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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이야기 찰스 디킨스 · 윌키 콜린스 공저
<사진: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 [1장]
본 이야기의 배경은 1857년 9월, 가을이다. 길고 더운 여름에 지치고 여름이 가져온 길고 뜨거운 일에도 지친 게으른 두 작가가 주인에게서 도망쳤다. 그들은(문학이라는 이름의) 아주 고매하신 부인에게 매인 몸이었다. 부인은 꽤 괜찮은 신용과 평판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서 그만큼 존경받지 못했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둘은 각자 작은 배낭만 소지한 채 기차에 나머지 짐을 미리 실어 보냈다. 이제 토마스는 그 기차를 타지 않은 선택을 끊임없이 후회하며 복잡한 브래드쇼 안내 책자를 보고 기차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면서 그 같은 속도로 달리는 기차를 탈 수 있는데 걷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고 생각했다. 시골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나?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기차 차창에서 보면 될 일이다. 여기보다 기차에서 보는 편이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누가 시골 풍경을 보고 싶어 한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대체 누가 걸어간단 말인가? 역시 아무도 없다. 도보 여행을 한다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은 절대 걷지 않았다. 돌아와서 도보 여행을 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걷지는 않았다.
기차는 엄청난 양의 세탁물을 처리할 때 나는 냄새와 거대한 놋쇠 차 탕관에서 나오는 것 같은 선명한 증기를 뿜어내면서 추수철의 시골을 헤치며 달렸다.
급행열차는 정차하지 않는 기차역을 하나둘씩 삼켰다. 정차하는 역에서는, 일제히 쏟아지는 포탄처럼 달려 들어가 꽃다발을 든 시골 사람 넷과 큰 여행 가방을 든 사업가 셋을 후딱 태운 뒤 다시 발사되듯 역을 떠났다.
또 다시 기차는, 아무 일도 없이 종만 울리고 커다란 말뚝 위에 높이 세운 멋진 까치발 신호기의 가로대가 공기를 가르며 신호를 보내는 역들을 지나갔다. 들판의 말과 양, 소 들은 천둥소리를 내며 달리는 유성이 아주 익숙한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축들은 들판에서 함께 껑충껑충 뛰어다녔고 돼지 한 무리가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어두워지며 석탄처럼 까매졌다가 흐릿해졌다가 지옥 같아졌다가 나아졌다가 안 좋아지고 다시 좋아졌다가 점점 험해지고 낭만적으로 변했다. 숲, 시내, 구릉지대, 계곡, 황야, 성당이 있는 도시, 요새, 황무지를 지났다. 비참하게 시커먼 집들과 검은 수로, 병든 검은 굴뚝들, 빛나는 예쁜 꽃이 있는 손질된 정원, 다 타버린 흉물스러운 제단들이 있는 황무지, 요정의 고리들이 있는 비옥한 목초지, 지난주에 서커스가 열렸던 자리에 커다랗고 둥근 자국이 남은, 침체된 도시 외곽의 임대되지 않은 지저분한 건축 부지도 지나쳤다. 기온도 변하고, 사투리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더 날카로워졌고 매너는 더 퉁명스러워졌고 눈은 더 예리하고 냉정해졌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해서 은색 레이스가 달린 런던 유니폼을 입은 말쑥한 승무원은 아직 셔츠 깃을 풀어 헤치지도 못했고, 반질반질한 작은 주머니에 든 전보를 반 이상 돌리지도, 신문을 읽지도 못했다.
토머스와 프렌시스는 땅에 묻힌 덴마크 왕보다 더 즐겁게 아침 공기를 마시며 오전 여덟시에 칼라일을 떠나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헤스켓을 향했다.
