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바흐
바흐의 음악을 대위법과 모든 종류의 푸가 양식을 완전하고 빈틈없이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듣지 못하는 한, 따라서 진정한 에술적 향유를 하지 못하고 듣는한, 그의 음악 청중으로서 우리는 괴테의 장엄한 표현을 빌자면 마치 우리가 신이 세계를 창조했던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위대한 그 무엇이 생성되고 잇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위대한 근대음악이다. 이 음악은 교회, 국민성, 대위법을 극복함 으로써 이미 세계를 극복했다.
그러나 바흐에게는 아직 많이 미숙한 기독교정신, 미숙한 독일 정신, 미숙한 스콜라 철학이 남아있다. 그는 유럽 근대음악의 문턱에 서 있으면서도 그곳에서 중세를 뒤돌아 보고 있다.
헨델
자신의 음악을 창작하는 데 대담하고 혁신적이고 솔직하고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이 가질 수 있는 영웅적인 것에 속하고 그것과 닮아 있었던 헨델, -
그 헨델은 작품을 마무리할 경우에는 흔히 편견에 사로 잡혀 열정이 식어버리고 자신에게 스스로 지쳐버리기도 했다. 그때 그는 이미 시도해보았던 전개 방법들을 몇가지 사용하여 급하게 많은 양을 작곡했다. 그 일이 끝나면 그는 기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은 신이나 다른 창조자들이 그들의 일을 끝낸 날 저녁에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은 아니었다.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자신의 멜로디와 전혀 다른 관계에 있다. 그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영감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삶을, 즉 가장 감동적인 남국의 삶을 관조하면서 영감을 발견한다. 그는 이탈리아에 있지 않을 때에는 항상 이탈리아를 꿈꾸고 있었다.
베토벤
베토벤의 음악은 흔히, 마치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악곡의 '순수한 소리'를 뜻밖에 다시 듣게 될 때 깊이 감동받았던 사람이 하게 되는 관찰 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음악 위에 있는 음악인 것이다.
거리의 거지와 어린아이들의 노래속에서, 여행 중인 이탈리아인들의 단조로운 노래 선율 속에서, 마을 술집이나 사육제날 밤의 무도독 가운데서 , 그는 자신의 멜로디를 발견한다. 즉 그는 여기저기에서 하나의 소리, 하나의 작은 악구를 재빨리 포찰하여 꿀벌처럼 모아둔다. 그것은 그에게 '더 좋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억들이다. 마치 플라톤이 이데아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프란츠 슈베르트
다른 위대한 음악가들보다는 좀 보잘것 없는 예술가인 프란츠 슈베르트는 음악에서는 그들 모두 중에서 최대의 유산을 가지고 있엇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리고 친절한 마음으로 그 유산을 써버렸다. 그 때문에 음악가들은 몇 백년은 그의 사상과 착상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사용되지 않은 창작의 보물을 얻게 된다. 다른 음악가들은 그것을 사용함으로서 자신들의 위대함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베토벤을 연주자의 이상적인 청중이라 불러도 된다면, 슈베르트는 스스로 이상적인 연주자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