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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학 제77 집, pp.353 382.
서울 : (사)한국불교학회, 2016.2.28.
법계연기에 대한 과학적 해석
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1. 법계연기에 대한 과학적 해석의 가능성에 대하여
II. 상입과 상즉과 사사무애에 대한 해석
Ⅲ. 사사무애 법계를 설명하는 십현문에 대한 해석
IV. 맺는 말
*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5년 11월 13~14일에 한국불교학회가 주최한 "화엄의 사상과 실천" 이라는 주제 아래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요약문 ]
지엄과 법장은 과로서의 깨달음은 궁극이고 절대이므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보현의 경계인 인으로서의 연기는 언설로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글에서는 제법의 여실한 인연 곧 인으로서의 연기세계를 자연과학의 성과를 통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상입과 상즉의 의미를 따져보고 그것이 우리의 자연세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다음, 사사무애를 설명하는 십현문을 자연과학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우리의 세계가 바로 상즉상입의 세계이고 법계연기가 전개되는 세계라는 논의가 될 것이다.
주제어 : 법계연기, 과학, 십현문, 상즉, 상입
1. 법계연기에 대한 과학적 해석의 가능성에 대하여
천태교학이 화엄과 법화를 모두 일승원교라고 보는 것과 달리, 법장의 화엄교판인 同別敎判에서는 일승을 다시 둘로 나눠 법화를 동교일승으로 보고 화엄을 별교일승으로 보고 있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의 제1장인「건립일승장 에서 별교일승을 다시 果分不可說과 因分可說의 두 가지로 나눈다. 과로서의 깨달음은 궁극이며 절대인 십불 자신의 경계(十佛白境
界)여서 교설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보현의 경계인 인으로서의 연기는 언설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2) 지엄도 '일승십현문'에서 보현의 경계로서의 인과 십불의 경계로서의 과에 대해 비슷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3)
법장은 『탐현기』에서 자신의 인과론의 근거가 되는 「화엄경』의 가르침이 생겨난 이유로 열 가지의 의미를 들고 있다. 그 첫째 이유가 법이인데,“일체의 제불은 법이로서 모든 무진 세계에서 항상 이와 같이 법륜을 굴린다”라고 설명한다. 「여래출현품」에서는 “여래는 세상에 나오는 일도 없고 열반에 드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여래는 법계와 함께 항상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고, 또 “붓다의 무량한 몸은 모든 법계에 가득 차 있나니 공
덕을 쌓은 사람은 누구나 붓다의 몸 다 볼 수 있다”고 한다.5) 무량한 세계 하나하나에 불거불래의 붓다가 언제나 함께 있어 한량없는 법륜을 굴린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부처가 언제나 함께 있는 세계라는 것이 되며, 여래는 항상 법륜을 굴리시니 공덕을 쌓기만 한다면 여래의 몸을 볼 수 있고 여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붓다 자체의 세계는 불가설의 세계라 하더라도, 붓다가 전법륜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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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주, 「화엄의 세계』(민족사, 1998), pp.168~109.
2) 기무라 기요타가, 중국화엄사상사』, 정병삼 외 역(민족사, 2005), p.144.
3) 도업, 「화엄경사상연구』(민족사, 1998), pp.246~247.
4) 기무라 기요타카, 앞의 책, p.155.
5) 도업, 앞의 책, pp.62062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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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인으로서의 연기를 통해 부처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러므로 인으로서의 연기세계를 열어 보이려는 화엄교학의 기본 목적이 가능하게 된다.6) 『화엄경』「菩薩問明品」에는 문수보살과 아홉 보살이 주고받는 열 가지 문답이 나온다. 법장은 이를 열 가지의 깊고 깊은 법(十甚深法)이라고 하는데, 그 첫 번째가 緣起甚深인 까닭을 “보살은 제법의 여실한 인연을 먼저 바르게 알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7)
이글은 제법의 여실한 인연 곧 인으로서의 연기세계를 자연과학의 성과를 통해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1장에서 상입과 상즉의 의미를 따져보고 그것이 우리의 자연세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다음, 2장에서는 사사무애를 설명하는 십현문을 자연과학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모두 우리의 세계가 바로 상즉상입의 세계이고 법계연기가 전개되는 세계라는 논의가 될 것이다.
II. 상입과 상즉과 사사무애에 대한 해석
현상계를 구성하는 개개의 사물이 걸림 없이 중중무진하게 서로 융화한다는 것을 사사무애라고 한다.8)9) 사사무애의 무진 연기는 서로 걸림이 없이 받아들여 융섭한다는 相入과 일체의 하나가 된다는 相卽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무엇이 상즉과 상입이고 어떻게 상즉과 상입이 가능하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상입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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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무라 기요타카, 앞의 책, p.156.
7) 도업, 앞의 책, p.412에서 재인용..
8) 운하, 불교사전』(동국역경원, 1995), p.368,
9) 해주, 앞의 책,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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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입
상입이란 서로 걸림이 없이 융섭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걸림없음이며 무엇이 융섭인지를 알아보자. 법장은 『安盡還源觀』에서 『화엄경』을 이해하기 위한 6관 중의 하나로 多入一鏡像觀을 제시한다. 10)11) 사면과 천장, 바닥에 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방에서 불상과 횃불을 방 한가운데에 놓았다고 하자. 그러면 한 거울 속에 다른 거울의 상이 들어오게 되어 무수히 많은 불상과 횃불의 상이 거울에 비추어지게 된다. 이 때 한 거울에 다른 모든 거울의 상이 들어와 합쳐지는 것을 융섭이라 하며, 모든 상들이 서로 교차하지만 하나하나의 상이 다른 상의 형성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걸림 없음 즉 無碍라고 한다.
