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인간의 모든 즐거움은 몸과 마음에서 나오며,
그것은 내 마음(마음씨, 마음심뽀, 마음씀씀이)에 달려있고, 모든 일들이 나와의 관계를 통해 나오기에
전부 내 탓이다.
인간 유사 이래 종교나 철학 등의 수행을 비롯한 모든 삶의 활동을 통한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핵심이자 조건이 바로 "마음"이다.
이것을 올곧게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신비적이고 미신적이며, 고차원적이거나 비현실적이며,
엉뚱하고 허황된 짓은 하지 않으며,
대물림되는 수 백, 수 천년의 의식과 가치관은 엄정히 구분할수 있게 되며, 현 시대에서도 한 쪽으로 편향된 다수의 군중심리에 부하뇌동할 이유가 없어진다.
■ 인간 삶 최고, 최상의 즐거음
우선 여기서는 일상생활과 종교나 철학, 무예(심신 연마)의 세 가지를 통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즐거움을 맛으로 표현해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예란 몸놀림의 나타냄이다. 큰 동작 속 기운의 나타냄은 작은 동작을 통한 기운의 나타냄보다 쉽고 덜 효율적이며, 움직이지 않고 나타나는 기운이 작은 동작의 나타냄보다 더 진보된 모습으로
무예 몸놀림의 최고 단계로 표현해 볼 수있다.
생활 속 직업 일선 현장에서도 고수나 노련한 사람은 최소 기운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과 진배없다.
암튼 그것의 진맛이란 "무위(無爲)의 기운"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자기화"하고, "실용화"할 수 있을 때, 무술 수련을 통해 남이 알아챌 수없는 저마다 다른 특색으로 최고의 기쁨을 가지게 된다.
■ 몸의 氣無化
그게 진영쌍검류 시스템에서 말하는 몸의 기체화(氣體化 혹은 氣無化)를 통한 기무체(氣無體)라는 것이며, 가끔 들어볼 수 있는 합기체(合氣體) 혹은 음양체(陰陽體)라는 말을 예를들어 설명이 가능해진다.
인간 삶에서 참 맛을 한 번 생각해보자.
인간 몸이 있기에 먹고 살기위해 가지는 식욕, 성욕, 물욕, 명예욕, 권력욕 등이 있다. 그것들을 충족함으로써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은 참 맛의 순서에는 제외된다.
왜냐면 그것들은 몸기계의 수명이 다하면
다 사라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을 진실하게 잘 나타내고 베풀때 상대가 즐거워하면서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부모나 자식 혹은 사회 생활 속 친구나 지인 등과의 괸계를 통해 나타나는 수많은 종류의 기쁨이 존재한다.
■ 인생 성적표 - 다음 생의 여행지 티켓
수없이 많은 예를 들수 있으나, 몸기계를 가진 인간이 가지는 진정한 참 맛이란 몸기계 주인의 능력을 한 번 흉내내어 보는 것으로 표현해 볼 수 있다
다른 말로서는, 자연의 사랑이 몸기계를 가진 인간의 한 영혼에게 주어져 한 번 써 보게 되는 것,
즉 견성성불(見性成佛)이 그것이다.
그 주어지는 사랑의 전달이
사는 동안 나의 믿음(삶의 성적표)을 쌓아가도록 하며, 내가 죽어서 가져가게 되고,
그 성적으로 다음 생의 여행지 티켓이 정해진다.
종교나 철학의 깨달음이란 "일체유심조"와 "견성성불"을 몸과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계속된 체험이 가능하다면 사는동안 그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최고의 복이며, 즐거움이다.
그게 부처님 가피이고,
하느님 은총 혹은 축복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전부 다 "마음"이 핵심이다.
내 맘먹기 달렸다는 말이며.
그게 "일체유심조"다.
☆무예에서는,
자연의 기운을 알아감에따라 그것의 반복된 수련으로 자석화(磁石化)를 통한 그 기운의 체득(體得)은 기무체(氣無體)로서 설명이 가능해지며, 사람을 힐링시킨다는 것도 그것이 밑바탕이 된다.
