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심과 강심
남을 아는 것을
지혜롭다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현명하다고
합니다.
남을 이기는
것을
역심(力心)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심(强心) 이라고 합니다.
남과 비교하여
판단하는 기준을
자존심이라 하며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 물정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태도를
자존감이라 하지요.
우리는
이 자존심을 버리고
항상 자존감을
갖고 세상살이를 한다면
스트레스 없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자는
남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힘(力/역)이
세다는 것이지
결코 강(强)하다는 뜻은 아니라
했습니다.
내 자신과 싸워
이기는 자가
진정 강한 자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탐욕(貪慾)
나태(懶怠) 교만(驕慢)
불신, 거짓과
싸워서
이기는 자가
진정한 강자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이긴다 함은
자기의
사리사욕 (私利私慾) 을 극복하고
마음을 비우며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함께 더불어 창조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라 하겠지요
즉 자기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
자기위주가 아니라
항상 상대위주의
감성과 이성을
지닌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사람을 말하지요.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때가 있으며
내가 있을 자리와
떠나야할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옳바른 길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남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는 것이고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모든 것에
정확한 판단과 이해 그리고
긍정적 사고를 갖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
돌을 보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1월도 어느새 하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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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철종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선달'이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선달이란 호칭은 과거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고, 그냥 평소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주변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서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묵갈림)겨우 입에 풀칠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해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효자 아들은 쌀집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치 월급을 가불받아 아버지께(서선달)드렸습니다.
서선달은 1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어느 고개를 넘던 중 그만 돈을 흘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노인양반이 이 돈꾸러미를 다행이 발견했는데, 세어보니 무려 백냥이나 되는 큰 돈이었습니다.
한편 서선달은 30리는 더 가서야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 돈을 주운사람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횡재라고 좋아하는 그의 하인에게 일러 말합니다.
''돈을 잃은 사람은 반드시 찾으러 온다.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꼬!!"
돈을 주운 그 노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이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그 자리에서 기다렸습니다.
과연 한참 후 서선달이 얼굴이 훍빛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주운 돈을 서선달에게 돌려주자 서선달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찿아준 은혜를 갚겠다며 사례를 하려 하는데~
그 사람은
"은혜랄 게 뭐가 있소 당연한 일인데"
하고는 펄쩍뛰며 사양을 했습니다.
그는 주운 돈 100냥을 그대로 서선달에게 전달 해준 뒤 가던 길을 갔습니다.
서선달도 다시 집을 향해 갔고 이윽고,
어느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침 한 소년이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구하나 뛰어들어 구해 줄 생각은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헤엄을 못치는 서선달이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저 소년을 구해내면
지금 당장 백냥을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살려냈습니다.
죽다 살아난 도령이 선달에게 말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고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안동에서 제일 큰 부자인데 함께 가시면 백냥을 갚아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선달은 무슨 사례를 받고자 한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있는지라 같이 안동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안동의 총각집은 과연 고래등 같은 부자집이었습니다.
그때 소년의 부친이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사람은 다름아닌 조금전에 서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 이었습니다.
"온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 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7대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이 은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돈 천냥을 나귀에 실어 서선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서선달이 사는 상주 고을을 직접 찾아와
백섬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갔습니다.
이 일은 후에 조정에 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고을은 모두 조정으로 부터 후한 상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은 정말 착하게 살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착한 것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덕필유린(德必有隣)"입니다...
덕(德)이 있고 심성이 착한 사람은 반드시 주위에 돕는 손길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착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당장은 바보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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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의 섭생(攝生)♤
대추나무에
대추를
많이 열리게 하려면
염소를
매어
놓는다고 합니다.
묶여 있는 염소는
특성상
잠시(暫時)도
그냥 있지 않고
고삐를 당기며
나무를 흔들어
괴롭 힙니다.
그러면
대추나무가
잔뜩 긴장(緊張)하면서
본능적(本能的)으로
대추를
많이 열도록 하여
열매를
번식(繁殖) 시키려는
필사적(必死的)
노력(努力)을 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식물(植物)들이
위기(危機)를 느끼면
씨앗 번식에
전력(全力)을 다하는 것은
생명(生命)에
위기(危機)를 느낀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만드는
예(例) 에서도
볼수 있는
현상 입니다
우리 몸도
그냥 편히 두면
급속히 쇠퇴(衰退)하고
질병(疾病)과
노화(老化)에
취약(脆弱)해 집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굽혔다 펴기도 하고
흔들어 주고
문질러 주고
비틀어 주기도
하여야
생기가 살아나고
더욱 발랄(潑剌)해 집니다.
노자(老子)는
이러한 논리(論理)를
귀생(貴生)과
섭생(攝生)으로
설명(說明) 했습니다.
*귀생(貴生):
자신의 生을
너무 貴하게 여기면
오히려 生이
위태(危殆)롭게 될 수 있고,
*섭생(攝生):
자신의 生을
적당(適當)히
불편(不便)하게 억누르면
生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가르침 입니다.
선섭생자,
이기무사지
(善攝生者,
以基無死地)
섭생(攝生)을
잘 하는 사람은
죽음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 입니다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키는
'섭생(攝生)'이
'건강(健康)'한 生을
산다는 것을 설파(說破)한
노자(老子)의 지혜(智慧)가
오늘날에
더욱 돋 보입니다.
기분(氣分)이 우울(憂鬱)하면
걸어라.
그래도 여전히
우울하면
다시 걸어라.
(히포크라테스 명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