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방식 교사 (서울 동북고등학교)
윤리를 담당하며 2005년부터 EBS 강사로 활동 중이다. EBS가 뽑은 최고의 교사로 선정됐으며, 동북고의 청문회 식 토론법 개발을 비롯해 융합 수업, 통합 논술, NIE 수업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취미가 있다.
‘시사 이슈 교과서로 따라잡기’는 시사 상식과 논술,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는 시도에서 기획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핫한 이슈들을 콕콕 집어 이를 둘러싼 쟁점들을 분석하고, 교과서와 연계해 생각해봅니다. 서울 동북고 강방식 교사와 함께 시사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시죠. 밥상머리 토론거리로 ‘강추’입니다._편집자
김영란법, 어떻게 나왔나
2015년 3월 3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제정됐다. 이 명칭은 법 제정을 처음 주도한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원안에는 각종 인허가 등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부정 청탁을 금지하는 조항, 돈이나 상품권 등을 주고받는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조항, 공직을 이용해 공무원의 가족이 각종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해 충돌 방지 조항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마지막 부분은 제외되어 국회의원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분야는 일부러 제외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법은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공무원이 100만 원 이상 금품이나 접대를 받으면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김영란 전 위원장이 부패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2011년 6월 국무회의에 초안을 제출한 김영란법은 1천 일이 넘는 진통 끝에 탄생했다. 2012년 8월 16일, 정부 원안이 공식 발표되고 929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2년 어느 검사가 변호사에게 벤츠 등을 선물 받고 다른 검사에게 청탁을 했으나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급물살을 탄 것이다.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직무 관련성 없이도 금품을 받은 공직자는 처벌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법은 여러 가지 논란으로 흐지부지됐으나, 지난해 세월호 사건 이후 ‘관피아’로 불릴 만큼 공무원들의 각종 비리 사슬이 드러나면서 원안대로 제정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만들라고 재촉하면서 이번에 법 제정이 가능해졌다.
국민의 70%는 김영란법 제정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언론계나 법조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나 공무원 등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려 했으나, 국회를 거치며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포함됐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확인 헌법 소원을 냈다. 언론 단체들도 언론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 효율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해보자.
김영란법 제정 둘러싼 쟁점
부정부패 사회 척결할 수 있는 법! vs 고위 공직자 처벌하는 법이어야!
부정부패 사회 척결 01 김영란법은 뇌물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논평한 뉴욕타임스의 입장처럼 대한민국을 혁명적으로 바꿀 대사건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 규모가 선진국처럼 커졌지만, 부패 문화는 나아질 줄 몰랐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40위권을 넘어섰고, OECD 국가에서도 하위권을 차지한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나중을 대비해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금품이나 술 접대를 하는 것이 관례고, 기업에서 접대비가 많이 책정된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고위공직자 처벌 01 김영란법은 한국의 정(情) 문화를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건전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 형성에 힘쓴다는 이미지가 많았는데, 졸지에 부정부패 국가로 오도될 수 있다. 어른과 아이가 만나면 어른이, 선배와 후배가 만나면 선배가, 돈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이 만나면 부자가 계산하는 것이 미덕이고, 자연스레 부의 재분배 역할까지 했다.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낸다는 더치페이 문화가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를 무색하게 만든다.