황야와 들판의 광경이 스펀지로 반쯤 닦아낸 흐릿한 수채화 같았다. 안개가 짙어지고 비가 굵어지고 있었다. 저 아래 나무들은 그 자리에 희미한 그림자만 남긴 채 잘 보이지 않았고, 들판의 경계선들도 모두 흐릿해져 갔다. 마차를 두고 온 외딴 농장은 멸망하는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의 거주지인 양 흐릿한 날씨 속에 유령같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모든 산에는 짜증이 나는 이상한 점이 하나있다. 아래에서 산을 볼 때는(산은 아래에서 봐야 한다) 정상이 하나뿐이지만, 여행객이 산을 오르려는 경솔한 짓을 할 때면 완벽하게 솟은 가짜 정상들이 나타난다. 캐록 산은 해발 460미터 정도의 작고 하찮은 산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몽블랑인 양 주제넘게 가짜 정상과 심지어 벼랑까지 갖추었다.
안개가 더 짙어지면 만에 하나 일행이 산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프랜시스는 무서운 경고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영원히 길을 가야 하는 방랑하는 유대인처럼 절대 찾지 못할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오르고 또 오른뒤 잠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고, 좁고 긴 평지를 걷다가 다시 또 오르막을 올랐다.
[2장]
토머스는 뒤에 달린 좌석에, 프랜시스와 여관 주인은 앞좌석에 앉은 뒤 마차를 몰아, 사방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비를 뚫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을 최대한 서둘렀다. 험한 황야 지역은, 아담 이전에 폭 적신 빨이 몇 킬로미터나 펼쳐저 있는 것처럼, 혹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 끓인 죽이 거대한 대접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오두막의 처마에서도, 땅을 구획하는 황량한 돌담에서도, 깨갱거리는 개들한테서도, 허술한 달개 지붕 아래의 짐마차들에서도, 횃대에 앉았거나 그 아랫니서 피신처를 찾고 있는 구슬픈 닭들에게서도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프랜시스도, 토머스도, 여관 주인도, 마차를 끄는 말도 빗물을 뚝뚝 흘렸다.
마차는 말이 머리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만큼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다가, 꼬리에 다리가 달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위로 올라가기도 하며 덜컹덜컹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프랜시스는 창으로 다가가서 위그턴을 관찰하며 자신이 본 것을 부상당한 친구에게 알려주었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그 작은 망루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토머스가 외쳤다. “여기는 여태 눈으로 목격한 곳 중 가장 음산한 데라고 생각 되네. 집들 지붕은 칙칙한 검은 색이고 전면은 더러우며 창문 테두리는 시커멓군. 다들 상중인 것처럼 말이야. 거리에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 때마다 온전한 빗줄기가 시장의 나무 가판대 쪽으로 발사되고 내쪽으로도 폭발한다네. 중앙에는 아주 커다란 가스등이 있지만, 내 비밀스러운 직감으로 보건대 오늘 밤 등은 켜지지 않을 걸세. 펌프도 하나 보이는데, 분출구 아래에 물을 채우려고 가져온 물동이를 놓을 수 있는 받침대가 있어. 어떤 사람이 와서 열심히 펌프질을 했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빈손으로 떠나는구먼.” 프랜시스가 말했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펌프와 받침대와 그 사람, 죄다 상중인 집들과 비 말고 무엇이 더 보이는가?” 토머스가 외쳤다. “앞쪽에 리넨 포목상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곳 있네. 여기의 오른쪽 이웃집도 리넨 포목상이고 왼쪽으로도 길모퉁이 아래로 다섯 집이 더 있네. 짧은 거리에 열한 곳의 살인적인 포목상이라니, 각자 서로의 목을 죄는 셈이지. 포목상 중 한 곳의 조그만 이층에 ”은행“ 이라는 멋진 간판이 있어.” 프랜시스가 말했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그 망루로 무엇이 더 보이는가? 서로의 목을 죄는 열한 곳의 살인적 포목상과 조그만 이층에 있는 ‘은행’이라는 멋진 간판, 펌프와 받침대와 그 사람, 상중인 집들과 비 말고 말일세.” 토머스가 외쳤다. “기독교 기록 보관소도 있구먼, 또 다시 어두은 증기 사이러, 육중하게 나타난 스펄전 목사를 본 것 같네. 컬러로........” “ 프랜시스 형제여! 그러한.......”
