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상반기 런던의 주요 박물관과 갤러리들은 전시 기획을 <대가와
그가 미친 영향력>이라는 커다란 컨셉을 맞추고 움직였나 보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묘하게 Royal Academy 에서는 루벤스Rubens를
내세워 <Rubens and His Legacy - Van Dyck to Cezanne>를, The National Gallery 에서는 들라크루아Delacroix를
중심으로<Delacroix and the rise of modern art>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이하 V/A)에서는 르네상스의 거장 보티첼리Botticelli를 재조명하며
보티첼리 당대의 작품들과 그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화가들의 작품,
20세기 회화를 벗어난 디자인 및 영상물까지 그의 영향력이 닿은 다양한 형태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 <Botticelli Reimagined>를 기획하였다. 비록
앞의 두 전시는 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지만 운 좋게 마지막 일정에 관람할 수 있었던 V/A의 <Botticelli Reimagined>에 대하여 리뷰를 작성한다.
<런던 V/A에서
진행된 보티첼리 전시포스터, V/A는 한국의 대림미술관, 디뮤지엄처럼
디자인 중심의 전시를 많이 선보이는 곳이다. 시각적인 만족감. 그래서
일까?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은 두 곳의 공통점이다>
가장 최근 V/A에서 접했던 전시는 2015년
3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사비지 뷰티Savage Beauty 였다. 이미 2007년 뉴욕에서 한번 진행된 전시가 다시 런던에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맥퀸의
전시는 큐레이팅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술과 큐레이팅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V/A의 큐레이터들은 맥퀸의 무겁고 그로테스크한 소품과 옷들을 모두 전시를 위한 소품으로, 전시장 전체를 자신들의 작품화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훌륭한
기억 탓에 이번 보티첼리의 전시 또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었을까? 전시에 대해 <혼란스럽고 정신 산만하다>는 혹평과 함께 별 3개를 준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지 평점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인상보다는 어수선하니 다시 정리해야겠다는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보티첼리를 보는 가장 최고의 방법, 관람 필수> 라고 말한 The Financial Times도 있으니 전시는
역시 관람자의 몫임과 동시에 기획자의 의도가 얼마나 관람자에게 잘 전달되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전시는 크게 3파트로 이루어졌다. 1. 보티첼리에 영감을 받은 현대 예술 작업들, 2. 1800년대 보티첼리를 재발견하는데 기여한 라파엘전파, 3. 그리고
마지막은 보티첼리(그의 작업실 조수들을 포함한) 회화와 드로잉
부분이다. 1-2-3의 순서대로 동선을 이루어 기획된 전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티첼리의 회화와 드로잉
전시 부스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은 물론이다. 여러 설치 미술과 영상물들이 현 시대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회화와 드로잉이 쏟아내는 많은 이야기들에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머무는 모습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화를 기록한 <다시, 그림이다> 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부스는 사람들에게 보티첼리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수수께기
같은 곳이었다. 보티첼리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 보다는 그의 작품
<The Birth of Venus>와 <Primavera>를 예술가
자신들의 해석으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어두운 방을 들어가자마자 시작되는 영상물과 함께 비너스를 재
탄생시킨 영화, 회화, 프린트, 그리고 심지어 명품 브랜드 돌체 앤 가바나의 비너스가 프린트된 옷까지. 전시는
화려한 네온 사인 마냥 그 서막을 알렸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영상물>
<비너스가 프린트된 돌체 앤 가바나 의상이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에 디피되어 있다>
<Rebirth of Venus 2009 by
David LaChapelle>
<르네마그리트의 작품 / Rene Magritte, Le
bouquet tout fait, 1957>
설치 작품 및 기타 다른 것들을 보면서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어떻게 현 시대의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어떠한 방법으로 삶 속에 파고 들었는지를 역으로 추측해가는 수수께기
같은 장소가 집중할 수 없이 어수선해 다소 기운이 빠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역으로 작품을 보는 등 첫 번째 부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오감으로 자극하며 보티첼리에 대한 문을 열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다.