상입의 예를 들어보자. 뉴턴역학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천장에 달려 있는 하나의 전등에 적용해 보자. 이 전등에는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음에도 이 전등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천장이 전등을 들어 올려주기 때문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면 천장이 전등을 들어 올려 주고 있는 만큼, 전등은 천장을 끌어 내린다. 전등이 천장을 끌어내리고 있음에도 천장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천장을 집의 벽면과 기둥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여기에 다시 적용하면 집의 벽면과 기둥이 천장을 받쳐 주고 있는 만큼, 천장은 집의 벽면과 기둥을 밑으로 누르고 있다. 집의 벽면과 기둥을 천장이 아래로 누르고 있음에도 벽면과 기둥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벽면과 기둥을 지반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벽면과 기둥은 다시 지반을 내리누르는데, 지반은 지구 전체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는 곧 하나의 전등이 천장에 걸려있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작용이 동시에 일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구는 만유인력에 의해 전 우주와 연결돼 있다. 이는 천장에 전등이 걸려있는 이 사소한 사건에도 전 우주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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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木網怒一, 『화엄경의 세계』, 이기영 역주(한국불교연구원, 1992), p.141.
11) 까르마 츠앙, 『화엄철학』, 이찬수 역(경서원, 1990), pp.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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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참여가 있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이 하나의 전등은 똑같은 방식으로 전 우주의 모든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 우주가 하나의 전등에 참여하고 투영되며 하나의 전등이 전 우주에 참여하고 투영된다. 이와 같은 전 우주적 상호 참여, 전 우주적 상호 투영을 상입(mutual penetration)이라고 한다.12)
이제 연기의 인과관계 일반에서의 인과 연의 상입에 대해 살펴보자. 법장은 緣起門六義를 통해 법계연기의 원인인 因의 6의를 제시한다. 제법이 생기하는 원인에는 반드시 空有力不待緣, 空有力特緣, 空無力待緣, 有有力不待緣, 有有力待緣, 有無力待緣의 6의를 갖춰야 한다고 보았다.13)
이는 유식의 종자 6의를 바꾼 것으로, 종자 6의가 초월해야 할 망의 경계라는 유식의 입장과 달리 법장은 연기인문육의를 극복해야 할 대립의 경계로 해석했다. 그리고 법장은 “공유의 대립은 상즉의 원리로, 유력 무력의 대립은 상입의 원리로, 그리고 대연/부대연은 동체/이체의 원리로 해결했다.14)
걸어감의 예를 들어 인연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인과 연의 상입을 논의하고자 한다. 두 다리의 힘만 있으면 걸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얼음 위에서는 왜 제대로 걸어가지못하는가? 걸어간다는 동작은 내가 땅을 뒤로 미는 작용(action)과 땅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반작용(reaction)이 동시에 일어나야 가능해진다. 내가
땅을 뒤로 밀려면 마찰력이 있어야 하는데, 얼음 위에서는 미끄러지기 때문에 내가 땅을 뒤로 제대로 밀지 못하고 이에 따라 얼음도 나를 제대로 밀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걸어간다는 동작은 내가 땅을 민다는 인에 부응하여 땅이 나를 밀 수 있다는 여러 연이 성립해야 가능해진다.
‘걸어간다는 과'가 성립하려면 먼저 걸어가려는 동작' 이라는 인이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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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양형진,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장경각, 2001), p.207.
13) 해주, 앞의 책, p.189.
14) 해주, 위의 책,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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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연의 역할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여러 연이 '걸어가려는 동작'을 '걸어간다는 과'로 맺어지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걸어감이라는 하나의 예를 들었지만, 이 논의는 연기 일반에 적용된다. 인은 연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연의 작용을 통해 인으로서 성립하며, 연은 인이 과를 맺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의 작용을 통해 연으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인과 연은 과를 만들기 전에 이미 用의 가능성을 통해 연결돼 있다고 보아야한다. 이는 인의 역용에 연이 포섭되며 동시에 연의 역용에 인이 포섭된다는 것으로서, 곧 인과 연의 상입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인과 연의 상입이 없으면 과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상입은 연기를 가능하게 하는 연기의 전제조건이 된다. 상입이 연기의 전제조건이므로 연기가 펼쳐지는 세계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상입이다. 우리 우주 안에는 중력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내 앞에 있는 작은 물체의 질량이 만들어내는 중력의 여파인 중력장(場, field)은 우주 어
느 곳에도 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 물체가 아무리 작더라도 아주 먼 우주의 저쪽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을 우주의 모든 입자가 받아들인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입자들이 이렇게 상호작용(interaction)하면서 별이 만들어지고 빛을 발하다가 사라지는 성주괴공의 과정을 거친다. 그 모든 과가 존재자 간의 상호투영인 상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2. 상즉
이제 상즉에 대해 알아보자. 상즉이란 원래 서로 스스로를 폐하여 상대방과 같아진다는 의미이다.15) 이것과 저것이 서로 같아져서 하나가 된다.는 것으로, 법계에 있는 일체 사물의 상호동일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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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운하, 『불교사전』(동국역경원, 1995),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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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즉의 좋은 예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니, 이를 통해 이와 사의 상즉을 먼저 살펴보자.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A=B요 B=A라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포함관계를 나타내는 논리적 언명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밖에는 안 되는데, 여기에는 이보다 깊은 뜻이 내포돼 있다. A즉B, B즉A는 A와 B가 따로 있는데 알고 보니 그 둘이 같더라는 것이 아니라,
A는 전적으로 B요 B는 전적으로 A라는 것이다. 색이라는 것이 있고 공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데 색과 공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색은 전적으로 공이요 공은 전적으로 색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에서는 색이 파하여 전적으로 공이 되고, 공즉시색에서는 공이 파하여 전적으로 색이 된다. 그래서 색즉시공에서는 색이 사라지고 공이 나타나며, 공즉시색에서는 공이 사라지고 색이 나타난다. 이렇게 스스로를 파하여 전적으로 다른 것이 됨으로써 완벽하게 서로 일치하는 상호동일성이 상즉이다.