다음날 여정이 끝나갈 무렵 토마스의 발목은 엄청나게 부었고 염증이 생겨 있었다. 조수의 외모는 아주 놀라웠다. 적어도 쉰 두 살은 되어 보였기 때문에 프랜시스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늙었다. 하지만 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수는 깜짝 놀랄 만큼 대단히 창백한 사란이었다. 지나치게 창백해서, 처음에는 커다란 검은 눈이나 쑥 들어간 볼, 길고 무거운 진한 회색빛 머리카락, 힘 없는 손이나 쇠약한 모습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에게 색깔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조수가 얼굴을 돌리자 프랜시스는 석상이 돌아보는 것 같아 흠칫 놀랐다.
조수는 방문객의 존재를 알아채고 뒤편의 벽 그림자 속으로 더 멀리 물러났다. 하지만 너무나 창백했기에 얼굴이 어두운 벽 앞에서 뚜렷하게 도드라져서 정말로 숨을 수는 없었다.
그 눈빛에는 애정을 가진 아버지가 고통 받는 아들을 바라보는 듯 한 감정이 가득했다.
외로운 존재와 오래된 비밀은 시간이 지나면 아주 무거워진답니다.
내가 이제껏 마주친 이 중 가장 조용한 사람이오. 판사처럼 냉철하고, 시계태엽처럼 규칙적인 습관을 가졌지.
이리와 보세요. 아서가 숨을 죽인 채 속삭였습니다. 이리와 보라고요. 하나님 맙소사! 이 남자는 자는 게 아니에요 - 죽었어요! “생각보다 더 빨리 알아차렸구려.” 여관 주인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맞아, 그는 죽었소. 정말이오. 오늘 다섯 시에 죽었지. 어떻게 죽은 겁니까? 이 사람 누구예요? 뻔뻔하고 냉정한 대답에 충격을 받은 아서가 물었습니다. 그게 누구냐면 말이오. 여관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당신보다 더 아는 게 없소. 그의 책과 편지, 소지품들이 있지만 모두 갈색 종이 꾸러미로 봉해 놓았다오. 검시관의 조사가 내일이나 모래에 열릴 거라서 말이지. 이 손님이 여기 온지는 일주일 되었고 방 값은 충분히 냈소. 아픈 것처럼 대부분 실내에서 지냈지. 내 딸이 오늘 다섯 시에 차를 가져다 줬는데, 그가 차를 따르다가 쓰러졌다오. 기절인지 발작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아무튼 그랬소. 우리는 그를 깨우지 못했소.
아서는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소리칠 수도 없었고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커튼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볼 각오를 했는지 아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죽는 날까지 기억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침대로 가서 커튼 안을 들여다보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지요. 남자가 움직인 것이었습니다. 팔 하나가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베개 위의 얼굴이 조금 돌아갔고, 눈꺼풀도 더 벌어졌습니다. 이목구비 중 한 군데와 자세에 변화가 있었지만, 얼굴은 무섭고 이상할 정도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얼굴에 죽은 이의 창백함과 조용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서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문으로 달려가 소리쳤습니다. 여관 주인이 벤이라고 불렀던 남자가 제일 먼저 계단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서는 그에게 세 단어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가장 가까운 의사를 부르러 보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도 당시 돈캐스터에서 의사 일을 하던 친구 집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런던으로 간 사이 환자들을 대신 봐주고 있었지요. 그래서 당분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사는 저였습니다. 오후에 그 낯선 손님이 아팠을 때 여관에서 사람들이 의사를 부르러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에 없었지요. 다른 곳에서 의사가 필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투 롭니스에서 온 사람이 야간 벨을 올렸을 때 저는 막 잠자리에 들려는 참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자를 쓰고 각성제 한 두 변을 챙겨서 여관으로 달려갔습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자는, 검시관의 조사를 기다리며 눕혀져 있던 침대에서 살아나 말을 했습니다.
