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게도 사람만큼이나 순수하고 예민한 정서가 있다. 기쁘거나 즐거울 때가 있는가 하면 불안과 고통을 느낄 때도 있다. 말의 기분에 따라 훈련효과는 물론 경주능력 발휘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불안이나 흥분 상태에서 말을 다루게 되면 사고 위험성도 매우 높다. 그러므로 말의 기분이나 정서를 잘 알고 다뤄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훈련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당근과 채찍’이란 것도 결국 말의 심리 이해를 바탕으로 한 훈련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의 심리상태나 의도하는 바를 알아챌 수 있을까?
일상생활에서 말의 행동을 잘 관찰하면 이 답을 얻을 수 있다. 즉 마방 또는 방목장에서 말이 혼자 놀고 있을 때, 말에게 사료를 주거나 샤워를 시킬 때, 말을 끌고 다니거나 타고 달릴 때 말의 행동과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말의 감정을 읽을 수 있고 그를 통해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말의 심리나 의도를 판단하기에 유용한 대표적인 신체 부위는 다음과 같다.
귀 귀는 말의 심리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감정의 신호등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은 귀를 움직이는 근육이 여러가 닥으로 잘 발달해 귓바퀴를 180도로 회전할 수 있어서 소리 나는 쪽이나 자신이 관심을 두는 쪽을 향해 수시로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시킨다. 그러므로 귀를 보고 말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두 귀가 앞쪽으로 쫑긋 향하고 있다면 무엇엔가 호기심이 있거나 어떤 물체의 소리나 움직임에 경계심이 집중돼 있는 것이다. 귀가 비스듬히 경사지게 누워 있는 경우는 거의 졸고 있는 경우 아니면 몸이 아파 만사가 귀찮은 상태다.
사람이 말을 탔을 때 말의 두 귀가 뒤쪽의 기승자를 향해 가지런히 모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승자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새로운 명령을 기다리는 복종의 준비자세다. 기승자가 말을 타고 있는 중에 귀를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경우는 말이 기승자를 무시한다거나 뭔가 불확실한 소리에 신경이 거슬린다는 의미다. 그럴 때는 박차나 혓소리를 내어 말의 주의를 기승자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눈 대부분의 동물은 눈이 앞쪽을 향해 전면을 주시하도록 돼 있지만, 말의 눈은 얼굴의 양 측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말은 얼굴을 좌우로 돌리지 않고도 툭 튀어나온 큰 눈으로 전방은 물론 측방과 후방을 동시에 거의 다 볼 수 있는데, 약 350도의 아주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이것은 말이 풀을 뜯고 있는 중이라도 눈동자만 돌리면 주변의 포식동물에 대한 사주경계가 가능토록 하게 해준다.
그런데 말이 눈동자를 심하게 굴리거나 눈이 돌아가 검은자위가 일부 가려지고 흰자위가 많이 보인다면 그 말은 몹시 흥분했거나 공포에 떨고 있다는 표시다. 말은 겁이 매우 많은 동물이다. 갑자기 움직이는 물체나 낯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흥분을 잘한다. 그럴 때 눈망울은 커지고 눈동자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말이 흥분했을 때는 말에게 너무 접근하거나 더 이상의 어떤 자극도 주지 말고 말을 평보로 걸리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진정시켜야 한다.
또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거나 눈빛이 흐리멍덩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졸리거나 아니면 어딘가 심하게 아픈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료도 먹지 않고 행동이 둔하며 눈이 반쯤 감겨 있다면 어떤 질병이 생겼음을 의심해야 한다.
머리와 목 말들이 서로 처음 만났을 때는 머리를 앞으로 쭉 뻗어 서로 콧김 냄새를 맡으며 경계심을 가지고 상대를 확인한다. 강한 말에게 복종을 표시할 때는 머리를 낮추고 공포감을 느끼거나 흥분했을 때는 머리를 높이 쳐든다. 또한 수말이 다른 말들을 통솔할 때는 머리를 낮추어 앞으로 쭉 뻗어 공격해 상대방을 굴복시킨다. 말은 얼굴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으므로 머리의 높낮이가 심리상태를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말을 끌고 걸어 갈 때 갑자기 말이 머리를 들거나 앞다리를 들어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무엇엔가 놀란 경우다. 이런 때 고삐를 잡아당기면 말은 더욱 놀라 뒤로 넘어져 허리를 다치거나 뇌진탕이 발생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고삐를 여유 있게 주고 낮은 목소리로 달래며 안정을 시켜야 한다.
입술 아래 입술이 늘어져 있거나 입 주변 근육들이 이완돼 있으면 말이 편안하게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더운 여름날 점심식사를 마친 말이 마방에서 졸고 있을 때는 아래 입술이 밑으로 축 처져 있다. 하지만 말이 아프거나 기력이 쇠한 경우에도 아랫입술은 늘어진다.
또 말은 친한 상대를 만나면 서로의 입을 맞대고 입 주변에 길게 난 털을 서로 부비며 의사소통을 한다. 어미 말이 새끼 말을 입술로 애무해 주거나, 따뜻한 봄날 방목장에서 동료 말들끼리 서로의 갈기털이나 사타구니 같은 예민한 부분을 입술로 애무해 주기도 한다.
콧구멍 사람들이 처음 만나 악수를 하듯이 말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 콧구멍을 대고 콧바람을 불어대며 첫 인사를 한다. 말들은 자기의 무리와 다른 무리를 소리나 냄새로 구분하는 것이다. 어떤 무리에 낯선 말 하나가 들어오면 기존 말들이 접근해 코로 냄새를 맡으며 신중하게 관찰한다. 마방에 사람이 들어오면 말이 머리를 내밀고 역시 코를 들이대며 킁킁거린다. 이는 냄새를 통해 낮선 사람인지 익숙한 사람인지를 구분하고자 하는 행위다.
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거센 콧바람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말이 매우 놀랐거나 흥분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는 말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또 운동을 한 후 30분이 지나도록 코를 벌름거리며 거친 숨을 쉬는 것은 과로의 증상이다. 너무 무리한 운동을 해서 체내에 젖산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거친 호흡을 하게 된다. 이런 말은 다음날 무리한 운동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다리 세력 다툼이나 암말 쟁탈을 위해 서로 싸울 때는 앞다리를 번쩍 들고 몸을 세워 마치 권투하듯이 앞발을 사용해 공격한다. 맹수가 뒤쫓아 오거나 사람이 귀찮게 굴면 뒷발질을 한다. 제대로 차이면 치명적이다. 미확인된 물체가 자기 주변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순간 정확하게 뒷발로 가격한다. 그러므로 말의 후방으로 예고 없이 갑자기 접근하는 것은 금기이다.
한쪽 앞발로 지면을 계속해서 긁어대는 것은 말의 특징적 행위다. 목마른데 마실 물이 없다거나, 배고픈데 사료를 안 줄 때, 마방에 장시간 갇혀 지루하거나 답답할 때, 발정 난 암말이 수말을 기다릴 때, 급체해 심하게 배가 아픈 경우 앞발로 땅을 계속 긁어댄다. 이 때문에 마방 바닥이 움푹 파이기도 한다. 원인을 찾아 해소해 주면 더 이상 앞발을 긁어대지 않는다.
이 밖에도 말의 심리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신체언어가 있다. 이들을 잘 익혀두면 말과 가까워지고 말을 잘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배려는 인간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굽소리 07.10월 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