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온 삶의 모든 종합적인 기록을 통하여 증명된다. 그것은 단 한 번의 고백이나 인정 그리고 자신의 주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결코 실수가 없는 하늘의 기록자들에 의해 그대로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한 말이든지 은밀하게 한 말이든지 사람들 앞에서 한 행동이든지 혹은 남모르게 한 행동이든지 남김없이 생애의 기록으로 남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하늘은 우리의 말, 행위뿐 아니라 우리의 은밀한 동기까지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최후의 심판에서 그 사람이 정말 하늘에 합당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판결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이타적인 사랑이 이끄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비록 연약할 수 있지만, 그의 모든 동기는 하늘이 가장 가치 있게 보는 사랑의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님은 사람의 품성을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 결코 실수가 없으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회개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기록한 책들에서 도말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큰 날에 그 죄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악행은 백주에 행한 것이나 밤의 어둠 속에서 행한 것이나를 막론하고 우리를 취급하시는 하나님 앞에 공공연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모든 죄를 목격하고 절대로 잘못이 없는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다. 죄는 그 부모 앞에나 처자와 친구들 앞에는 숨길 수도 있다. 또한 그 범행자 외는 그 악을 추호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이들 앞에는 그것이 분명히 나타난다. 가장 어두운 밤이나 가장 교묘한 속임수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단 하나의 생각까지도 숨겨 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공정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아니한 행위와 생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경건한 모양에 결코 속지 않으신다.”(쟁투, 486)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데 믿음이라는 것을 마치 단순한 정신적 혹은 지적 동의 정도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속사람과 생애의 목적이 전혀 바뀌지도 않았으면서 스스로 믿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교회를 다니며,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자신이 거듭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들은 그가 여전히 이기적인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그의 말, 그의 행동은 전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호라, 불행한 사람이여! 구원이란 사람들끼리 회칙을 정하듯 “이런 정도면 구원받은 것으로 치자”라고 해서 만드는 어떤 규칙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 인정하고 준비한 예수 그리스도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완전한 삶의 변화이며 새로운 삶의 새 출발이다. 그러나 어떤가! 새로운 출발도 전혀 시작하지 않은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교회 문을 출입한다.
오늘날 만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휘장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래서 심판 날에 다시 목격하게 될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남김없이 기록하고 있는 천사들의 보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말들과 행동들을 그치게 될까? 하늘이 정말 가치 있게 여기는 이타적 사랑만이 우리들의 말과 행동과 하는 모든 일에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엄숙한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과거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면서 우리 마음에서 죄를 없애는 일에 성령과 협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나태와 기만으로 헛되지 않도록 우리를 깨우시고 세워주십시오. 성령의 강력한 채찍질로 우리 영혼을 흔들어 주시고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된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오늘도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사랑으로 일하는 하루가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