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서울교통공사의 인권침해 논란, ‘개인 문제’아니다
공사의 인권경영 등 사회적 역할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가 구설수다. 그것도 그동안 사회적으로 강조해왔던 사회적 가치와 인권경영이라는 맥락에서의 논란이라는 것이 발생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3월 10일 세월호를 추모하는 해외 시민들의 모임인 416해외연대에서 요청한 의견광고에 대해 ‘정치적 주의 주장이 있어 서울교통공사의 중립성에 방해가 될 소지가 있다’는 심의결과를 확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조치는 지난 2018년 서울교통공사가 일방적으로 의견광고 자체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다시 허용하기로 결정한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것은 한 여대가 위치한 전철역에 페미니즘 내용이 담긴 광고에 대해 서울교통공사가 수정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교통공사는 아예 의견광고를 폐지하려고 했다가 논란 끝에 심의기준을 마련하는 선에서 봉합한 적이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상업공간이나 영리회사가 아닌 이상, 공공역사의 운영 원칙은 공공성에 초점이 맞춰 져야 한다. 당시만 당시에 이 논의가 흐지부지 끝난 탓에 눈쌀을 찌푸리는 상업광고는 버젓이 게시되는 반면 의견광고는 똑같이 비용을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하철역은 서울교통공사의 것이 아니다’
현행 서울교통공사의 광고심의절차를 보면, 상업광고의 경우에는 많은 경우 내부검토로 끝나지만 의견광고의 경우에는 광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외부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 명단이 공개된 적이 없고 심의 결과 역시 정기적으로 공개되는 것이 아니어서 깜깜이 심사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세월호 추모광고의 경우에는 2018년에 밝힌 ‘정치, 성차별, 혐오 주장을 담은 의견광고’, ‘정치인 이름, 얼굴, 이미지 등을 표출하거나 정치적 주의, 주장을 담은 광고’, ‘특정 이념, 종교, 관점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외모지상주의나 폭력을 조장하는 광고’ 등 이라는 기준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상에 공개된 부대사업정보 메뉴 내에 광고시설물 신청 안내에는 심의기준 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세월호 광고에 대해 내놓았다는 “정치적 주의 주장이 있어 공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방해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은 임의 기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공사의 <광고관리규정>에는 아예 의견광고의 심의절차나 이의신청 방식 그리고 심의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 규정이 아니라 엄연히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심의를 하면서 해당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건 적법하지도 않다(법원에서 판결을 하면서 근거가 되는 법령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럼에도 서울교통공사의 이런 행태가 가능한 것은 여전히 지하철이나 지하철역 등 부속시설을 지하철공사의 ‘사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지하철은 시민들의 자산들이다. 서울지하철은 그곳에 고용되어 있는 이들에 운영되고 유지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공공재정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논란에 대해 서울교통공사가 작년에 교체된 오세훈 시장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 아닌가, 라는 의혹을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이것은 정치적 주장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견광고에 대한 판단은 더 구체적이고 더 명확해야 한다. 일방적인 통보 수준으로는 안된다는 말이다.
‘개인의 일탈’이라는 장애인 시위 대응 문건
급기야 장애인 단체에서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에 대한 대응문건이 나왔다. 서울교통공사는 개인이 사내 통신망에 올린 글이라면서 애써 별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전혀 다르다. 해당 문서에 소속 팀이 명시되어 있고 양식화된 프레젠테이션 문서로 작성된 문건을 어떤 개인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내부 지시로 작성되었고 그 결과가 사내망에 올려서 직원들에게 비공식적인 대응지침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 무리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표현들은 작성자가 사적인 악의를 표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전체적인 뉘앙스는 오히려 서울교통공사 내에 조직문화처럼 되어 있는 구조화된, 혹은 관성화된 악의를 전제로 한 것에 가깝다. 즉 조직 내부에 장애인 시위에 대한 부정적 악의가 가득한 상태에서, 이를 전제로 한 대응방침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공공교통네트워크가 이번 일을 세월호 광고 게재 금지와 함께 보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문제들은 몇몇 개인이나 기구의 일탈이나 한계가 아니라 서울교통공사 자체의 공공성 위기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행 <광고관리규정>에는 서울교통공사가 416해외연대에 보냈다는 사유가 명시된 심의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의성의 문제다. 서울교통공사는 2019년 5월에 <인권경영 선언문>을 제정하고 발표하면서 인권경영을 선포했다. 해당 선언문의 첫 번째, 두 번째 항목은 ‘세계인권선언을 지지하고 국제기준 및 규범을 준수한다’, ‘국적, 성별, 인종, 장애,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인권경영 이행지침>에서는 이해관계자라는 개념으로 이용자들을 인권경영의 당사자로 포괄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있어도 실제 적용이 되지 않으면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서울교통공사, 인권진단 실시하라
기존의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가 통합된 후, 서울교통공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동일한 업무를 하는 기관을 구태여 경쟁을 시켜 역량을 내부에 소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역량을 시민들에게, 사회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낫다는 사회적 합의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의 서울교통공사가 과연 그런 기대에 충족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더구나 공기업이라면 가장 우선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나 공개성과 투명성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잇다른 사회적 논란은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심각한 ‘가치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여긴다. 그래서 서울교통공사 경영진이나 서울시 뿐만 아니라 내부구성원 차원에서도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지지가 없는 공기업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사회적 가치에 기반하지 않는 공공사업은 손쉽게 조정될 수 있다. 우선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시민과 연관된 심의기구에 대해서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광고심의위원회 명단 및 심의 결과 공개부터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관련 규정을 만들어서 공개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하철역사는 서울지하철공사의 사유물이 아니다. 스스로 사회적 활용이 어려 우면 아예 서울시로 내놓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으로 현재의 인권경영 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인권경영은 단순히 내부 경영원칙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핵심적인 이해관계자로서 시민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서울교통공사의 인권경영 체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구성원들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이 다분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기로 여겨야 한다. 지난 2월 지하철 서울역에는 노숙인을 직접적으로 명시하는 혐오 게시문이 게첨되었다. 즉 이 사안은 개인의 일탈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다시 인권경영의 원칙으로 돌아가길 요구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인권경영 원칙에서 정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조직 진단에 나서고 이를 통해서 개선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관련 단체들과 함께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해 서울교통공사가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끝]
2022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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