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여행1 - 진안에 도착후 펜션을 찾아 체크인한 후에 진안 박물관을 구경하다!
2022년 9월 9일 승용차로 부산을 출발해 거제 - 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해서는
장수 분기점 으로 빠져나와 익산 쪽으로 달리다가 진안 인터체인지 로
내려와 시내로 들어가서는 마트에서 맥주등을 구입한후 예약한 호텔에 찾아갑니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텔은 마이산 에코타운 펜션 인데 진안군 진안읍에 “외사양
체험마을” 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졌으니.... 부산에 사는 큰 딸 가족과
인천에 사는 작은 딸 가족등 3가족이 추석을 맞아 여기 펜션 에서 모이기로 한 것입니다.
설날 에는 저 인천의 작은 딸이 어린 외손주를 데리고 사위 와 부산까지 내려와 우리 집을 찾아
큰 딸 가족과 모인 다음 차례 를 지낸후 부산시내 친척집을 찾아 할머니와 여러 가족들을
만나는 전통적인 행사 를 갖지만 추석은 몇년 전에는 거창에서 처음 만났고 오늘은 진안 입니다.
펜션을 나와 우리 펜션이 자리한 마을 외사양 구경을 하기로 하는데 먼저 도착한게 진안역사박물관
으로.... 추석이라 고속도로도 통행료 를 받지 않더니 여기 박물관도 관람료를 받지 않습니다?
2006년에 문을 연 진안역사 박물관 은 용담댐 건설로 인하여 이주한 주민과 실향민들의 향수 를 달래고
구석기시대 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진안의 유구한 역사 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록과 역사가 사라진 문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진안인들의 삶과 자취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곧 우리의 존재를 확인
하는 것이며, 후세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기본이 된다고 하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제1전시실인 고고관은 용담댐 수몰지역에서 발굴된 선사, 고고유물 을 전시하니 선사시대에서
부터 조선시대 까지 걸친 유물들을 통해 진안의 지나온 역사와 생활 모습을 알수 있습니다.
또 그래픽 패널과 영상물, 모형 등을 통해 진안의 자연환경과 지형, 지세 그리고 전반적
역사를 보여주는데...... 지형 모형을 통해 진안의 지리 환경 을 쉽게 알도록 합니다.
돌덧널 무덤, 움 무덤 에서 총 5점의 고려시대 철제 가위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고려시대
분묘에서 2점 이상 가위가 출토된 경우는 유일하다는데 가위가 출토된
분묘 위치는 등고선과 직교한 곳으로 상당한 직위의 사람들로 예상 할수 있다고 합니다.
제2전시실은 민속관은 진안의 명산 마이산과 석탑군 등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진안
풍물· 금척무· 매사냥 등의 풍부한 전통 문화 자원을 볼 수 있는 전시관 입니다.
이와 함께 산간지역이면서 하천이 발달한 독특한 자연환경을 바탕
으로 형성된 진안 고유의 생활문화를 볼수 있는가 합니다.
제3 전시실인 기록관은 진안 관련 다양한 기록자료를 한 자리에 모았으니 진안의
과거와 현재의 흔적 을 살펴보고, 진안의 기록문화를 고찰할 수 있습니다.
전시물로는 진안의 지리, 행정, 사회, 경제, 풍속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고지도, 고문서와 서원 향교 관련
유물과 자료들이 있고, 국란 극복의 진안 역사 와 민족운동에 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끄는 그림 한 점이 보이니... 바로 임진왜란 때 초기에 참으로 귀한
승전 전적지 중에 하나로...... 권율 장군 이 주목을 받게 되는 웅치 전투 입니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부산 영도에 상륙한 왜군은 다음날인 4월 14일 부산진성 을 함락하고
4월 15일 동래성 을 빼았으니 부산의 경상좌수영 박홍은 겁에 질려 단 한척의
배도 띄우지 못하고 대포를 바다에 버린후 배를 불지르고 수군을 해산한후 혼자 도주 합니다.
경상 좌병사 이각과 경상 우병사 도 싸움한번 해 보지 않고 모두 도주했으며 4월 17일 김해성 은 사흘을
버텼지만 20일 함락됐고, 대구에 모인 수만명의 제승방략군는 흩어져 버렸으며 이일은 상주에서
전멸했고 신립도 충주 에서 서너시간만에 몰살당했으며, 한강과 서울 방어군은 전투없이 도주 했습니다.
이순신과 원균의 수군 연합 함대가 5 월 7일 옥포 해전 이후에 몇차례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빼면 육지에서 조선군 최초 승리는 5월 16일 해유령 전투 인데....
신각등이 왜군 70명을 맞아 60명을 죽이는 첫 승전보를 올렸으나 조선군은 임진강 에서
기습이 실패하자 본대는 전투없이 도주했고..... 이광의 남도근왕군 8만명 도
1,600명 왜군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습 돌격으로 무참히 패배하고 흩어져 버렸습니다.
병사를 수습한 군대는 황진의 수백명 과 광주목사 권율의 1천 뿐으로 나머지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으니
권율의 1천이 정담, 이복남 병력과 합세해 진안에서 왜군을 막아낸게 바로 웅치전투와 이치전투 입니다.
웅치 전투의 배경을 살펴보자면, 일본군은 수도 한성을 함락한후 조선을 분할통치 하는
방식을 결정하니 9명의 장수가 서울과 조선 8도 를 하나씩 차지해서 다스리는 것이라!
호남 을 배정받은 제 6군 고바야카와 군은 서울에서 내려와 5월 부터 호남을 공격하기 시작해 여기 진안
으로 밀고 들어오니...... 정담, 이복남, 황박등 조선군은 웅치와 이치에서 전주를 방어 했던 것입니다.
첫댓글 추석명절이 가족모임 잘 다녀오셧습니다.
부산에서는 대전통영고속도로로 올라오시다가 장수분기점에서 진안으로 가시면 될것같습니다.
멀리사시는 따님을 생각하셔서 중간지점에서 가족상봉하시는것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설에는 예전처럼 얘들이 다 내려오고....
반면에 추석은 이렇게 중간에서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