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과 떡에 대해 강의하거나 조용히 앉아 떡을 빚던 선명숙 명인(60·대한명인 제07149호 전통떡)은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전을 다녀간 후 가욋일이 생겼다. 언론 인터뷰가 그것으로 전국의 신문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8월 16일 교황의 음성 꽃동네 방문 때 두텁떡과 송편, 한과 등을 선물해 '교황 떡'으로 유명세를 탄 선 명인은 "교황님께서 떡이 너무 아름다워 먹기 아깝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면서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차와 식사를 대접하듯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어르신께 우리 고유의 음식인 떡과 한과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에게 자신이 만든 떡을 보여주며 교황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유 주교가 이에 흔쾌히 허락하며 선물하게 된 것이다. 유 주교는 떡 한 상자 정도의 가벼운 선물로 생각했는데 선 명인은 꼬박 한달 동안 재료를 준비하고 떡을 빚어 80인분을 선물해 천주교 대전교구를 깜짝 놀라게 했다.
▲ 선명숙 명인(60·대한명인 제07149호 전통떡)은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우리나라 전통 떡과 한과 등을 선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임금 생일 때 먹는 두텁떡, 송편, 한과 선물
그녀가 교황에게 선물한 떡은 궁중에서 임금 생일 때만 먹는다는 두텁떡과 송편, 한과 등인데 모양과 색깔을 살려 구절판에 곱게 담아 기품을 더했다. 선 명인이 두텁떡을 선택한 이유는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에 대한 존경과 예우의 마음이 담겨 있고 한과와 송편을 통해 우리 떡의 맛과 아름다움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특히 우리 나이로 79세의 고령인 교황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최고의 재료로 정성껏 만들었으며 당도와 떡의 찰기에도 신경 써 소화가 잘 되도록 했다.
교황의 건강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떡을 선물한 선 명인은 가톨릭이 아닌 불교신자다. 교황에게 떡을 선물했듯 몇 년 전에는 부처님께 대형 떡을 공양했다.
▲ 선명숙 명인이 교황에게 선물한 두텁떡. 두텁떡은 과거 임금이 생일 때 먹었다는 귀한 떡이다.
수덕사 대웅전 건립 700주년 대법회 때 7m짜리 축하 떡 보시
선 명인은 지난 2008년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대웅전 건립 700주년 기념 대법회 때 길이 7m짜리 축하 떡을 만들어 보시했다. 대웅전 건립 700주년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7일 동안 7명이 떡을 만들었으며 천연재료를 이용해 7가지의 색을 냈고 떡 위의 연꽃 문양 떡도 700송이로 맞춰 화제가 됐었다.
선 명인은 "당시 수덕사 주지이셨던 옹산 스님께서 제게 떡을 주문하셨는데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떡을 공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보시하게 됐다"며 "흰 설기 위에 연꽃문양을 만들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중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연꽃 만드는 법을 보여주셔서 700송이의 연꽃 장식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덕사에 7m짜리 대형 떡을 보시한 것과 이번 80명분의 '교황 떡'을 선물한 것도 모두 기부로 이뤄졌다.
선 명인은 "서구식 식생활과 먹을거리들로 인해 전통 떡과 우리 음식이 한동안 외면 받았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떡과 음식, 전통문화를 보급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 기부활동"이라고 설명했다.
▲ 선명숙 명인이 교황에게 선물한 약과와 강정류.
우리 음식과 떡을 가르치기만 하던 그녀가 '기품'이라는 떡 카페를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 명인은 "우연찮게 어떤 사람의 1980년대 찍은 돌 사진을 봤는데 큰 잔칫상에 우리 떡과 과일 등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는데 그 한 가운데를 서양 케이크가 차지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이는 한복 저고리에 바지를 입는 격으로 이때부터 떡 케이크를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했고 떡을 대중화해야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 떡 선물 후 전국에서 떡 배우겠다는 전화 늘어
선 명인은 교황 떡 선물 후 변화에 대해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우리 떡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이라고 했다.
그동안 알음알음 떡을 주문하고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교황 떡 선물 후 전국에서 떡 만드는 모습을 보러오고 싶다거나 가르쳐 달라는 연락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언론도 한 몫 했는데 맛과 영양이 좋은데다 아름다운 천연빛깔을 가진 우리 떡이 신문 방송을 통해 알려짐으로써 구식 음식 취급 받던 떡이 아름다운 떡으로 재탄생했다.
선 명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쁜 일은 피자·파스타 등 서양음식에 열광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전통 떡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떡이 웰빙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면서 "교황님께 떡을 선물한 게 우리 전통문화와 떡 문화 보급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 같아 흐뭇하다"고 했다.
20년 전 떡보다 빵을 먼저 배운 그녀가 우리 음식과 떡으로 돌아선 것도 바로 전통문화 보급 때문이다.
▲ 선명숙 명인이 교황에게 선물한 매화·별·호박·조개 송편류.
그녀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우리 전통음식을 만드는 것은 수행과 같은데 특히 떡은 재료준비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며 "정직한 재료와 올곧은 자세로 만든 내 떡을 먹은 사람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느냐"고 했다.
선 명인은 “아기 백일과 돌에 떡을 돌리고 이사한 후 이웃에게 팥 넣은 시루떡을 들고 가 인사하는 것처럼 ‘덕(德)에서 유래한 떡은 소통”이라며 “떡 한쪽이라도 이웃과 나눠 먹는 속에서 공경과 나눔의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만의 식객 25권 이바지 음식 부분에 등장할 만큼 우리 전통음식과 떡으로 유명한 선 명인은 한국음식업협회 우리맛연구회 대표로 우송대 외식조리학과와 대전시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선명숙 명인 :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297-11 기품 (042) 863-6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