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잃은 까치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철거당한 까치집을 본다. 지을 때는 몇날 며칠이 걸렸겠지만 철거를 당한 데는 한순간이다. 한전 철거반이 작업차를 몰고 와 잇댄 장대에 붙인 쇠갈퀴를 이용해 찍어내리니 금방 우수수 쏟아진다. 그 작업은 도로변 전신주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전에 신문을 보니 한전에서는 봄철 까치의 번식기를 맞아 철거작업에 돌입했다더니 그 일환으로 작업이 이루어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보면 까치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녀석들은 높은 나무가지에도 집을 만들지만 전신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녀석들은 주로 변압기가 붙어있는 쪽을 선호한다. 그곳이 나뭇가지를 걸치기 쉽고 잘 무너져 내리기 않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어디에 집을 지어도 허술하게 짓는 법이 없지만 보다 견고하고 안전하게 짓기 위해 그런 곳을 택하는 것 같다. 한데, 한전 측에서 볼 때는 그게 합선과 화재발생의 원인이 되어 봄철만 되면 까치와의 사투를 벌인다. 이것을 보면 요즘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부르는 익조(益鳥)가 아니다. 해조(害鳥)로 낙인이 찍혀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까치집이 철거를 당해도 누구 한사람 짠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다. 이미 개체수가 포화상태를 이루어 농작물과 과수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어 눈 밖에 난 때문이다. 들리는 말로는 이것들이 전신주 위에 집을 지어 철거하는 인력도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늘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까치집 철거작업은 일사불란하게 행하여지고 있다. 먼저 작업차를 집이 지어진 전신주 가까이 붙이더니 한편에서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한편에서는 장대를 이용해 끌어낸다. 그러니 철거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야말로 까치입장에서 보면 한순간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그렇게 졸지에 강제 철거를 당한 까치를 본다. 짝꿍 두 마리가 가까운 땅바닥에서 서성대는 것을 보니 여간 딱해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동안 어렵게 집을 짓고 새끼를 치려 했는데 느닷없이 봉변을 당하니 그 심정이 어떠할까. 아마 말을 못해서 그렇지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 것 같다. 더구나 이 일은 무슨 천재지변도 아니지 않는가. 오직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내쫓김을 당한 것이 아닌가. 예고 없이 닥치는 날벼락은 누구에게나 깊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까. 까치부부의 행동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녀석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망연자실해 있고, 또 다른 녀석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어쩌지 못하겠는지 마냥 길바닥을 바장대고 있다. 평소에는 어디 그런 모습이던가. 힘찬 목소리로 귀청이 찢어질 듯 우짖고 힘찬 날갯짓을 하던 녀석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마음이 저렸다. 한전에서 나온 철거반이 도착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나는 볼 일이 있어 길을 나섰다가 그들과 마주쳤다. 철거는 예고 된 상황이었다. 전선위에다 집을 지었는데 그대로 두겠는가. 작업은 일사불란하게 이루워졌다. 그들은 장대 끄트머리에 달린 갈고리로 가차없이 까치집을 끌어 내렸다. 그러자 집은 맥없이 와르르 쏱아졌다. 그들은 뒤처리도 허술히 하지 않았다. 부서져 내린 나뭇가지들을 죄다 남김없이 수거했다. 아마도 다시는 물어다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 같았다. 말하자면 불법 건축물에 대한 자재 압수라고나 할까. 한데, 그 처사를가 보기에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장을 주었다면 허물어 버리면 됐지 그것까지 수거해 갈 건 또 무언가. 전신주는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 광경을 보러 구경나온 사람들도 제각기 흩어졌다. 둥지를 잃은 까치가 가까이 와서 보면 얼마나 실망할까. 나는 이전에도 둥지가 헐린 까치를 목격한 적이 있다. 직장 후정에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에다 까치가 집을 짓고 살았다. 누가 시끄럽다고 말했는지 어느 날 그 나무가 베어졌다. 그러자 졸지에 집을 잃은 까치가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럽게 우짖었다. 그것을 보고서 어느 직원이 말했다. “웬 까치가 저리 울어 쌀까.” “그야 뻔한 일이지. 내 집 내놓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그 말을 들으니 콧등이 시큰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은 TV에서 종종 대한다. 철거 위기에 내몰린 주민들이 집 앞에 발리케이트를 치고 철거반의 물대포에 맞서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면 전에 어느 동네를 방문했을 적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내쉬던 한숨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동네 옆으로 이웃 섬과 다리가 놓여 져서 앞으로 살기가 좋아지겠다고 했더니, “발전을 하면 뭐 한답니까. 우리는 그 바람에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가 됐는데.” 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동안 남의 땅 위에다 집을 짓고 살아왔는데 개발이 되면 땅값이 뛸 게 빤하고, 그러면 땅주인은 세를 더 올려 달라거나 나가라고 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동안 짧게는 십 년, 길게는 50년을 넘게 터 잡고 살아 왔는데, 그간 땅주인에게 수십 차례나 대지를 양도해 달라고 했는데도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는 그 말을 들으며 절실함을 몰랐는데, 오늘 까치집이 헐리는 것을 보니 새삼스레 남의 집, 남의 땅에 얹혀 사는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던 어떤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때는 1977년, 소위 광주무등산 타잔으로 알려진 박흥숙 사건이 일어났다. 시유지에 무허가집을 짓고 사는데 철거반이 들이닥친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서 열쇠 수리공을 하며 향학열에 불타던 천년인데 그러한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는 철거반이 들이닥치자 제발 불은 지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철거반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이 났다는 듯이 거침없이 다닥다닥 붙은 집에 불을 놓았다. 이웃집이 무참하게 타는 걸 보고 청년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쇠망치를 휘둘어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하는 사람들도 이 나라 사람인데 우리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울부짖었다. 그는 그때 이런 말도 남겼다고 한다. “남의 집 화장실이나 처마 밑에 살아본 사람이나 자신의 처지를 알 것이다”라고. 까치집이 무참히 철거되는 장면을 목격하니 여러 생각이 뒤엉켰다. 생각이 많아진 것은 목적을 달성했으면 적어도 퇴로는 열어주어야 하는데 그런 배려는 없다는 것이 무자비하게만 느껴져서인지 몰랐다.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