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교육 공동체 실험이야기
양희창 ( 간디 공동체 )
기술 빅뱅 시대, 4차 산업혁명 사회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림과 동시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였음을 예고하고 있다. 가상현실이 현실이 되고 인공지능과 보내는 시간이 인간 대면보다 더 밀접한 일상이 되는 스몸비 족과 어떻게 삶을 나누고 무엇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을까?
또한 빅 데이터의 무한 확장을 꾀하는 거대 플랫폼 경제 속에서 빈부 격차, 저성장과 실업 문제는 필연적 결과물로 따라 다니고, 탐욕의 물질문화는 자연재해, 기후변화, 미세먼지, 핵 재앙 같은 치명적인 종말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를 오랫동안 뒷받침해 온 무한 경쟁, 승자 독식을 가르치는 입시중심의 교육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학교를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지식을 획득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청춘을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탈학교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고 이들에게 유 선생(유투브)은 단연코 최고의 교사이다. 그러나 SNS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소통 단절과 더불어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상황을 맞이할 땐 거의 공황상태를 경험하는 아이들에게 인성, 문화 예술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교육공동체 운동을 시작하면서,
1997년 산청에서 간디학교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 사랑과 자발성으로 교육하는 학교를 표방한 것은 경쟁과 효율을 기반 한 공교육에 대한 저항이었고 또한 교육운동이었다. 교육의 주체는 아이들이기에 스스로 배움을 선택할 수 있고 입시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는 교육적 신념이 입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농사를 배우게 하고 옷 만들기, 집짓기 같은 자립교과를 만들어 생태적 삶을 고민하도록 하였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불복종 정신은 배움의 공간을 학교너머, 사회 전체로 확대하여 사회 참여, 평화 운동,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는 역사의식으로 자리 잡게 한다. 지금도 아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진 채, 학교를 졸업하고 이런 저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우린 어쩌면 아이들이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배려와 돌봄의 공동체 정신을 지닌 ‘협력하는 괴짜’가 되기를 은근히 기대한 것 같다. 획일성을 부정하고 다양한 삶을 펼치기를 원했던 아이들의 ‘삶의 행진’을 바라보면서 초창기 교육 해방구로서의 간디 공동체는 나름 사회적 역할을 조금이나마 담당하였다는 생각은 든다. 잔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는 운동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점점 인가받은 고등학교와 의무교육 하에서의 비인가 중등과정은 서로 간의 지향점은 같되 방법상의 상이점을 발견하게 되고, 교육청의 갑작스런 중학교 해산 명령은 이 년 동안의 눈물 나는 저항을 통하여 그동안 쌓여진 학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과감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몰아간 것이다. 그래서 몇 명의 교사와 중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몸만 뉘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났고 2002년 지금의 제천 간디학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산청을 떠나면서 두 가지 큰 결심을 하였고 지금도 그 초심은 그럭저럭 지켜지고 있다. 하나는 제천간디학교는 인가를 받지 말자는 것이었다. 인가를 받지 않아야 진정한 학교로서의 모 습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고, 학교도 제도 속에 닫힌 공간이 아니라 마을 속에 존재하는 열린 배움터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나누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학교와 마을의 경계가 무너지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교사와 아이들은 먼저 지역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이 되고 도시가 아닌 농촌 마을이 점차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 되도록 공동체를 실험하고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한 지가 벌써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두 번째 바뀌려고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간디 공동체는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앎이 삶이 되는 교육을 해 보자고, 질문을 던지는 공부를 해 보자고 프로젝트 수업, 무학년제, 식·의·주 교육, 작업장 중심의 교육, 졸업학년의 한 학기 인턴제 실시, 인문학 자치학교 열기, 등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졸업하여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고 풀어보는 공부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도시 입성과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위하여 준비하고 내가 살고 싶은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역경지수를 높이고 자립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살림살이 공부를 위해 지금도 교사들과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미래의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까? 대안학교도 인구절벽시대의 청소년 인구 감소 현상과 대안학교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으로 인해 존폐위기를 맞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교육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 간 적이 있는데 2030년이 되면 지금의 학교 형태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고, 지역사회 전체가 학습 공간이 되고 평생 학습의 진화된 형태인 학습 공원 ( Learning Park ) 으로 탈바꿈하게 될 거라고 주장하는 벨기에의 사례가 주목을 끌었다.