남자는 파리에서 왔으며 그곳 병원에 소속되어 있었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최근에 영국으로 돌아와 에든버러로 가는 길이였다더군요. 여행 중에 병을 얻게 되어, 휴식을 취하고 회복하기 위해 돈캐스터에 잠깐 머무른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이름이나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자네에게 도움을 더 줄 수 있길 바라네. 내가 집에 도착하는 대로 아버지께 말씀 드리지. 아서가 말했습니다. 아버님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도 당신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시겠죠? 남자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아서가 웃으며 답했습니다. 거기에 놀랄 일이 있나? 자네 아버님은 그러시지 않……. 남자가 갑자기 아서의 손을 놓고 그의 얼굴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아버님께 제 아버지도 되어 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가족의 이름으로 저를 도와주십시오. 남자가 또다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부인은 일 년을 기다린 후에 아서와 결혼했습니다. 저는 약혼자와 언제부터 소원해졌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첫사랑에게서 연락이 끊어진 시기가 제가 더 투 로빈스 여관에서 신기한 환자를 만났을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대화를 나누고 이 주 뒤에 그녀는 죽었고, 얼마 안 있어 아서는 재혼했습니다.
육 칠 년 전, 아까 이 방에서 소개해 드린 남자가 제 조수로 일하기 위해 훌륭한 추천서를 들고 왔습니다. 그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라 친구 같았습니다.
저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지만 그는 저를 보고 전혀 놀란 듯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에 저는 다 투 로빈스에서 만난 환자가 홀리데이 씨의 친자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 남자가 아서의 첫 번째 부인이랑 약혼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론만이, 그러길 원한다면 이 두 가지 의혹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아직도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지금 론의 머리는 검지 않고, 눈도 제가 기억하는, 꿰뚫어 보는 듯했던 그 눈보다 흐릿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만났던 그 이름 없는 의학도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 남자와 아주 닮았어요. 때로 제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 자고 있는 론을 깨울 때면 의식을 차리는 그 모습이, 잊지 못할 그날 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던 돈 캐스터의 그 남자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3장]
스패터를 경유해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까지 이르는 동안 부상당한 토머스는 마차 안과 밖으로, 침대 속과 밖타으로, 숙박 휴게소 안과 밖으로, 옮겨지고 끌어올려지고 밀어 넣어지고 쿡쿡 찔리고 쑤셔 넣어졌다.
이제 막 토머스는 몸을 구부정하게 굽힌 채 두꺼운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었다.
눈을 크게 뜬 창문 여러 개가 도움을 요청하듯이 스코틀랜드 쪽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엘론비의 석양은 멋졌다. 해질 녘엔 낮고 편평한 해변의 물웅덩이와 마른 땅들이 각양각색의 광을 낸 기다란 은괴와 금괴로 변신했다.
기차역에 자리를 잡은 토머스와 프랜시스는 이곳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4장]
랭카스터 여관에서 프랜시스는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창밖을 보면서 자신이 점점 근면해지고 있다는 착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밖에 나갔을 때 정신병원도 둘러봤어. 프랜시스가 말했다.
엄청난 곳이었네. 병실도 훌륭하고 시설도 잘되어 있고 간병인들도 아주 친절하더군. 온통 대단한 곳이었어. 프랜시스가 말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나?
일반적인 것들이지. 말라죽은 나무들이 모인 커다란 숲 같은 남자와 여자들, 절망적인 얼굴들이 늘어선 끝없는 거리, 어떤 목적이라도 가지고 실제로 뭉칠 수 있는 힘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 서로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힘을 모두 잃었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인간들의 사회 말일세. 프랜시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복도에서 말이지, 토머스. 그 복도는 윈저 성에 이르는 긴 진입로만큼 길어 보였는데. 프랜시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마 그보다는 짧았을 게야. 토머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환자들이 다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을 그 복도에 한 남자가 있었네. 