왜 그러한지를 두순과 법장의 진공에 대한 논의를 따라 설명하고자 한다. 색은 공의 출렁거림이기 때문에 공이 아니면 성립할 수 없고, 공은 색의 성품이기 때문에 색이 아니면 성립할 수 없다. 색이 파하여 공이 되니 색에 발붙일 곳이 없지만 공은 색에 의해서만 성립하니 색을 떠날 수 없다. 공이 파하여 색이 되니 공에도 발붙일 곳이 없지만 색은 공에 의해서만 성립하니 공을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색을 파하되 색을 떠나지 않고
공을 파하되 공을 떠나지 않는다. 색과 공을 파하니 색과 공을 모두 여의지만 색과 공을 떠나지 않으니 색과 공을 모두 품는다. 서로 파하면서 동시에 품으니, 쌍차하면서 동시에 쌍조하여 중도가 된다. 이렇게 색과 공처럼 서로 그 스스로를 파하여 상대와 일치하면서 동시에 서로 상대를 포용하는 것을 '상즉' 이라고 한다.
이처럼 색과 공의 숨고 드러남에 따라 네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여 법장은 이를 空四義라고 했다.16) 그 첫째는 공이 숨고 색이 드러나니 공즉시색이요, 둘째는 색이 숨고 공이 드러나니 색즉시공이다. 셋째는 색이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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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성철, 백일법문 (장경각, 1987), pp.9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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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걸림이 없고 방해하지 않아 쌍조하여 같이 존재한다 (具存). 넷째는 색이 즉 공이므로 색이라 할수 없고 공이 즉 색이므로 공이라고 할 수 없어서, 쌍차하여 색과 공이 동시에 사라진다 (雙民).
이를 화엄의 1조 두순은 法界三觀의 제1관인 眞空相觀에서 明空卽色觀, 會色歸空觀, 色空無碍, 絶無집觀이라고 했다.17) 공이 숨고 색이 드러나니 명공즉색이요, 색이 숨고 공이 드러나니 회색귀공이며, 색과 공이 걸림이 없어 서로 방해하지 않으니 색공무애이고, 색과 공 어느 것도 아니
어서 색과 공이 같이 사라지니 민절무기다. 13)
이를 도봉산의 예를 들어 다시 생각해 보자. 도봉산은 하나지만 어느 방향에서 도봉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산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난다. 도봉산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도봉의 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도봉이라는 하나의 체가 우리와 어떤 연관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즉 어떤 연기가 성립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도봉산이 다르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체로서의 도봉은 오직 하나지만 무수한 도봉의 상이 현상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은 도봉은 불변이지만 수연에 따라 현상의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무수한 도봉의 상이 나타나지만 그 중에서 둘을 골라 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도봉을 남도봉이라 하고 의정부에서바라본 도봉을 북도봉이라 하자.
우선 남도봉과 북도봉의 관계에 네 가지 의미가 있음을 살펴보자. 19) 남도봉과 북도봉이 모두 존재하지만 현상계에서 그 둘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인연에 따라 때로는 남도봉을 보게 되고 때로는 북도봉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연기에 의해 남도봉이 나타나면 북도봉이 숨는다는 것이 첫 번17) 법계삼관이란 진공절상관, 이사무애관(理事無時烈), 주변함용관(含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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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위의 책, pp.106~109.
18) 성철, 위의 책, p.107.
19) 물론, 공과 색은 체와 용이어서 이와 사이고 남도봉과 북도봉은 모두 용이어서 현상으로서의 색이지만, 이 둘의 논리 구조는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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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 의미가 된다. 연기에 의해 북도봉이 나타나면 남도봉이 숨는다는 것이 두 번째 의미다. 그러나 남도봉이 나타난다고 해도 북도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북도봉이 나타난다 해도 남도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나타나고 숨는다 해도, 나타나는 것이 숨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숨는 것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20)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걸림이
없이 서로가 존재해야 비로소 둘 다 존재할 수 있다. 남도봉이 있음으로 비로소 북도봉이 있을 수 있고, 북도봉이 있음으로 비로소 남도봉이 있을수 있어 雙照하니 이것이 세 번째 의미다. 그러면 북도봉은 남도봉이므로 북도봉이라 할 수 없고 남도봉은 북도봉이므로 남도봉이라 할 수 없으니, 남도봉과 북도봉은 모두 사라져 雙遮하니 이것이 네 번째 의미가 된다.21)
쌍차하여 사라진다고 해도 남도봉과 북도봉이 서로 파하여 일체가 되었을 뿐, 존재의 멸함이란 없다. 쌍차한 그 자리에서 동시에 쌍조하므로 남도봉과 북도봉이 그대로 살아난다. 그러므로 남도봉이 없으면 북도봉도 없고 북도봉이 없으면 남도봉도 없다. 남도봉이 있어야 북도봉이 있고 북도
봉이 있어야 남도봉이 있다. 그래서 남도봉의 전 존재는 북도봉의 전 존재와 합쳐지고 북도봉의 전 존재는 남도봉의 전 존재와 합쳐진다. 여기서 남도봉은 북도봉이 되고 북도봉은 남도봉이 되어 하나의 도봉, 하나의 전체가 되니 이게 事와 事의 상즉이다.
남도봉과 북도봉의 좋은 예가 양자역학에서의 피동과 입자의 이중성(duality)이다. 고전역학에서 입자와 파동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어서 파동이면 입자일 수 없고, 입자이면 파동일 수 없다. 일례로 파동인 소리는 입자일 수 없고, 입자인 돌멩이는 파동일 수 없다. 이와 달리 양자역학에서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광자(빛입자, photon) 등 우주의 기본입자가 모두 이중성을 갖는다. 모든 물체는 상황에 따라 때로는 입사처럼 행동하고 때
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하나의 도봉이 때로는 남도봉으로 나타나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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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법장은 이를 신십현문에서 은밀현료구성문이라고 하였다.
21) 양형진, 앞의 책, pp.21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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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북도봉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관측자와 관측 대상 사이에 어떤 실험적 맥락, 어떤 상황적 맥락, 어떤 연기적 맥락이 형성되느냐에 따라 관측대상은 입자가 되기도 하고 파동이 되기도 한다. 남북도봉에서와 같이, 입자로 나타날 때에는 파동이 숨고 파동으로 나타날 때에는 입자가 숨는다.
입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파동이 아니고 파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입자가 아니지만, 파동성이 입자성을 방해하지 않고 입자성이 파동성을 방해하지 않아 서로에게 걸림이 없으므로 물체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기도 하다. 남도봉과 북도봉이 쌍차하고 쌍조하는 것과 같이 입자와 파동도 쌍차하고 쌍조한다. 입지와 파동의 현상이 상즉한다.
