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가 쓴 글을 읽다보니까
미소가 자꾸 지어져.
아주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던 꿈들이 떠올라서.
그 꿈들은...
때로는 엉뚱하기 그지 없고
때로는 현실과 동 떨어져 있기도 했고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지.
엉뚱한 꿈의 예를 하나 들자면
-지금 와서 생각하면야 터무니없고 우습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공주가 되고 싶었는지 몰라.
순정만화에 나오는 공주처럼
레이스가 달린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사뿐사뿐 정원을 거닐면서 장미향을 맡고 싶었어.
오후에는 호숫가 바로 옆에서 차를 마시고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멋진 왕자의 키스도 받고 말야. ㅎㅎㅎ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소원해도
내 몸에는 왕족의 피 따위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
아, 그 땐 얼마나 슬프던지!
그래도,
당시에는 꽤나 충격 먹고 실망도 엄청 했지만
그 나이 또래가 곧잘 그러듯
며칠 고민하다가 다른 근사한 꿈을 찾는 바람에
후유증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어.
다행이지? ㅎㅎㅎ
내가 최초로 현실적인 꿈을 가진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거야.
당시 뇌막염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있던 친구가 있는데
반 친구들이 몇명 모여 병문안을 가는 길에
심심풀이로 기계에서 점인지 적성검사인지 봐주는 걸 했거든.
오~~~!! 그! 런! 데!
나한테 맞는 직업이 신문기자, 교육자, 예술가 라는 거야.
때마침 옆에 있던 녀석들도
맞다, 너한테 딱이다, 라면서 괜히 부추기고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담임 선생님과 울 엄마도
"그래, 그것이 바로 너의 나아갈 길이다!" 라며 등을 뚜들겨주셨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지.
"그래, 결심했어!"
어쨌든 난 그 날
내게 정해진 운명이랄까, 그런걸 예감했던 거야.
그 후로는 이상하게 적성검사 할 때마다 결과가 비슷하게 나오더라.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냐구?
신문기자와 교육자, 예술가 중에 무엇이 되었냐면-
-정답은 셋다야.
셋다 맛보기로 해보았다는 게 더 정답이긴 하겠다만.
대학교 때 잠시 휴학하면서
라디오 방송국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었거든.
작가, 성우, 아나운서, 리포터도 하고 광고도 맹글고...
거의 1년동안 질리지 않게 여러가지 일을 했었어.
신문기자랑은 조금 다르겠지만 어쨌든 언론계열에서 일은 한거지.
선생이 되었으니 교육자의 꿈은 이룬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니까 예술가도 된거라면 된건가?
근데 언니는 말야, 피오나야,
꿈 하나를 이룰수록 자꾸 다른 꿈이 생긴다.
내가 잘 몰랐던 다른 분야도 접하게 되면 탐이 나고
내 분야 역시 자꾸만 넓히면서 깊이를 더 하고 싶은 거지.
단 하나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나 하나 잘 살아보겠다고 키우던 꿈들이
요즘엔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고, 지역사회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나아가 세계를 위하는 꿈으로 스케일이 엄청 커졌다는 거야.
뭐, 요즘이라고 해서
공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말야. ㅎㅎㅎ
(언니는 아직도 백화점에 쇼핑 갈 일이 생기면
파티에 입고 갈만한 화려한 드레스 앞을 반드시 서성거리게 돼.
돈 드는 일 아니니까 가끔은 입어보기도 하지. ㅎㅎㅎ)
각설하고, 피오나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진 마.
내가 몇년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적이 있거든.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접해보고 배운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잘 한다 싶은 건 하나도 없더란 말야.
건진 것도 없이 돈 낭비 시간 낭비만 했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뭘 해도 션찮고 불만만 느는 게 좌절 그 자체였지.
근데, 살다보니까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 자잘한 경험까지도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 다 쓰일 모가 있더라구.
그래서 인생은 하나의 커다란 퍼즐인가봐.
쓸데없고 무관한 거 같아도 작은 조각 하나하나마다
제 자리 차지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