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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인사드리러 가는 마음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발현 성지
김선희
우리 딸 아녜스는 유독 엄마사랑이 강하다. 엄마는 아들을 더 챙긴다고 늘 말하면서도 제 오빠보다 나를 독차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 딸이 시집을 가서 첫딸을 낳았다. 자기 사랑을 보상 받으려는 듯 그 아이에게 사랑을 퍼붓는데 엄마인 나의 마음이 허전하다. 이건 도 무슨 질투인지...
그런데 나에게 들려오는 메시지 ‘과달루페에 가거라.’ 10년이나 별러서 만나고 싶어 하던 성모어머니를 만나렴. 기회가 온 것이다. ‘에뻬밀’이란 봉사단체 가족만나기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성모님의 배려라 생각하고 거침없이 동행했다. 20일간을 성모님과 함께 하자고...
하늘에 인사드리러 가는 마음으로 스무 시간의 비행을 거쳐 멕시코 과달루페에 도착했다. 세계3대 성모발현성지라서 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성당 지하실에 마련된 가난한 농부 ‘후안디에고’성인의 망토에 떠오른 성모화는 무빙워크처럼 움직이는 선로위에서 잠깐씩 기도하며 셔터를 움직였다. 내 눈과 성모님의 눈을 마주치며, 성모님의 거무스름한 피부와 검은 머리가 낯설지 않고 정겹다. ‘후안디에고’ 성인에게 처음 나타나 ‘내가 내 곁에 있다 ’ 너의 어머니인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 하신 말씀이다. - No estoy yo aqui que soy tu MADRE – 천막모양으로 된 대성당 중앙 외벽에 이렇게 써있다.
나도 우리 딸처럼 엄마에 대하 정을 그리워했다. 중학교 때부터 딸도 공부해야 한다고 서울로 보내져 엄마와 일찍 떨어져 살았다. 엄마는 딸로 태어나 아들인 외삼촌들보다 대학공부를 못한 한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자기 자식에게는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서울에 와서 첫발을 내디딘 곳이 용산성당 아래 언덕배기 마포다. 한옥이 즐비한곳에 이모와 삼촌과 함께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 때 용산성당 종소리는 나를 위로하는 벗이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가 우리 성당 가 볼까 ? 기도문을 12개나 외워야 한다는데 공부하며 그걸 외울 시간이 있을까? 딸만 일곱을 둔 집의 맏이인 친구는 자기엄마가 아들하나 낳게 해달라고 떡 해놓고 비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주님은 불러주시지 않았다. 때가 아니면 안 부르시는 주님의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데 깜박 졸았다. 그때 환시처럼 “ 내가 있지 않느냐, 아무 걱정하지마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 부터 지금까지 지극한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먹고 산다.
중앙아메리카인 멕시코는 90%이상이 종교가 가톨릭이다.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멕시코가 점령당하면서 가톨릭 사제들도 들어와 선교하게 되었는데 최초로 세레를 받은 인디언 사람들 중의 하나가 후안디에고 이었다.
그는 1531.12.9.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에 미사참례를 가고자 테페약 언덕을 넘고 있는데 갑자기 눈부신 빛 가운데 푸른 망토를 입은 여인이 나타나 후아디에고에게‘ 내 아들아’ 라고 부르며 말씀하셨다. ‘나는 지상의 모든 어머니요, 예수그리그도의 어머니, 자비의 어머니이다. 나는 그들의 탄원을 모두 알고 듣고 있다. 고통과슬픔을 위오하며 이 덕에 성당을 짓기 바란다고 주교에게 가서 전하라.
주교에게 전했으나 하찮게 흘려들어버리자 또 한 번 말씀 하신다 . 문전박대하며 주교는 증표를 가져오라고 하자 성모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후안디에고는 병중에 있던 숙부가 병자성사를 청하자 사제를 모시러 다른길을 선택했는데 그 길에도 성모님이 나타나 “지금 어디로 가느냐?” 하시며 숙부님은 건강이 회복될 거라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주교에게 언덕위의 장미꽃을 틸마에 담아가서 보여주라고 하셨다. 성모님 시키신 대로 언덕배기를 올라가니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닌데도 향기로운 장미꽃이 만발해 있었다. 틸마에 꽃을 가득 담아 주교관으로 가서 쏟아 놓는데 주교가 무릎을 꿇었다. 후안디에고가 꽃을 담아온 틸마에 성모님 형상이 그려져 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후안디에고의 성모님 형상이 그려진 틸마는 대 성당에 잘 보존되어 있다. 480년이 지났지만 삭지 않고 그대로 깨끗하다. 순례객들은 지금도 대성당에 가서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달루페(뱀의 머리를 짓밟는 이-콰틀라수페) 성모님, ‘파티마성모님이나 루르드성모님’처럼 지명이 아닌 것은 ‘과달루페의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서 유래하는데 후안디에고의 삼촌을 치유해주었을 때 성모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불렀달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성모님은 인디언어로 콰틀라수페라 하신 것 같은데 스페인어 과달루페외 비슷하여 그렇게 불린 것 같다고 했다.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은 없는지 자신을 뒤돌아보며 성모어머니께 후안디에고 성인처럼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과달루페성모님의 사진과 묵주를 사서 가슴속깊이 묻었다.
--2017 계간 <좋은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