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에 詩가 흐르다
마이클 케나 사진전 <고요한 아침>-공근혜갤러리
'이 순간 소리없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네'
강원도 삼척의 솔섬을 살린 영국작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 Michael Kenna의 개인전 <고요한 아침>이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2012년 3월 18일까지.
이번 전시는 2011년 2월의 전시했던 <철학자의 나무>에 이어 두 번 째 한국전으로 작가의 1974년 초기 작품부터 2011년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촬영한 풍경사진들 가운데 나무와 관련된 사진만을 모아 구성한 전시로,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유럽과 미대륙에 걸친 다양한 나라의 독특한 분위기를 미니멀한 시각으로 포착해낸 52점의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다양한 풍경들을 통해 사람과 주변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고민해 온 마이클 케나의 작품 속에서 나무란 그 어떤 소재보다도 특별하다. 고요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산과 바다 그리고 도시 속에서 10 시간이 넘는 장 노출로 카메라와 함께 조용히 풍경들을 응시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때로는 홀로, 때로는 여럿이 함께 숲을 이루며 늠름하게 서 있는 그의 사진 속 나무들과 아주 닮았다.
촬영부터 인화까지 직접 손으로 진행하는 아날로그 사진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시대와 맞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지만, “ 나는 아날로그적인 과정이 주는 한계와 느림을 통해 기다림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러한 과정은 나에게 예술가로서의 신념과도 같은 것이다 “ 라고 말한다. 나무와 같은 이런 꿋꿋한 작가적 태도는 2011년 3월에 타계하신 법정스님의 잠언집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 의 배경이 된 케나의 명상적인 사진들 속에도 잘 녹아 있다.
또한 2007년 한국을 방문한 작가는 당시 LNG 생산기지가 들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강원도 삼척의 솔섬을 아름답게 기록하여 인간의 개발의지보다 더 중요한 예술적 자산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우리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52점의 흑백 사진들은 컬러사진이 근접할 수 없는 흑백의 무한하고 아늑한 깊이 감이 동양화의 수묵화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마이클 케나식의 풍경사진 열풍은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그의 사진을 추종하는 사진작가들이 대거 생겨날 정도였다.
마이클 케나는 그의 사진집 <고요한 아침> 서문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모두 혼돈과 안정, 격정과 고요를 경험합니다. 각자의 인성에 있어서도, 삶이라는 긴 여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편린들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세상은, 쉴새 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시끄러우며, 다채롭고 불가항력적인 자극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저는 작품을 통해 일종의 오아시스, 휴식의 장소, 숨쉴 수 있는 시간, 차분해질 수 있고 심지어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의 초기작 대부분은 이른 새벽에 촬영된 것이며, 저는 아직까지도 신비로운 아침 시간에 사진을 찍습니다. 물러가는 밤이 다가오는 낮으로 바뀌어 가기 전의, 차가운 아침 공기 속의 정적을 저는 사랑합니다. 이른 아침에는 세상이 잠들고 난 후의 신선함과 희망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거기에는 새로운 시작에의 분명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여행하는 동안 이러한 아름다운 아침들을 여러 번 경험하고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이 책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리고 저 자신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놀라운 세상의 경이로운 아침의 고요함을 더욱 더 발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말한다.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나무처럼” 살기 원하셨던 법정 스님처럼 마이클 케나의 이번 한국 개인전을 통해 관람객 스스로가 <철학자의 나무>가 되고 <고요한 아침> 속으로 빠져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영국 출신의 사진가 마이클 케나(1953-)는 200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예술공로 훈장인 Chevalier슈발리에 상을 받았으며, 스페인, 미국 등의 각 나라가 수여하는 예술상을 받은 바 있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 외규장각이 보관되어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 Biblioteque National de France - 에서 대규모의 회고전이 열렸다. 또한 세계적인 팝스타 엘튼 존은 “마이클 케나의 작품으로 예술품 수집을 처음 시작했고 현재 200점 이상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고 전했다. 마이클 케나는 35년 동안 600개가 넘는 전세계 화랑과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으며 프랑스 국립 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토쿄 사진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LA 현대미술관, 워싱턴 국립미술관, 상해 국립 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매거진 포토’ 및 마이클 케나 사진집 등에서 발췌정리/임윤식)
*위 글은 2012년 3월에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렸던 마이클 케나 사진전 <<고요한 아침> 소개 글을 일부 수정하여 재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