3. 이사무애와 사사무애
공과 색은 서로 걸림이 없고 방해하지 않아 공과 색 사이에 아무런 장애가 없으니 공과 색은 원융하다는 것이 이사무애법계관이다. 여기서 공은 體이고 포며, 색은 用이고 事다. 이렇게 와 用, 理와 事가 서로 융섭하고 무애하다는 것이다. 진공관으로부터 이사무애법계관이 성립한다. 앞에서의 비유와 연관시켜 보면 도봉은 남도봉이나 북도봉과 원융하며, 물체는 입자나 파동과 원융하다.
공이나 색이 드러나거나 숨는다 하더라도 색은 오직 연기공이므로 공이 색을 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색과 공이 원융하다는 것은 색과 공이 따로 있고 그 둘이 서로 원융하다는 것이 아니다. 언어로는 비록 공이라 하고 색이라 하지만, 공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은 이미 색 안에 완전히 포섭돼 있고 색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색은 이미 공안에 완전히 포섭돼 있다. 모든 색은 연기에 의해 성립하기 때문에 연기공이 아니면 색이 없고, 공은 색성공이기 때문에 색이 아니면 공이 없기 때 문이다. 그래서 공이 아니면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색은 없으며, 색이 아니면 어느 때 어느 곳에도 공은 없다. 공은 색을 성립시키기 때문에 공이요 색은 공을 성립시키기 때문에 색이어서, 공을 공이게 하는 것은 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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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색이게 하는 것은 공이다. 그러므로 공이 전부 파하여 색으로 가는 공즉시색이 성립하고, 동시에 색이 전부 파하여 공으로 가는 색즉시공이.성립한다. 그래서 공과 색,.체와 용, 이와 사가 상하니, 이사무애법계가 성립한다. 22)
두순은 법계관문』 의 이편어사문에서 理가 事를 포섭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루 편재하는 법칙으로서의 理는 경계도 제한도 없으나, 포섭되는 대상인 그는 제한과 경계가 있다. 참된 이는 나뉠 수 없기 때문에, 일체의 事 가운데 가 모자라거나 빠뜨려지지 않고 모든 것에 펼쳐져있다. 23)
연기공의 원리에서 보듯이 이는 개개의 색에 두루 적용되는 것이므로 理가 사를 포섭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다만, 참된 이가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에는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보듯이, 질량을 가
진 물체라면 어떤 것이든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보편원리가 두루 적용된다.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나 그 물체의 위치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란 없다. 중력의 크기가 물체의 질량에 의해 결정될 뿐 다른 제약 조건은 없다. 연기의 맥락에 따라 무수히 많은 다른 과가 발생하지만, 연기한다는 사실과 연기하므로 공이라는 이는 예외 없이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만일 법칙이 적용되는 대상과 적용되지 못하는
대상 혹은 적용되는 경우와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로 나뉜다면, 이는 보편법칙 혹은 참된 理가 아니며 따라서 理와 事가 원융할 수 없게 된다.
두순은 이어서 이편어사문"에서 사가 理를 포섭하는 원리를 다음으로 설명한다.
22) 양형진, 위의 책, p.220.
23) 까르마 츠앙, 앞의 책.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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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하는 물질인 사는 경계와 제한이 있지만, 포용되는 이는 경계와 제한이 없다. 그런데도 이 제한된 이는 사와 부분적으로 동일한 게 아니라 완전히 동일하다. 사는 실체를 갖지 않으며 그 자체가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에 조금도 손상을 입히는 일 없이 한 티끌이 전 우주를 포섭할 수 있다.24)
이에 대해 징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떻게 큰 바다가 하나의 물결 속에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다가 나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나의 큰 理가 하나의 사속에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理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물결이 큰 바다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은 물결이 바다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티끌이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은 티끌이 곧 이기 때문이다.25)
24) 까르마 츠앙, 위의 책. p.224에서 재인용.
25) 까르마 츠앙. 위의 책. p.225에서 재인용
여기서 바다는 理를 상징하고 물결은 事를 상징한다. 중력 상호작용을 예로 들어 이를 다시 해석해 보자. 중력 상호작용은 하나의 물체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체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모든 물체에게서 오는 영향을 하나의 물체가 받아들이면서 성립한다. 우리 우주 안에 있는 질량을 가진 물체는 모두 이런 중력 상호작용을 행사할 수 있는 역용을 지닌다. 그러므로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하나의 원자 혹은 하나의 소립자에서 우주 전체의 중력을 다 읽어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상의 다른 중력 혹은 더 알아내야 할 다른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력이라는 理는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입자인 사안에 다 들어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력에 대한 논의를 보편적인 논의로 그대로 확장할 수 있다. 색은 오직 연기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법계를 구성하는 모든 색은 예외 없이 무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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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인 존재이므로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의 망 위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일체의 색은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을 행사할 수 있는 역용을 지니고 있고 또 지녀야만 한다. 그래서 연기공이 성립한다. 이렇게 색을 떠나 공이 있는 게 아니라 색의 성품 그 자체가 공한 것이므로, 하나의 색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 색 하나에서 연기공의 理가 온전히 다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이외의 다른 이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理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사가 능히 理를 포섭하게 되고, 그래야만 理와 사가 원융하게 되고, 이사무애가 성립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사사무애법계관에 이르게 된다. 앞에서 논의했던 도봉의 논의를 다시 살펴보자. 남도봉이 나타나면 북도봉이 숨고 북도봉이 나타나면 남도봉이 숨지만, 남도봉에서 드러나는 도봉 이외의 다른 도봉이 없기 때문에 즉 이는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북도봉에서 드러나는 도봉은 남도봉에서 드러나는 도봉과 다를 수가 없다. 이렇게 남도봉도 도봉이고 북도봉도 도봉이기 때문에, 서로 걸림이 없고 방해하지 않아 무애하니 남도봉이 북도봉을 포섭하고 북도봉이 남도봉을 포섭한다. 남도봉이 없으면 북도봉도 없고, 북도봉이 없으면 남도봉도 없다. 남도봉이 있기 때문에 북도봉이 있고, 북도봉이 있기 때문에 남도봉이 있다. 남도봉,북도봉 뿐만 아니라 온갖 곳에서 바라보는 모든 도봉이 이처럼 일체의 도봉을 포섭하여 사와 사가 무애하니 사사무애법계가 성립한다. 사사가 무애하여 한 도봉 안에 온갖 도봉이 다 들어있고 일체의 도봉이 또한 이와 같으니 일이 곧 일체요 일체가 곧 일이 된다. 법계 전체가 상즉하니 사사무애이다.