☆일상생활의 삶은 자연이 순리라서 거기에 순응하면서
추세 부응하고,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통해 "반복된 깨달음"(자석화)으로 "기운의 체득"(자기화와 실용화)을 통해 자연의 사랑을 생활 속에서 써먹게 될 수 있을 때, 한 영혼으로서 최대의 기쁨, 즉 인생 참 맛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된다.
오직 터득하려는 최선의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겪을 수있는 "스스로의 체험"만이 그렇게 만든다.
☆종교나 철학에서는
불성(성령)의 체득으로 불성화(성령화)가
수행의 기본이 되며, 그게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되며, 상대의 불편하거나 아픈 곳을 자연스럽게 치료할 수 있는 원리가 각자 수준에 맞게 주어진다.
아니면 아닌 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체유심조"와 "견성성불"을 몸과 마음으로 인식하면서 "진실한 사랑의 실천"으로 앞으로 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될 때 인생 최고의 정점에 서게 된다.
성불해라는 것(하느님 되라)이 아니라,
부처님 사랑을 가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라고 해야한다. 그게 보살화 또는 불성화이며,
보통명사로서 부처라는 말로 생각해 볼 수있다.
그것은 반드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만들어진다. 혼자 외딴 곳에 가서 수행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사랑의 진실한, 지속된 실천으로 "성령화(불성화)"가 가능하게 되어 한 영혼으로서 하느님의 무한대 능력을 필요에 의해 순간 한 번씩 흉내낼 수 있을 때, 인간 삶 최고, 최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성령(불성)체험이고,
그것도 "체득"으로 설명된다.
결국 일상생활 속 추구하는 최고의 즐거움이란
자연이 순리라서 거기에 따르기 위해 추세부응을 잘함으로써 각자가 반드시 한만큼만 가질 수있게 된다.
반드시 각자 능력껏 한만큼이며
각자 마음씨 뿌린대로이며
각자 마음씀씀이 나타낸대로이며
각자 마음심뽀를 부린대로 한만큼
즉
자연스런 삶 - 내 마음(의지, 주관, 상식)대로 삶 = 차이만큼
내가
아프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여,
일이 꼬이고 골이 아프다.
다 내가 만든 그 속에서 뒹굴고 씨름하다
언제가는지도 모르게,
올 때도 정신없이 왔지만,
갈 때도 정신없이 간다.
사는 동안
최고, 최상의 즐거움을 가지는 것은
한 영혼으로서 남에게 지혜롭게 베풀면서 갈 때,
자연의 사랑을
순간순간
즉시즉시
그때그때
누릴 수있게 되면서
건강과 행복은 덤으로 가져간다.
■ 자연의 사랑
결국 사는 동안
인간 삶 속
무예나 종교, 철학 그 어떤 것에 있어서도
최고 최상의 즐거움은
"자연의 사랑"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래서 인간 삶의 핵심은
"사랑"이며
그것을 쌓아가도록 하는 것이
"마음"(마음씨, 마음심뽀, 마음씀씀이)이다.
마지막 갈 때
가져가는 것이
본성(본래 가져왔던 마음자리)과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쌓아놓은
사랑(믿음, 인생성적표)이다.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인
"사랑(영혼성숙)"의 관점으로 볼 때,
참 맛이나 진 맛이나 깨달음의 맛은
그 표현이나 과정은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결국에는
다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종교가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결국 하나의 이치를(자연의 사랑) 알고 다가서면서
각자 믿는 종교를 더 좋게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되며,
나도 좋고 남도 좋게 하면서,
각자의 삶을 더욱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자연스런 삶을 영위하게 된다.
아니라면, 中道나 올바른 사랑의 실천이 아니며,
기존 의식에 갇혀 샛길에 서있는 것으로서
正道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내가 산다"는 말이
인간 삶에서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짚고 있다.
■ 상기의 내용들의 바탕과 기본 이치와 원리는 현재 시판 중인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다섯 편(저자:김정성, 맑은샘출판)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수행의 바른길 1편(세종도서 선정)
http://m.cafe.daum.net/enlightenment-k/hApa/5?svc=cafe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