다음 전시장은 라파엘전파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지난 몇 년간 영국의 주요 박물관과 갤러리 전시는 자국의 미술을 세계 미술사에
끼워 넣기 위한 부단한 밑 작업이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영국 본토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군림하던 라파엘 전파가 시간이 흘러 세계 미술사에서 아무것도 보여줄 것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영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여전히 애정을 쏟고 만족하였을까? 그들의 눈을 정확했는가?
길을 잃은 현대미술 속에서 다시 주도권 쟁탈을 위해 본국의 미술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미술을 세계 미술사의 작은 실마리에라도 연결시키려 치밀하게 준비하고 스며들고 있었다. 그렇게
그 방의 대부분의 작품은 Burne-Jones와 Rossetti,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의 다른 전시들에서 많이 봐왔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몇몇 처음 보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중 Walter Crane 의 The
Renaissance of Venus 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 덕분에
두 번째 부스는 충분히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이 얼마나 묘한 전시의 특성이란 말인가.
<라파엘 전파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두 번째 부스였다. 영국의 큐레이터들은 지난 시간 적지 않은 노력을 통해 자국의
미술을 부단히 세계미술사에 집어넣으려 하였고 그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충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진다.
<라파엘전파의 다른
작품들, 사진 속 맨 우측의 작품이 바로 아래 작품이다>
< Walter Crane
의 The Renaissance of Venus,
1877년>
물론 예측 가능하게, 사람들은
보티첼리를 생각하며 'The Birth of Venus' 나 'Primavera'를
떠올린다. 그러나 원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직접 피렌체의 우파치 미술관에 가지 않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신 전시장에 놓여진 컬렉션은 보티첼리와 그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종교화, 신화를 배경으로 한 회화, 초상화, 드로잉 작품들이었다. 특히 보티첼리에 의해 그려진 작품들과 그의
조수들에 의해 그려진 작품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똑 같은 사람의 초상화가 다양한 버전으로 있는 점,
그 스타일이 약간씩 변화하는 과정 등은 흥미로웠다.
가장 재미있게 본 그림은 'Pallas and the
Centaur’ 였다. 전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작품이었는데 여신 팔라스가 센터우르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마치 애완동물을 대하는 모습인 반면 그녀에게 머리를 향하고 있는 센터우르는 어쩔 수 없는 듯한 표정의 야생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Pallas and
the Centaur’
보티첼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름답게
겹쳐진 옷자락의 주름과 두 신화적 인물의 섬세한 표현은 나로 하여금 몇 번이고 작품을 좀 더 가까이, 좀
더 한발자국 떨어짐을 반복시키며 관람케 하였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한 큐레이터의 욕심만큼 볼거리가 많은, 그래서 조금은 어지러운 전시였던 것이 솔직한 관람 평이다. 그러나
이렇게나 많은 보티첼리 관련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였다. 전시 기획을 공부하는 내게 버릴 전시는 단 한 전시도 없음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번 V/A의 보티첼리 전시는 워크샵 일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The National Gallery와 Royal Academy의
전시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잇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도록 하였다. 서늘한 영국의 여름날에 만난 보티첼리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현대의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비틀어보고,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자리였다.
첫댓글 오늘에서야 이 글을 읽어보네요.
글이 많이 단단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서두에
<<대가와 그가 미친 영향력>이라는 커다란 컨셉을 맞추고 움직였나 보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묘하게 Royal Academy 에서는 루벤스Rubens를 내세워 <Rubens and His Legacy - Van Dyck to Cezanne>를, The National Gallery 에서는 들라크루아Delacroix를 중심으로<Delacroix and the rise of modern art>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움직였나 보다...말이다라는 단어가 전개되는 단단한 글의 내용을 첫장부터
김을 뺍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처음 도입부가 너무 강하고 폭력적으로 보일까봐 고민했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냈네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키워드....미의 개념을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그리스의 비너스에 대한 상징성에서
찾고 오늘날 모든 산업계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 것을 제시하고
그것에 의해 기획된 핵심이 구체적으로 언급이 안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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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글입니다.
앗. ㅠㅠ 이 부분을 빼먹었네요..ㅠㅠ
촘촘한 전시리뷰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