그러면 내 앞에 있는 연필과 책상은 사사무애하고 상즉하는가? 여기서 연필은 남도봉에 책상은 북도봉에 비유될 수 있다. 남도봉과 북도봉의 체가 모두 도봉이었던 것과 같이, 연필과 책상뿐 아니라 일체 사물의 체는 연기공 곧 진공이다. 연기를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도봉이 나타나지만, 연기한다는 것 곧 연기공이라는 것 곧 진공이라는 것은 불변이다. 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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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모두 공이지만, 어느 곳에서 도봉을 바라보는 인연이 성립하느냐에 따라 수없이 많은 도봉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인연의 화합이 어떻게 성립하느냐에 따라 연필도 되고 책상도 된다.
법계의 일체 사물의 체가 이렇듯 모두 진공이어서 차별인 사물의 용과 평등인 진공의 체가 상즉상입하니, 일체 사물이 또한 상즉상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일체가 상즉상입하므로 일즉일체 일체즉일의 사사무애법계관이 성립하게 된다. 사사무애의 자세한 내용은 심현문을 통해 다시 살펴본다.
III. 사사무애 법계를 설명하는 십현문에 대한 해석
이제 상즉상입하여 사사무애한 법계의 모습을 십현문을 통해 살펴보자.
이 글에서는 법장의 신십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1) 同時具足相應門,
(2) 廣狹自在無得門, (3) 一多相容不同門 (4) 諸法相卽自在T (5) 恩密了
俱成門, (6) 微細相容安立門 (7) 因陀羅網境界門, (8) 託顯法生解門, (9)
十世隔法異成門 (10) 主圓明具이다.26)
1.同時具足相應門
동시구족상응문은 총론 격인 제1문이다. 법장은 "십의가 동시에 상응하여 하나의 연기를 이룬다. 전후와 시종의 차별이 없고 일체를 구족하여 자재로이 역순하여 어울리면서도 뒤섞이지 않고 연기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10의는 (1) 교의 (2) 理事, (3)境智,(4) 행위, (5) 인과, (6) 의정. (7) 채용 (8) 인법 (9) 역순 (10) 감응이라고한다.28)29) 이 글에서는 교의와 경지와 인법과 감응, 이사와 체용, 인과를
26) 성철, 앞의 책, pp.113-120.
27) 계환, 「중국 화엄사상사 연구」(불광출판부, 1996), p283에서 재인용.
28) 계완, 위의 책, pp.28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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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고자 한다.
상입을 설명하면서 예로 들었던 전등을 다시 살펴보자. 이 사건은 그 전등이 나에게 나타남으로 성립하게 되므로 능선교와 선의가 상응하는 (1)의 교의가 이루어진다. 이는 대상을 능히 감지할 수 있는 능관智가 대상인 소현경에 상응함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3)의 경지가 성립하고, 모두 주체와 객체 사이에 성립하는 대응이어서 (8) 인법이기도 하며 (10) 감응이기도 하다. 300 또한 이 현상을 성립시키는 법칙이 있으므로 성립하는 것이어서 (2) 이와 사가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고 (7) 체성과 묘용이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5) 인과에 대해 살펴보자.
하나의 전등이 천장에 붙어 있다는 이 간단하게 보이는 사건도 걸림 없이 융섭하는 무진한 연기에 의해 성립된다. 천장과 벽면, 기둥, 지반 등의 무수히 많은 다른 것에 의지하여 하나의 전등이 천장에 달릴 수 있는 과가 성립하며, 이를 성립시켰던 그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들의 하나하나도 또한 다른 모든 것에 의지하여 성립한다. 기둥을 이루는 나무는 수백 년 전 태양에서 온 에너지가 응축돼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태양 에너지를 응축시킬 수 있는 식물의 광합성 작용은 지구에서 수십억 년 동안 진행된 진화의 결과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 모든 인연에 의해 성립된 작용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걸림 없이 응섭하여 동시에 투영되면서 전등이 천장에 걸려 있다는 하나의 사건이 성립된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전등만이 아니라 이 법계의 모든 사물, 모든 사건에서도 또한 마찬가지다. 이게 (5) 인과의 상응이다. 이렇게 10의가 서로 동시에 상응하며 의지하여 동시구족상응문이 성립된다.
29) 해주. 앞의 책. p.197.
30) 여기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상응 관계만 논의하지만, 이 네 의미는 중생과 불보살
사이의 상용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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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廣狹自在無碍門
법장은 「오교장」에서 “널리 법계에 두루 하면서도 본위를 잃지 않는다.
分이 곧 無分이고 무분이 곧 분이며 광과 협이 자재로이 장애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분은 분근 곧 좁음을 의미하고 무분은 無分근 곧 넓음을 의미하므로, 넓음과 좁음이 상즉하면서 동시에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 “큰 것과 작은 것에 자성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좁은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섭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32)
먼저 작은 것과 큰 것의 예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와 우리 몸에 대해 살펴보자. 세포의 크기는 우리 입장에서 보아 아주 작은 것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공장보다도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지닌 하나의 살아있는 세계다. 그 세포들이 모이고 의지하는 인연에 의해 우리 몸이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성립되는데, 우리 몸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세포가 없어지거나 그 기능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각각의 세포가 뚜렷이 자신의 존재로 남으면서 제 역할을 다 할 때만 하나의 생명체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또한, 하나의 생명체가 건강할 때에만 개개의 세포가 자신의 역할을 다 하면서 세포의 세계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세포도 우리 몸도 자성을 가지고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기하기 때문에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자성이 없고, 서로 장애가 없이 자재하고 포섭할 때만 생명이 된다. 만약 생명체가 살아있지 못하다면 세포는 세포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므로 세포가 아니라 하나의 정교한 물질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세계를 세포라고 하는 것은 생명체의 살아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생명체 전체가 개개의 세포에 의지해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세포가 생명체 전체에 의지한다는 것이므로, 생명체 전체와 세포가 상입해 있다는 것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세포가 전체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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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생명체 전체가 하나의 세포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어서 생명체 전체와 하나의 세포가 상주해 있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나의 세포와 생명체 곧 광과 협이 상즉상입하고 자재무애하게 된다.
