 경지
사람이 순수한 자연의 품에 안길 때, 사람도 또한 순수한 본연지성으로 돌아간다. 억새밭에 들어가 포즈를 잡는 대원들의 표정이 그렇게 순수할 수가 없다.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소년이 되고 소녀가 되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지극히 행복해 보인다. 일상의 생활에 골몰하며 늘 전전긍긍 손익을 헤아리며 갈등하고 사는, 불안한 실존의 그늘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스스로 하나의 억새가 되어 그 억새밭에 서 있는 것이다. 일부러 지어서 나오는 표정이 아니다. 그냥 스스로 그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를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했다. 산(山)은 늘 이렇게 우리의 가슴에 안겨들고 우리는 그렇게 산이 되고 자연이 된다. 사람이 산에 들면 산이 되고, 생명감이 넘치는 산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을 보통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바로 그것이다. 한 세상 살고 나서 죽는 것은 영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은 생명의 본향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요 별개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생사불이(生死不二)’라고 했다. 장자(莊子)는 마누라의 죽음을 앞에 두고 대야를 두드리며 즐겁게 노래했다. 이승의 고통을 벗고 생명의 본향인 자연으로 돌라간 아내를 축하하며 노래를 부른 것이다. 아, 그 도저한 경지가 바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이며 생사불이(生死不二)가 아니겠는가. 장자(莊子), 구만리 장공(長空)을 날아가는 대붕(大鵬)의 사유(思惟), 필부(匹夫)에게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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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으로 가는 길, 철조망 통제선] — 뽀얀 억새꽃이 눈부신 은빛으로 빛나는
정상(頂上)으로 오르는 억새밭 길목의 양쪽에 연두빛 철사로 펜스를 쳐놓고, 또 그 안에 둥글게 감은 철조망으로 깔아서 통제선을 만들어 놓았다. 지평의 말하기를 그 안은 지뢰밭이란다. 원래 천성산 정상에 ‘나이키 미사일 부대’가 있었고 외부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지뢰를 설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여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삼엄하게 경계하고 죽이고 살리는 일은 인간의 일이요, 오늘 만나는 산록의 풍경은 무애한 평화경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맑고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역광(逆光)으로 내리니 뽀얀 억새꽃이 눈부신 은빛으로 빛난다. 모든 시간이 정지해 있는 듯한 고즈넉한 정적(靜寂),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과 마음이 맑은 기운으로 채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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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상 정상에서의 조망] — 영남 알프스, 낙동정맥의 산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오후 2시 40분, 해발 922m 천성산 정상에 올랐다. 하늘은 파랗게 드리워있고 너른 산의 정상에는 청정한 가을 오후의 햇살이 화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정상은 너른 광장이었다. 이전, 미사일 부대가 있던 자리로 생각된다. 정상의 단 위에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그 정상석을 중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인증샷을 누르고 전체 사진도 찍었다. 이곳은 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이므로 주변의 산세를 조망하게 아주 좋은 장소이다. 바로 북쪽의 산곡이 내원사 계곡이고, 그 동쪽에 낙동정맥이 내려오는 천성산 공룡능선과 천성산 제2봉(859m)이 솟아 있다. 서북쪽 산군 사이로 양산의 아파트가 보인다. 동쪽은 양산시 웅상읍인데 정상의 바로 아래 동쪽에 해맞이 장소도 있다. 그리고 눈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이곳을 지나는 낙동정맥이 금정산으로 이어진다. 맑은 하늘아래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천성산 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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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사로운 하산 길] — 역광을 받은 억새가 눈부시게 빛나는
하산 길, 억새밭 사이에 나무테크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내려왔다. 아주 완만하고 부드럽게 내려오는 길, 쾌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변의 억새들이 역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완만한 이어지는 산세, 활연히 탁 트인 시야, 주변의 억새를 감상하며 내려가는 길이다. 쾌적하고 아주 편안한 길이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오니 포장된 도로가 나 있었다. 상북면 대성에서 원효암을 거쳐 천성산 미사일 기지로 올라오는 도로였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와 함께 내려온 남정균 고문과 김의락 자문위원이 바이크를 타고 올라와있었다. 두 대원은 요즘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와서 산행보다는 MTB(산악자전거타기)를 즐긴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사이 이 산간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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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 — 고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산록
가을 오후의 밝은 햇살을 받으며 완만한 내리막길의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0.8km, 몇 굽이 도로를 따라 내려와 원효암에 이르렀다. 오후 3시 20분, 우리는 원효암 경내로 들기 전의 이정표에서 포장도로 길이 아닌 산길로 내려왔다. 우리가 하산 길로 잡은 원효계곡으로 내려가는 산길이다. 가파르게 내려오는 산길, 산록의 무성한 활엽수들이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간간이 보이는 붉은 단풍이 곱다. 산길은 산록의 옆구리를 따라 이어지다가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 되었다. 올라간 만큼 고도를 낮추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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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계곡, 쾌적한 편백나무 숲길] — 차고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오후 3시 40분, 산길의 저 아래에서 원효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쯤해서 산길은 편백나무 숲이었다. 아침 내려오는 차 안에서 지평이 말한 편백 숲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장대한 편백이 빽빽하게 산록을 채우고 있었다. 장대한 나무 사이로 오후 밝은 햇살이 비끼어 스며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숲길, 편백은 사람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방출하는 수종(樹種)으로 알려져 있다. 대원들 앞뒤의 간격이 떨어져 호젓하게 걷는다.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숲길은 아주 쾌적했다. 심호흡을 하며 여유 있게 걸었다. 오늘 상경의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시간도 넉넉했다. 강완식, 윤종선 대원과 함께 길 가까운 계곡에 내려와 차고 맑은 물에 발을 씻고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도 물맛을 보았다. 정해진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약간의 시간의 차이를 두고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양산에서 서울까지 워낙 먼 거리이므로 서둘러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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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천성산 화엄벌 억새밭의 장관을 생각하며
오늘은 멀리 양산의 천성산을 다녀왔다. 광활하게 펼쳐진 천성산 화엄벌 억새밭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오직 맑은 하늘과 만나는 순수한 대자연의 고원에서, 세상에서 담아온 더운 가슴을 열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무한한 자유와 평화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먼 데까지 오느라 미명(未明)의 새벽에 출행한 여정이었지만, 고원의 억새밭에서 누린 행복감은 그 여정의 수고로움을 값하고도 남았다.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가지산 도립공원, 천성산 정상에서 하늘을 마주하며 하늘이 내린 은혜로운 시간에 감사했다. 그리고 하산 길의 편백나무 숲길, 몸과 마음을 가뿐하게 하는 발걸음이었다. 오늘 좋은 산행지를 잡아서 길잡이를 한 민창우 기획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함께 한 우리 대원 모두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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