불쌍하고 작고 거무스름한 턱을 가진 야윈 남자였어. 이마엔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고,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지. 바닥 매트 위에 바싹 엎드려서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매트의 섬유 가닥을 골라내고 있더군. 복도 끝에 난 커다란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고, 양쪽으로 늘어선 잠자는 작은 방들의 열린 문과 시야에 보이지 않는 창문들이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의 조각들이 그 광경위에 교차되었지. 그 한가운데쯤 아치 아래에서 그 불쌍하고 작고 거무스름한 턱을 가진 야윈 남자가 기분 좋은 날씨나 고독, 다가오는 발소리 등은 개의치 않은채 매트를 열심히 보고 있었네. 우리가 다가갔을 때 나를 안내해 준 사람이 말했어. 거기서 뭐하나? 남자가 우리를 올려다보며 매트를 가리켰지 나 같으면 그러지 않겠네. 나를 안내해준 사람이 말했어. 내가 자네라면 가서 책을 읽거나, 피곤하다면 누워 있겠네. 하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멍하게 대답했어. 네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전…….전 가서 책을 읽을게요. 그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작은 방들 중 하나로 사라졌어. 우리가 몇 걸음 채 가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을 때, 남자는 이미 다시 나와 매트를 관찰하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섬유 가닥을 짚어가고 있더군. 나는 멈춰 서서 그를 보았어. 위아래, 안팎으로 꼬인 저 섬유 가닥이 넓은 세상에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를 안내하는 작은 틈새의 빛만 남은 채 모든 지적 능력은 어두워진 거라고 말이야. 이 가닥은 이쪽 방향으로 꼬여 있네. 여기로 가서 밑으로 나가고 저기로 나오는군. 여기서부터, 지금 내가 손가락으로 짚고 있는 오른쪽까지 이어져 있어. 섬유 가닥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얽혀서 이 매트가 되었고, 여기 있는 거구나. 그러자 나는, 남자가 매트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그가 거기 오게 된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려 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렇게 이상하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지 궁금했네. 신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나는 우리가 어떻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매트 조각을 맹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매트의 패턴에서 어떤 혼란과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생각했지. 그러고 나니 그 거무스름한 턱을 가진 야윈 남자에게 슬픈 동질감이 느껴졌어. 나는 그곳을 떠났네.
■그녀는 금발에 눈이 큰 어여쁜 아가씨였습니다. 개성이나 의지는 없었고, 연약하며 잘 속고 무능하고 무력한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지요. 어머니와는 달랐습니다. 아가씨의 성격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아가씨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자 - 그가 죽은 건 순전히 무기력함 때문이지 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지키려고 노력했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한때 약간 친분이 있던 어떤 남자와 다시 알고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어머니는 그 남자를 무시하고 금발에 눈이 크며 돈이 많았던 사람(즉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을 택했습니다. 남자는 돈이면 그 사실을 눈감아 줄 수 있었고, 돈으로 보상받길 바랐지요. 그래서 그 남자는 그녀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다시 여자에게 구애하며 비위를 맞추었고 그녀의 변덕을 감수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거나 짜낼 수 있는 모든 변덕을 남자에게 쏟아냈습니다. 남자는 참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면 참을수록 더더욱 돈으로 보상받길 원했고, 돈을 얻어내기로 더 굳게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남자가 돈을 얻어내기 전에 여자가 그로부터 달아났습니다. 여자는 거만한 태도로 얼어붙어서는 다시는 녹지 않았지요. 어느 날 밤 손을 머리에 올리고 비명을 내 지른뒤 뻣뻣해져서, 그 자세로 몇 시간 동안 누워 있다가 죽은 겁니다. 그리고 아직 남자는 여자로부터 돈으로 보상받지 못했지요. 망할 년! 한 푼도 안 주다니. 두 번째로 여자를 쫓아다니는 동안 남자는 그녀를 미워했고, 앙갚음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남자는 유언장에 여자의 서명을 가짜로 써넣어 여자가 남긴 모든 재산이(당시 열 한 살이었던) 그녀의 딸에게 상속되도록 했습니다. 재산은 딸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자신은 그 딸의 후견인으로 지명되도록 했지요. 