3.一多相容不同門
하나가 전체를 용납하고 전체가 하나를 용납하여 개개의 모든 것이 상입하면서도 개개의 하나가 그 자신으로 남아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과 다가 무애한 것이 빈 방에 켜 있는 천 개의 등과 같다고 한다.
일과 다가 연이 되어 일어나서 역용이 교철하는 까닭에 상호 섭입할 수 있으니 이를 상용이라 하고, 그 상을 무너뜨리지 않으니 부동이라고 한다.33)
앞에서 논의했던 세포와 생명체가 좋은 예이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예인 천장에 달려있는 전등을 논의하고자 한다. 하나의 전등이 천장에 달려 있기 위해서는 이를 들어 올려주는 천장과 이를 끌어내리는 중력이 있어야 하며, 하나의 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쳐주는 기둥과 벽, 이를 끌어내리는 전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연기의 관계가 성립하려면 법계에 존재하는 개개의 사물, 개개의 사건들이 서로 모두 같은 것이어서는 안된다.
천장과 전등과 벽과 기둥이 서로 같지 않고 다르지만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 의지하는 것이 법계의 모습이다. 뇌세포와 심장의 세포가 서로 다른 자신의 역할을 해야만 생명이 가능하듯이, 천장과 전등과 벽과 기둥이 서로 다른 자신의 본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만 하나의 전등이
33) 해주, 위의 책, p.201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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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걸려있는 사건이 가능해진다. 모두가 천장이거나 모두가 벽이라면 혹은 모두가 천장이기를 고집하거나 모두가 벽이기를 고집한다면 법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중력상호작용에 의해 하나의 물체가 무수히 많은 다른 물체의 중력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물체가 무수히 많은 다른 물체에 중력을 가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개개의 물체는 언제고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일과 다가 서로를 용납하면서도 그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와 달이 뜨고 진다.
산을 산이게 하는 것은 물이요 물을 물이게 하는 것은 산이어서 물이 없으면 산은 산이 아니요 산이 없으면 물은 물이 아니다. 그러나 산과 물이 서로 섞이는 것은 아니어서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있으니, 산과 물이 서로를 용납하면서도 한 발짝도 동하지 않는 것이 법계의 모습이 다. 이처럼 법계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같지 않고 다름에도 서로를 용납하는 것을 多相容不同門이라 한다. 잡화엄식하는 법계의 모습을 말한다.
4.諸法相卽自在門
연기하는 일체의 모든 법이 상즉 즉 자신을 폐하여 상대와 같아짐이 자재하다는 것이다. 법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즉일체 일체즉일이 원융하고 자재로이 무애를 이룰 뿐이다. 만약 동체문의 입장에서 말하면 바로 스스로 구족하여 일체법을 접수한다. 그러나 이 자체의 일체는 또한 자체에 상입하여 중중무진하기 때문이다.34)
34) 계환, 앞의 책, p.284에서 재인용.
35) 계환, 위의 책, p.285에서 재인용.
연기의 묘리는 시종 한걸음에 연유하여 시를 얻으면 바로 종이요. 종을 궁구하면 바로 시를 찾는 것이다. 위의 동시 구족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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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즉과 상입을 논의하면서 제시했던 도봉이나 양자역학의 이중성을 비롯하여 모든 예가 일체의 법이 상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서, 제법상 즉자제문의 해석은 이 글의 다른 부분으로 넘긴다.
5.隱密顯了俱成門
숨는 것과 나타남이 함께 갖추어 이루어짐을 말한다. 법장은 다음으로 설명한다.
은밀히 숨는 것과 환하게 나타나 있음이 한꺼번에 성취되는 것이다.
...... 이쪽은 보고 저쪽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서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성립하면 저것도 성립하는 이유로 구성이라고 한다.36)
연기를 따라 남도봉이 나타나면 북도봉이 숨고 북도봉이 나타나면 남도봉이 숨는다고 했다. 서로 숨고 나타나지만, 숨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남도봉이 없으면 북도봉이 없고 북도봉이 없으면 남도봉이없는 것이어서, 숨는 것이 있어야 나타남이 성립한다. 법장은 화엄현담에서 반달의 예를 들었다고 하는데, 이 글에서는 양자역학의 이중성을 다시
논의하고자 한다.37)38)
연기에 따라 즉 어떤 상황적 맥락이 형성되느냐에 따라 관측 대상은 입자가 되기도 하고 파동이 되기도 한다. 입자처럼 행동할 때에는 파동의 특성이 숨고 파동처럼 행동할 때에는 입자의 특성이 숨는다. 입자로 나타날 때에는 파동성이 파하여 입자성이 되지만 파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파동으로 나타날 때에는 입자성이 파하여 파동성이 되지만 입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입자성과 파동성이 상즉하기 때문에 숨고 드
36) 계환, 위의 책. pp.287-288에서 재인용.
37) 까르마 츠앙, 앞의 책, p.198.
38) 해주, 앞의 책,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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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남의 연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자성과 파동성이 동시에 갖추어지니, 은밀과 현료가 함께 성취된다.
한 송이의 꽃을 피게 하는 것은 한 마리의 새이고 한 마리의 새를 울게 하는 것은 한 송이의 꽃이지만, 한 마리의 새가 울어 한 송이의 꽃이 필때에는 새는 숨고 꽃만이 드러나고, 한 송이의 꽃이 피어 한 마리의 새가 울 때에는 꽃은 숨고 새만이 드러난다. 전 우주가 하나의 존재를 있게 할 때에는 하나의 존재만이 드러나고 전 우주는 비밀스럽게 숨는다. 이렇게 드러나고 숨는 일이 전우주의 모든 것에 대해 평등하게 성립하여 비밀스럽게 숨고 드러나지만 언제나 함께 성립하니 現 혹은 은밀현
료구성문이 성립한다.