우리로 치면 벌써 간디학교가 꿈꾸며 준비하고 있는 마을 공동체 학교인 셈인데 여기에다가 학교의 기능보다 마을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는 모습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제천에는 귀농, 귀촌하신 서른 가정이상의 학부모들과 자연스럽게 모여진 귀촌인들이 모여서 ‘마실’이라는 지역 주민 센터를 조직하고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하고 계신다.
이러한 삶에 뿌리 한 지역 공동체가 간디교육 공동체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교육이라는 화두를 통해 한 두가정 모이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미래 농촌 공동체의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심이 된 것이다. 졸업생들이 지금은 마을 까페를 중심으로 몇 사람만 생활하고 있지만 곳곳에 작업장이 생기고 후지무라 선생의 ‘비전력 공방 공동체’처럼 청년들이 삼만엔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서 너 가지 실행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있다면 더 많은 청년들이 모여 들게 될 것이다.
학교든 공동체이든 자기 나름의 ‘토착화’가 필요한 것 같다. 산청에서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교육적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화석화된 공룡이 아닌 살아 꿈틀거리는 생태계를 조성하려고 애써 왔는데 그건 유수한 외국 사례를 그대로 차용할 게 아니라 우리만의 독특한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배우는 것이 즐거운 삶, 일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공동체를 위한 교육, 문화, 정치, 경제가 공유되는 배움터의 구상은 이제 발걸음을 뗀 셈이다. 아 마도 비틀거리며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구상하며
필리핀 고등과정이 삼 년에서 일 년으로 전환되었다. 급격한 변화이다. 일 년 과정을 통해 최소한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며 소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깨달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일 년이라는 시간은 무척 보람될 것이다. 단지 필리핀이라는 공간이 여행이나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닌 아시아인으로서 미래 삶에 대한 구상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대안학교 졸업생과 홈 스쿨러 중심으로 대안대학을 만들어 보겠다고 서울, 제주, 중국 등지에서 작은 실험들을 해 오던 중 필리핀에서 아시아 평화대학 본부를 설립하고 아시아 각 지역을 잇는 네트워크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민족과 혈통을 넘어서는 청년 공동체의 실험이 왜 필요할까?
빈곤과 자연 재해, 민주와 통일의 문제는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초국가적 문제이며 이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단절된 사고를 확장하고 함께 일하고 배우는 자치, 자립 공동체를 실험해 보면서 지구적 사고와 지역적 행동이 가능한 소셜 디자이너의 배출이 가능하게 하는 아시아 교육이 요구된다. 국가 단위의 교육과 삶을 극복하는 아시아 청년 공동체가 곳곳에서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시아 평화대학은 필리핀에서 일 년 동안 어학과 인문학, 자립교과를 배우고 열 개 나라 공동체에서 6개월 정도 심화과정을 밟을 수 있게 구상하고 있다. 아시아 교사가 되고 싶은 청년은 네팔에서, 평화 공정여행가 되고 싶은 청년은 제주에서, 중국에서 무역을 하고 싶은 이들은 중국 공동체에서 배움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이며 청년들은 분단과 이념의 경직성에서 벗어난, 국경을 넘나드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이 사회는 섬처럼 고립된 혈통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의 틀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공동체 운동을 하는 이들도 이러한 우리들만의 공동체를 은근히 주장하는 면이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를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가 하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다음 학교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간디 공동체는 교육을 중심으로 삶을 고민하고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만들어진 경우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서로 합의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교육 공동체의 실험이 구성원의 행복과 민족의 통일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