남자는 죽은 여자가 누워 있는 침대의 베개 밑으로 유언장을 밀어 넣으며, 들리지 않는 여자의 귀에 몸을 숙이고 속삭였습니다. “콧대 높은 부인, 난 오래전부터 살아 있든 죽었든 당신에게서 돈으로 보상을 받아 내리라 결심하고 있었지.” 그래서 이제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남자, 그리고 후에 신부가 되는, 금발에 눈이 크며 어리석고 어여쁜 딸. 남자는 소녀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비밀스럽고 어둡고 억압적인 고택에서 주의 깊고 비양심적인 여자에게 소녀를 가르치게 했습니다. “훌륭한 숙녀분, 잘 가르치고 길러야 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일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여자는 소녀를 돌보는 일을 수락했습니다. 여자도 돈으로 보상받길 원했고 돈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녀는 남자를 두려워하며 그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채 자라났습니다. 소녀는 처음부터 남자를 미래의 남편 - 반드시 결혼할 남자, 그녀에게 그리운 운명,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정해진 사실 -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이 불쌍하고 어리석은 소녀는 쉽게 그들의 손에서 놀아났고, 그들이 심어 주는 생각을 받아들였지요.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졌습니다. 그녀의 일부가 되었지요. 소녀에게 심어진 생각은 그녀와 분리될 수 없었으며 생명을 앗아가야만 떼어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암울한 정원이 있는 그 어두운 저택에서 11년 동안 살았습니다. 남자는 소녀에게 다가가는 빛과 바람을 시기했고 그들은 그녀를 집 안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남자는 넓은 굴뚝을 막고 작은 창문을 가렸습니다. 줄기가 억센 담쟁이덩굴이 집 전면을 뒤덮도록, 붉은 담을 두른 정원의 손질하지 않은 과일나무들 아래에는 이끼가 쌓이도록, 녹황색 산책로에는 잡초가 무성해지도록 두었습니다. 남자는 슬프고 황량한 이미지로 아가씨를 에워쌌습니다. 그녀가 집과, 집에 얽힌 이야기들을 두려워하도록 만든 다음,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핑계로 고독하게 집에 남겨 두거나 어둠 속에서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남자는 아가씨의 마음이 잔뜩 약해지고 공포에 질리면, 숨어서 지켜보던 장소에서 나와서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 척 나타났지요.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아가씨의 삶이 그녀에게 알려주었듯이, 남자는 강압하고 안심시키고 속박하고 풀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됨으로써 그녀의 나약함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가씨가 스물한 살이 되고 이십일 째인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그 암울한 집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좀 모자라고 겁먹고 고분고분한, 혼인한 지 삼 주 된 신부였지요. 그 전에 남자는 여자 가정교사를 해고했습니다 ― 해야 할 남은 일들은 혼자 하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남자와 신부는 비 오는 날 밤 그녀가 오랫동안 준비되어 오던 현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현관에서는 비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아가씨는 문간에서 남자에게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오, 여보! 제 임종을 알리는 시계가 똑딱거리고 있어요!” “그래! 그래서 뭐?” 남자가 대꾸했습니다. “여보! 제 말을 받아 주고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시기만 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건 모두 할게요!” 아가씨가 남자에게 대답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와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은 그 불쌍하고 어리석은 아가씨의 끊임없는 노래였습니다. 그녀는 미워할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는 경멸 외에는 아가씨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녀는 오랜 방해물이었고 남자는 오랫동안 지쳐 있었습니다. 일은 거의 끝이 보였고 반드시 끝까지 해야만 했지요. “어리석은 것, 위층으로 올라가!” 남자가 말했습니다. 아가씨는 잽싸게 그 말에 따르며 중얼거렸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할게요!” 남자가 커다란 문의 무거운 잠금장치 때문에 약간 지체한 뒤(일하는 사람들을 매일 출퇴근하게 했기 때문에 집에는 그들만 있었습니다) 신부의 방으로 들어가니, 그녀는 가장 구석진 곳으로 물러나 장식 벽을 뚫고 들어갈 듯이 거기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신부의 금발은 온통 얼굴 위로 헝클어졌고, 커다란 눈은 막연한 공포에 질린 채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뭘 두려워하는 거지? 이리 와서 내 곁에 앉아.” “원하시는 대로 뭐든 할게요! 