6. 微相容安立門
미세한 존재가 서로를 용납하면서도 상대와 섞이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력상호작용을 다시 예로 들어 살펴보자. 우주에는 강력,약력, 전자기력, 중력의 네 가지 기본적인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이 중 핵붕괴와 관련된 약력을 제외하면 중력은 가장 세기가 약한 상호작용이다. 중력상호작용의 세기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예를 들어 확인할 수 있다. 작은 플라스틱을 문지를 때 생기는 정전기력은 작은 종잇조각을 들어 올릴 수 있지만, 커다란 쇠뭉치가 무겁다 하더라도 이것이 만들어 내는 중력은 아주 작은 먼지도 들어 올릴 수 없다. 이는 중력의 세기가 전자기력의 세기보다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천체의 운행이나 생성/괴멸의 진화과정은 거의 전적으로 이 미약한 중력에 의해 진행된다. 중력의 세기는 상호작용하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두 물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그 힘의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상호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지금 내 앞에 있는 연필을 구성하는 각각의 원자는 2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 성운을 구성하는 원자와 만유인력을 교환한다. 두 원자가 교환하는 만유인력의 크기는 아주 작은 미세한 것이지만, 그 작은 미세 한 힘들이 모여 천체를 운행하게 하고 성주 괴공하는 우주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우주의 진화는 광대한 영역에서 장구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만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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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체계적인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야 설명할 수 있는 일이니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으로 범위를 좁혀 보자.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연필을 구성하는 원자는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 끌어당긴다. 아마존 정글의 삼나무를 구성하는 원자와도 상호작용을 한다. 연필과 삼나무 사이에 수많은 물질이 존재하지만 그 물질들이 연필과 삼나무의 상호작용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른 물질들이 연필과 삼나무 사이의 미세한 상호작용을 방해하지 않고 서로 용납하지만 서로 섞이지 않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 상호작용의 합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로 우주의 운행과 진화가 가능하게 된다.
중력을 예로 들었지만, 이와 유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원자들이 모여 분자를 이루고, 분자가 모여 생명물질을 이루고 생명물질이 모여 세포를 이루고, 세포가 모여 생명체가 이루어지는 각 단계가 가능한 것도 미세한 것들이 섞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용납하기 때문이다.
7. 因陀羅網境界門
인다라망의 비유를 들어 법계연기가 무진하다는 것을 말한다. 법장은 "체와 상이 자재하고 은밀히 서로를 나타내어 중중무진함을 나타낸다."고 한다.39)
앞에서 논의했던 천장에 달려있는 전등의 예를 다시 살펴보자. 그 전등
39) 계환, 앞의 책, p.286에서 재인용.
법제연기에 대한 과학적 해석 / 양형진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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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금 그 모습으로 그 곳에 있는 것은 전 우주가 일제히 그 전등에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 우주적 투영이 없다면 그 전둥이 지금 그 자리에 존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전등에는 온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들어와 있다. 온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들어와 있는 그것을 우리는 하나의 전등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의 전등이라고 부른다.
온 우주의 다른 모든 것에 의해 그 하나의 전등이 성립하고 하나의 전등에 의해 온 우주의 다른 모든 것이 성립한다.
이는 제석천궁의 무한한 그물코에 달려 있는 무한한 보석이 서로의 빛을 받아 서로 반사시키는 모습과 같다. 하나의 전등을 포함한 일체의 존재가 모두 다 이렇게 상입하면서 무진 연기하니 因陀羅網境界門이 성립 한다.40)
8.託事顯法生解
현상계에 대한 설명에 의해 진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계환은 "연기의 제법이 그대로 불가설 불가사의의 법계법문을 밝히고 있다"고 하였고,41) 해주는 "모든 연기된 존재가 그대로 법제법문임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당체가 그대로 연기 현전한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다 비로자나 진법신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는 그대로 법의 상징이다. 법이 비유이고 비유가 곧 법이다. 그래서 화엄의 상징은 직현인 것이 다."라고 했다.42)
화엄의 세계는 진과 망이 화합하고, 성과 상이 교철하며, 이와 사가 원융하고, 사와 사가 상주하는 세계다. 이는 화엄의 세계가 천상의 세계나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서 숨 쉬는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불법은 부처가 만든 것도 아니고
40) 양형진, 앞의 책, pp.210-211.
41) 계환, 앞의 책. p.291.
42) 해주, 앞의 책,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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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만든 것도 아니며, 부처님이 오시기 전부터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래야 할 우주의 진리일 수 있을 것이다.43)
상즉하고 상입하는 법계에서는 이 우주의 보편적 진리가 한 송이의 꽃과 한 포기의 풀에 완전히 배어있게 되니, 하나의 존재와 하나의 사건에서 무진법계연기의 실상이 온전히 다 드러난다. 이렇게 한 물건 한 사건에 의해 우주의 보편적 진리가 드러나니, 산하대지가 그대로 진광이어서 탁사현법생해문이 성립한다.
9. 十世隔法興成門
법장은 십세격법이성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위의 여럿 뜻이 십세에 두루하여 동시에 따로 다르게 갖추어져 현현하는 데 시와 법은 서로 여윌 수 없기 때문이다. 십세란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가 각각 과거 미래 및 현재가 있으니 구세가 되고 다시 구세가 서로 상즉하기 때문에 하나의 총체를 이루는데 총과 별을 합치면 십세가 된다. 이 십세는 따로 다름을 구족하면서도 동시에 현현하여 연기를 이루기 때문에 상입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4)
내가 하늘을 보면서 푸르다고 느끼는 사건에 대해 살펴보자. 하늘이 밤에 검게 보인다거나 해질녘에 붉게 보인다는 것은 하늘이 푸르다는 자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며, 내가 내 앞에 있는 책상을 갈색으로 본다는 것은 내가 모든 사물을 푸른색으로 보는 자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색의 감지 혹은 색의 나타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내가 하늘을 푸르다고 느끼는 것은 무아의 주체인 내가 무아의 대상인 하늘을 보았을 때 하늘이 푸른 것으로 나에게 나타나는 사건이다. 이렇게 자성을 지니지 않고 연기에 의해 성립되는 사건은 무한한 인연이 중첩돼
43) 성철, 「백일법문 (장경각, 1987), p.169.