부정부패 사회 척결 02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취지로 김영란법 제정이 시작됐기에 처벌 대상을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포함한 것은 바람직하다. 교육과 언론은 공공 영역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의 부탁은 기업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들어 광고 게재로 대응하는 측면이 있고, 대학교수들에게 각종 접대 없이는 학위 받기가 어렵다는 것도 현실이다. 오히려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만연한 접대 문화를 없애는 문제도 함께 손질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고위공직자 처벌 02 공직 사회 부패 척결이라는 차원에서 김영란법 제정을 평가하면 이번 법안은 과잉 금지 원칙을 무너뜨리는 사항이다. 좀처럼 공직자로 거론되지 않던 언론과 교육을 길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공공성의 정도가 비슷한 금융이나 의료업계와 비교하면 형평성이 어긋난 조치로 평등권이 침해된다.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법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부정부패 사회 척결 03 김영란법을 통해 국가 투명성이 인정된다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확대될 것이다. 투명성이 높은 북유럽 국가가 사회 효율성을 높여 복지 수준도 높은 것처럼 투명 사회 시스템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작용할 것이다. 공적 제도와 절차를 중시하는 합리적 문화는 세계화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동안 접대와 인맥 쌓기에 투자된 돈이 기술 투자로 건전하게 확대되어 안정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 처벌 03 김영란법 시행으로 고급 음식점이나 화훼 업체, 골프장, 택배 업체 등이 타격 받을 수 있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 척결을 강조하자, 경제성장률이 7%대로 떨어졌다. 현재 한국은 가계 부채가 증가하고, 주택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시기에 경기를 더 침체시킬 수 있는 법안은 정당성이 있더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한 법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동창회에서 보낸 축하 난을 돌려보낸 것은 상징적으로 김영란법 시행의 출발을 알리지만, 동시에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눈앞에 그려진다.
교과서와 연계해 생각해볼까?
<기본편>교과서 여기!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 : ‘전문직과 공직자의 윤리’ 단원
공직은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의 일을 맡아보는 직책이나 직무를 말한다. 공직자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가 유지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지켜야 한다. 공직자들은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해야 한다. 자신의 권한을 악용해 부당한 이익에 빠질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직자의 권한은 국민에게 위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남용하지 말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공직 사회의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공직의 사회적 영향력을 인식하고 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준수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사회윤리적 차원에서는 공직자 윤리법 같은 제도를 만들어 공직자가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김영란법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법과 제도일 수 있다.
+ 고등학교 <법과 정치> 교과서 : ‘법원과 헌법재판소’ 단원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해석과 관련된 사건을 사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기관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즉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 조직의 기능 중에 헌법 소원 심판이 있다.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기관이 부당하게 침해했는지 심판하는 것이다.
이 심판은 국민이 제기하는 것으로, 김영란법 제정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위헌 여부를 논의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영란법 제정 과정에서 입법 관련 핵심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법 제정에 나섰다든가, 법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있으니 위헌 여부를 따지자는 의견들은 입법자, 즉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태로 자신보다 헌법재판소가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는 논리와 같다.
<심화편> 좀더 생각해보기
자발적 도덕성 강조한 조상들의 지혜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에서 지은이는 한국의 전통 미술에 대한 논평을 제대로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전통문화의 음양오행 사상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오행(五行)은 공간과 시간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 오
행에서 보면 동쪽은 봄이다. 만물이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것을 보면 봄은 만물을 어질게 하는 ‘인(仁)’ 의 덕목에 가깝다. 남쪽은 여름으로, 초목이 우거지고 모두 질서 정연하게 제자리를 잡는다고 본다. 여름에 남을 해치지 않고 분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예(禮)’의 덕목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쪽
은 가을이다. 가을에는 냉엄해서 낙엽처럼 죽일 것은 죽이고, 곡식이나 가을처럼 남길 것은 살뜰하게 남기기 때문에 ‘의(義)’의 덕목이 있다고 본다. 북쪽은 겨울로, 이듬해를 기약하며 씨앗을 땅속에 묻는다고 해석한다. 이를 ‘지(智)’의 덕목으로 설명한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인 정도전은 네 가지 덕목을 따서 흥‘인’지문, 돈‘의’ 문, 숭‘례’ 문, 숙‘정’ 문(지혜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해서 ‘지’ 대신 고요할 ‘정’ 으로 바꿈)을 만들었다.
인의예지는 유교 사상가인 맹자가 강조한 것으로, 평소 백성이 네 문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착한 심성을 발현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강조했다.
이처럼 자발적인 도덕성 함양을 목표로 한 맹자나 정도전과 달리, 김영란법은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지나치게 확대해 강력한 처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소리 없이 취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유가와 법가의 논쟁이 2015년에 다시 벌어지고 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