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순흥안씨 시조 안자미는 고려 신종 때 보승별장을 지냈다. 시조 이래 후손들이 순흥에서 살았기에 이 곳을 귀향으로 삼았다. 순흥은 경북 영주군 순흥면의 지명이다.
우리나라 주자학의 태두 안향은 고려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열왕 때 좌승지 등 벼슬을 지낸다. 왕과 공주를 따라 원나라에 갔을 때 “주자전서”를 접하고 돌아와 주자학 연구에 진력,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가 된다. 그는 또 육영재단인 섬학전을 설치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문하에서 백이정, 우탁 등이 나왔다. 백이정의 학풍은 이제현, 이색 등에 의해 계승된다. 이색의 문하에서는 권근이 나와 유학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다.
도산 안창호와 안중근. 이들은 순흥안씨의 영광스런 이름이다.
도산은 평남 강서 출신으로 1897년 구세학당을 졸업한 뒤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9년 강서에 점진학교를 설립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교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공립협회를 만든다. 1907년 귀국하여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 민족 각성운동을 전개했다. 도산은 평양에 대성학교,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운 뒤 1912년 미국으로 망명, 흥사단을 설립했다. 59년 일생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고 끝내 침략자의 형벌에 순국한 도산은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 간디에 비교된다.
안중근은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고 승마, 궁술도 익혀 문무를 겸비했다. 1895년 천주학에 입교한 그는 1907년 남포에 돈의학교를 세운 후에 만주를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한다. 1909년 하르빈에서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은 유시 하나를 남기고 의연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남아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