44) 계환, 앞의 책, p.289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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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푸르거나 붉게 보이는 것은 빛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산란되고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푸른색이나 붉은색은 하늘의 색이 아니다. 하늘의 색이 아니면서 마치 하늘의 색인 것처럼 푸르거나 붉게 우리에게 나타날 뿐이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색은 빛이 어떻게 산란되고 흡수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어떤 산란과 흡수의 과정이 진행되는지는 지구 대기권의 두께와 대기의 조성비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지구 대기가 현재와 같은 조성비를 갖게 된 것은 광합성을 비롯한 지구 생명체의 활동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지금의 색으로 나타난다는 이 순간의 사건에는 지구상에서 진행됐던 38억 년 동안의 생명진화의 전 과정이 개입돼 있다. 그리고 지구 대기권의 두께는 지구 형성 초기의 지구 구성 물질의 종류와 양에 의해 크게 결정됐을 것이기 때문에, 이까지 감안한다면 현재의 하늘색은 최소한 45억 년의 지구 역사가 개입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이나 지구의 진화 과정을 통해 과거의 모든 순간은 현재에 와 닿아 있고 현재는 미래의 모든 순간에 연결돼 있다. 이는 매순간 순간에 언제나 그렇기 때문에,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과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는 것은 아무리 줄여 잡아도 45억 년 동안 진행된 지구상에서의 연기의 전 역사가 그 안에 개입하면서 성립된 사건이며, 이는 또 앞으로 전개될 진화의 모든 과정으로 연결되는 사건이다. 한 찰나의 개화는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로 뻗어가는 사건이며,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가 지금 이 순간으로 투영되는 사건이다. 이처럼 상입의 상호 투영이란 공간적으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또한 성립한다. 이 상호 투영이 어느 한 곳 예외 없이 모든 순간에 걸쳐 성립하니,十世隔法興成門이 성립된다
10,主伴圓明具德門
인다라망의 비유가 보여주는 것처럼, 전 우주는 하나의 전등을 천장에 달려있게 하고 한 송이의 꽃을 피게 하며, 하나의 전등과 한 송이의 꽃은 전 우주의 모든 존재를 성립하게 한다. 한 송이의 꽃이 전 우주를 있게 하고 전 우주가 한 송이의 꽃을 피게 한다면, 꽃이 피려면 새가 울어줘야 하고 새가 울려면 꽃이 피어야 한다. 여기서 꽃이 필 때는 꽃이 주인공이 되고 새가 보조자가 되지만, 새가 울 때는 새가 주인공이 되고 꽃이 보조자가 된다. 법계 안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주체(主)가 되는 동시에 조건(반)이 된다. 꽃이 홀로 필 수 없고 새가 홀로 울 수 없어, 어느 것 하나 홀로 성립하는 것이 없이 주와 반이 서로 융섭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있게 하니 주반원명구족문이 성립한다.
주반원명구족문은 한편으로는 주인공인 주와 보조자인 반이 융섭하여 서로를 있게 하는 법계연기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연기하는 법계 안의 존재자가 따라야 할 화엄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한 존재가 언제나 주가 되고 다른 존재가 언제나 반이 되어, 주종의 고착된 관계를 이루면서 조화와 질서를 이룬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상의상대하는 연기의 관계일 수 없다. 가르친다는 면에서 보면 스승이 주고 제자가 반이지만 배운다는 면에서 보면 제자가 주고 스승이 반인 것처럼, 주와 반은 언제나 함께 있으면서 서로 도와야 할 뿐 아니라 하나의 존재자는 주이면서 동시에 반이어야 주와 반의 원명하고 구족함이 이뤄진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두가 보석과 같이 귀한 존재이며, 그 각각은 서로가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구조 속에서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인다라망이라면, 연관과 의존의 연기적 구조 안에서 공존함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생명세계는 정확하게 인다라망의 구조를 가진다. 이 연기의 그물망 안에서는 인간이 주인이고 다른 모든 생명이 보조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생명이 주인이고 인간이 보조자이기도 하다. 생명세계의 구성원 모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석처럼 존귀한 존재여야 한다. 낱낱의 생명체가 일체의 공덕을 갖추고 있는 주인이며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하는 주인임을 자각할 때 생명세계의 질서와 평온이 가능해질 것이다.
IV. 맺는 말
불교와 자연과학은 겉으로는 대단히 이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불교는 수행과 명상에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반면, 자연과학은 관측과 귀납연역적 방법을 통해 자연현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는 신의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과학은 세계에 대한 선험적 이해에 의존하지 않는다. 불교가 명상을 통한 주관적 체험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고 자연과학이 실험과 관측이라는 경험을 통해 자연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둘은 모두 경험에 의존한다는 방법론적 공통점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이 방법론적 공통점이 세계상의 일치 혹은 유사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보현의 경계인 연기가 언설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연기가 제법의 여실한 인연이라면, 이 인연의 모습은 자연세계에서도 마땅히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세계에 대한 설명 중 가장 믿을만한 것이 자연과학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자연과학의 성과를 통해 상상하는 사사무애의 연기세계를 이해하는 것도 가 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자연과학의 성과를통해 화엄의 법계연기론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상즉하고 상입하는 사사무애의 세계를 연기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의 세계, 중력상호작용, 작용과 반작용,
45) John Losee. A Historical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Science (Oxford U. Press, 1993),
pp.31-35.
양자역학의 이중성, 생명 진화의 누적적 결과 등 자연과학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해석해 보았다.
서로 다른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각기 다른 분야의 자연과학이론이 존재하듯이, 관점에 따라 법계연기를 보는 십현문의 각기 다른 설명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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