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옛길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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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옛길의 휴게소가 폐쇄됐는지 미처 몰랐다. 지난 주말 아내와 강원도 속초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들른 미시령 휴게소는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기사를 검색했다. 2006년 미시령터널이 개통되면서 이용객이 급감해 2011년 폐쇄됐다는 내용의 글에는 ‘흉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미시령을 내려오는 내내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건 10여년 전 추억 때문이다.
2002년 7월 친구와 함께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났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난 늦은 밤 미시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내려다본 동해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검은 바다와 바다를 환하게 비추던 오징어배의 불빛, 알큰한 바다 내음이 여독을 씻어주었다.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고개를 내려갈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급했다. 식당에서 잡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거나 기차역사나 교회에서 잠자리를 구걸하는 ‘민폐’ 무전여행이었다.
“빵빵.” 다시 자전거에 올라 고개를 내려가려는데 봉고차 한 대가 옆에 멈춰섰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50대의 아저씨는 “길이 어둡고 가파르니 차를 타고 같이 내려가자”며 오징어배의 불빛만큼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전거 두 대를 구겨넣은 봉고차 안에는 텐트와 휴대용 가스버너, 코펠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역시 전국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속초에 도착하자 우리를 근처 해물탕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 나는 공깃밥을 네 그릇이나 비웠다.
그 후 미시령 휴게소는 동해를 찾을 때마다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됐다.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털보 아저씨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전국일주 무용담을 풀어놓기에 그만 한 곳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시령 휴게소를 잊었다. 미시령에 터널이 뚫린 이후가 아닐까 싶다.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왕복 2차선 옛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대신 뻥 뚫린 터널을 일직선으로 통과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도책을 짚어가며 길을 찾는 대신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빠른 길로만 다니다보니 휴게소를 추억할 겨를이 없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미시령옛길 휴게소를 떠나며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동서양의 자연관을 비교하는 꼬부랑길과 터널에 관한 글이 떠올랐다. 산을 빙 두른 꼬부랑길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의 자연관을 보여준다면, 터널은 자연을 정복하는 서양 문명을 상징한다는 내용이었다. 미시령 터널의 컴컴한 입구가 미시령 꼬부랑길에 담긴 이야기와 자연스레 이어지는 인연까지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미시령옛길 휴게소 자리에는 생태탐방 시설이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예산 확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그곳에서 본 검은 바다와 오징어배의 불빛, 털보 아저씨의 인심을 다른 누군가도 꼭 느낄 수 있는 기회가 계속되길 희망해 본다.
세계일보 박영준 사회부 기자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9/08/201309080021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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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미시령옛길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시령에서' 유투브 채널에서 미시령과 관련된 동영상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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