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교차로에서 / 심원
밤중까지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잦아든다. 가을을 재촉하는 마지막 몸부림 이었나보다. 세월이 갈수록 시간에 쫓기는 조급한 마음에 몸의 움직임 보다 마음이 훨씬 더 바쁘다. 나이 들면서 보고 들은 바가 많아지니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음식도 현대의 트렌드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가지나물의 예로 전통적으로 쪄서 무치는 단순요리가 아니라 튀기거나 굽거나 또는 길고 얇게 저며 익혀서 여러 종류 음식을 활용하여 쌈을 싸면 멋진 요리가 된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어린 시절의 전통음식이 생각난다. 각종 음식의 양념부터 조리방법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새로운 연구로 맛과 영양이 배가 되어 보인다. 골고루 배워서 해 보고 싶다가도 수시로 옛 맛이 그리워 요리과정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다. 더구나 먹을 입도 많지 않아 시간과 정성을 들일까 말까,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읽고 싶은 신간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지인들이나 문우들로 부터 부쳐오는 문예지를 읽기도 바쁘다. 많이 읽을수록 눈과 뇌 운동에 좋다.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책 속에서 세상경험과 교훈을 얻을 수 있어 독서는 필수라는 명제를 안고 살았다. 소설이나 시집도 좋지만 철학, 심리학, 자기개발서 건강정보 등,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로 늘어난다. 오랜 다독의 습관으로 책을 빨리 읽지만 읽고 난 후 책이름, 저자, 주인공이 마구 헛갈리는 지경이다. 독후감으로 저장하려니 그것도 시간 걸리는 일이다. 다행히 책읽어주는 유튜브를 통해 산책할 때나 잠자리에서 듣는 것으로 시간을 절약한다. 도서관이 빈약했던 50~60년대 나의 학창시절, 문구사에서 돈을 주고 책을 빌렸다. 하루치라도 절약하기 위해 책을 빨리 읽는 습관이 생겼다. 세계명작을 비롯해 좋은 책을 많이 읽었지만 독후감을 남기지 않아 기억이 희미해 읽은 책을 또 읽는 경우가 많다. 느낌이나 감정이 많이 달라 시간낭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젊고 건강할 때는 건강에 신경 쓰거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입맛이나 잠맛 모두 꿀맛 이었다. 그 때의 지칠 줄 몰랐던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갔는지? 소득이 높아지고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전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더 높아진다. 그동안 무계획적으로 사용한 나의 지친 몸이 여기저기서 이상신호를 보낸다. 나만의 일이 아닌 듯 주위의 친구나 동료들의 대화가 공통을 이루는 현실이 서글프다. 뒤늦게야 몸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고 열심히 노력한다. 하루 한 두 시간은 운동에 투자한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힘쓰며 스트레칭과 걷기 운동을 꾸준히 지속한다. 몸에 좋은 건강식품은 왜 그렇게 많은지 닥치는 대로 먹던 습관은 옛이야기다.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과 섬유질 등 안배를 잘 하여 식단을 짠다. 가끔은 좋은 건강식품과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격년마다 건강검진을 철저히 하고 미리 대비하니 별로 몸의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약간의 통증은 더불어 살아야 할 친구로 삼아야지, 어떻게 온전한 건강을 기대하랴. 가사노동에 필수품인 청소기가 청소를 해 주지만 사람의 손보다 우수한 성능은 아니다. 세탁기가 빨래를 하지만 손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 많다. 그러나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기 위해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청소나 빨래에 대한 로망을 접고 적당히 깨끗하게 여유를 즐기며 사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
노년의 삶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친구와의 교류다. 가족 이상으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다면 성공적인 인생이다. 바쁘더라도 서로 안부하며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늘 안부를 전하며 찾아주는 친구가 많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황혼이 물드는 끝자락에서 서로를 보듬고 베풀고 나눌 줄 아는 마음으로 곱게 익어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세월이 가르쳐준 축복이라 생각한다. 2년여 동안 코로나19로 서로 간에 대면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해 좋은 정보를 교환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를 위해 합심 기도를 하면서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만날 수 없는 기간에도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 폰으로 줌. 또는 밴드나 온라인을 통하여 회의나, 학습, 대화 예배까지 가능한 세상이다. 시간 절약의 묘미를 알게 되어 점점 효율적인 폰 사용이 늘어난다. 누구에게나 가장 귀중한 자산이 바로 이 스마트폰일 것이다. 첨단문명의 시스템을 따라가려면 배움에 대한 의욕과 노력이 필수다. 안일함만 추구하다 보면 현시대에서 도태되기 쉽다.
이미 분가해 독립한 자녀와 손주들은 잘 살건 못 살건 부모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더구나 외국에 사는 아이들은 신경이 더 쓰인다. 70이 넘어도 부모 눈에 는 어린 아이로 보인다더니……. 부모되어 나이가 드니 이해가 된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은 매우 팍팍하고 일은 고되다. 손주들은 학교와 학원공부에 쪼들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원격으로나마 응원하고 든든한 어버이로 존재감을 주는 것 만 으로도 힘이 되리라.
나 학장시절엔 친구들이 몰려가던 오페라 라보엠을 관람료가 비싸서 가지 못했다 최근엔 스마트폰의 유튜브를 통해 언제든 자유롭게 관람을 한다. 그 뿐 아니라 유명 예술가들의 공연을 마음껏 보고 듣고 귀한 명화도 수시로 감상하며 최고의 문화생활을 누린다. 눈과 귀가 호강을 하니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 생활이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얘기는 공감할 수 없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들이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아 늘 시간에 쫓긴다. 현대인들은 여기저기서 알게 모르게 시간과 노동의 혜택, 문화의 혜택, 나아가 경제적 혜택까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감사를 모르고 불평 많던 날들을 반성한다.
지나온 길에 미련과 아쉬움도 많지만 보다 더 큰 감사를 전해야겠다, 그리고 가야 할 길에 기대와 희망과 호기심을 가지고 오늘도 저무는 길목 교차로에서 더 가치있는 길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