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하는 교회
역대하 16:7-10 2022/08/21(주일) 성령강림 후 제11주
16: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16: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6: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솔로몬의 증손자 유다 왕 아사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나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남쪽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유다왕국을 세우고
북쪽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나머지 열 개의 지파가 연합해서 이스라엘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이 시대를 우리는 분열왕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왕국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솔로몬이 행한 무리한 토목 사업과 건축 사업이 원인이 됩니다.
특히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열지파가 큰 불만을 품게 되지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건축사업과 토목사업이 남쪽 유다지역 특히 예루살렘 중심을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에 따른 세금과 노동력을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열지파가 감당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결정적인 두 번째 원인을 제공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그는 아버지 솔로몬보다 더 강력한 세금정책을 펼칩니다.
그러자 북쪽에 있는 열 지파가 새로운 왕에게 찾아가 정중하게 건의를 합니다.
‘세금을 경감해 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단번에 묵살합니다.
그러니 북쪽에 있는 지파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군대 장관 출신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새로운 왕국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북 왕국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서로 반목하며
끊임없는 전쟁을 일삼게 됩니다.
‘반목과 전쟁’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까요?
백성들이지요.
남쪽이나 북쪽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대하16:1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유다 왕 아사 삼십 육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유다 왕 아사 삼십 육년
그 때 북 왕국 이스라엘 왕은 바아사였습니다.
아주 호전적인 인물로 왕 위에 오르자마자 바아사는 10지파를 연합해서 군대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남 왕국 유다를 치지요.
그렇게 해서 빼앗은 땅이 라마였습니다.
라마
군사적 요충지이자 교통의 요충지이지요.
남 왕국 유다나 북 왕국 이스라엘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위해서는
꼭 확보해야만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러니 북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어렵게 빼앗을 라마를 내 줄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라마를 빼앗은 바아사는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새롭게 건축하게 됩니다. 라마만큼은 절대로 남 왕국 유다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남 왕국 유다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 없겠지요.
문제는 남 왕국 유다의 힘만으로는 라마를 다시 찾는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라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유다 왕 아사의 전략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강대국 아람(시리아)를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전쟁에 끌어들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유다 왕 아사는 왕궁과 곳간에 있는 모든 금과 은을 모읍니다.
그런 후 그 모든 보물을 아람 왕에게 보내지요.
그리고 (혈맹)동맹을 제안합니다.
금과 은을 받아 쥔 아람 왕 ‘벤하닷’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유다 왕 아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과의 오래된 동맹을 파기하고 전쟁에 개입하지요.
아람 왕 벤하닷은 약속대로
헤르몬 산 근처에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최북단을 칩니다.
그러자 군사력이 덕 없이 부족한 바아사가 내릴 수 있는 조치는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라마에 있는 군대를 철수시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방어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생긴 유다 왕 아사는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할 때 쓰던 돌과 목재를 몽땅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 옆에 있는 게바와 미스바의 성을 보수하라’
아사 왕의 전략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그때입니다.
한참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누가 등장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선견자(선지자) 하나니가 등장합니다.
하나니의 등장.
유다 왕 아사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유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늘 그렇듯 ‘선지자라는 것들’은
항상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먹이면서
선량한 백성들을 선동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선견자 하나니를 반길 이유가 없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승전의 기쁨을 한참 만끽하고 있던 그 때
선견자 하나니가 재 뿌리는 말을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대하16: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아사 왕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유쾌한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선지자 하나니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사 왕에게 대언합니다.
16: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지금 읽은 내용은 역대하 14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구스(에티오피아)와 룹(리비아)이 쳐들어 왔지만
그 때 유다 왕 아사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다 왕 아사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기도
역대하 14장 11절에 나옵니다.
대하14: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전쟁의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됩니다.
대하14:12 여호와께서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하지만 이번 라마전투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16장 9절입니다.
(새)대하16:9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하지만)이번 일에, 임금님께서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그러니 유다 왕 아사가 선견자 하나니를 가만 두겠습니까?
남들은 다 좋았다고 평가를 하고
이번 전투는 신의 한수라고 칭송하는데
유독 하나님의 선견자 하나니만 정 반대로 말하고 있으니 가만 둘 수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선견자 하나니를 감옥에 가두고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백성들을 학대하게 됩니다.
36년간 지켜온 권력의 오만함이
유다 왕 아사의 귀와 눈을 어둡게 한 것이지요.
물론 유다 왕 아사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사 왕이 다스리던 처음 10년은 나라가 조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
그때 유다 왕 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 올바른 일만 행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방인의 제단과 여러 산당들을 파괴합니다.
둘째 각종 석상과 목상들을 깨뜨려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지요.
셋째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비춰진 유다 왕 아사는 권력의 단 맛에 취한 변질 된 왕이었습니다. 결국 아사 왕은 하나님이 보낸 선견자의 말을 버리고 아첨꾼에 말을 따라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됩니다.
16: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말씀을 마칩니다.
윌리엄 슬론 코핀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부류의 나쁜 애국자와 한 부류의 좋은 애국자다.
나쁜 애국자들은 무비판적 연인이자, 애정 없는 비평가다.
하지만 좋은 애국자들은 그들의 국가와 사랑싸움을 계속한다.
무비판적인 나쁜 애국자
우리는 그들을 국수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분들의 나라 사랑 ‘애국심’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요.
하지만 남을 이롭게 하는 좋은 애국자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 나쁜 애국자는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비평만 해대는 이들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매일 뉴스를 통해 만나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좋은 애국자인가?
‘국가와 사랑싸움을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애국자, 좋은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광복절 7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정인보 선생은 광복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1.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 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날을 잊을 건가
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을 거룩한 빛 예서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여기에 보면 정인보 선생님이 꿈꾼 광복의 나라가 나옵니다.
2절에 나오는 가사인데
‘복을 심어 잘 가꾸는 나라’
‘세계에 보람되는 거룩한 빛의 나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런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요?
저는 찬미가 14장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를 부른 우리 선조들의 신앙에서 그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헤세드만이 정인보가 꿈꾸었던
‘복을 심어 잘 가꾸는 나라’
‘세계에 보람되는 거룩한 빛의 나라’의 기초 석, 주춧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본문에 나오는 유다 왕 아사처럼 어리석은 힘 어리석은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심’ 그 ‘헤세드’를 구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는 좋은 애국자, 애국하는 장정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