잘못했어요, 여보,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평소처럼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엘렘, 내일 반드시 네 손으로 직접 써야 할 글이 있어. 네가 부지런히 글을 쓰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을 거야. 글을 다 쓰고 오자까지 모두 고치고 나면 집 주변에 있는 사람 중 아무나 둘을 불러와 그들 앞에서 글에 서명을 해. 그리고 그것을 안전하게 품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내일 ㅂ마 내가 다시 여기에 앉으면 건네 줘.” “시키는 대로 모두 할게요. 정말 신중하게요. 원하시는 건 모두 할 거예요.” “그럼 떨지 마.” “최선을 다해 떨지 않을게요. 절 용서하기만 하신 다면요!” 다음 날, 아가씨는 책상에 앉아 들은 대로 했습니다. 남자는 자주 방을 들락거리며 서 지켜보았습니다. 볼 때마다 그녀는 천천히 힘들게 글을 쓰고 있었지요. 글의 내용에 신경 쓰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기계적인 모습으로 베끼는 말들을 혼잣말로 반복하면서 일을 완수했습니다. 남자는 그녀가 모든 면에서 지시 받은 대로 따르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어제와 같이 신부의 방에 다시 둘만 남았을 때, 남자는 난로 곁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았고,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던 아가씨는 쭈뼛쭈뼛 그에가 다가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남자의 손에 건네 주었습니다. 그건 아가씨가 죽으면 모든 재산이 남자에게 돌아간다는 글이었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응시할 수 있도록 얼굴을 마주한 채 자신의 앞에 세웠습니다. 그러고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단어를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고 딱 이대로 물었습니다. 아가씨의 흰 드레스 가슴팍에 잉크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더 희게 보였고 눈도 더 커 보였지요. 손에도 잉크가 묻어 있었고, 남자 앞에서 그녀는 초조하게 그 손으로 흰 치마가 구깃구깃해지도록 꽉 쥐었습니다. 남자는 아가씨의 팔을 잡고 한층 더 가까이서 빤히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드럼, 이제 죽어! 너와는 끝이야.” 그녀는 움츠러들며 낮고 억눌린 비명을 내뱉었습니다. “내가 너를 죽이진 않을 거야. 너 때문에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 죽어!” 남자는 매일 밤낮, 음울한 신부의 방에서 여자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죽어!” 남자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가씨는 손에 머리를 파묻고 흔들다가 크고 멍한 눈을 들어 남자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팔짱을 끼고 이마를 찌푸린 채 의자에 앉자 있는 엄한 모습의 남자를 볼 때마다 그 말을 읽어낼 수 있었지요. “죽어!” 지쳐서 잠이 들면 속삭이는 소리에 몸서리치며 깨어났습니다. “죽어!”전처럼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죽어!” 긴 밤을 새며 시달린 후, 떠오르는 태양빛이 어둑한 방 안에 타올랐을 때 그녀는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 날이 밝았는데 안 죽었어? 죽어! “ 텅 빈 저택에 틀어 박혀서 모든 사람과의 접촉을 끊고 쉬지도 않고 그렇게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가 죽든지 그녀가 죽든지 반드시 둘 중 하나로 끝날 터였습니다. 이 점을 잘 아주 잘 아는 남자는 그녀의 연약함에 맞서 자신의 힘을 집중시켰습니다. 남자는 시커멓게 망이 들도록 몇 시간이고 아가씨의 팔을 붙들고 있었고, 그녀에게 죽으라고 명령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바람이 부는 어느 새벽에 싸움이 끝났습니다. 남자는 시간이 네 시 반쯤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태엽 감는 걸 잊어서 시계가 멈췄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 밤에 아가씨는 갑자기 크게 소리 지르며 - 그녀가 처음으로 터 트리 감정이었습니다 - 남자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남자는 손으로 여자의 입을 막아야 했지요. 그 후로 그녀는 벽 구석에 조용히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두고 의자로 돌아가 팔짱을 끼고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잿빛 새벽, 희미한 빛 속에서, 남자는 그 새벽빛보다 더 창백한 그녀가 몸을 바닥 위로 질질 끌면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가씨는 엉망이 된 금발과 희 드레스를 늘어뜨리고 눈이 풀린 채 머뭇거리는 굽은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다가왔습니다. “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여보! 제발 살아도 된다고 말해 주세요!” “죽어!” “확실히 결심하신 건가요? 저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나요?” “죽어!” 그녀의 커다란 눈이 놀라움과 공포로 크게 벌어졌습니다. 놀라움과 ㄱ오포는 비난으로 변했고 비난은 텅 빈 공허로 변했습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처음에 남자는 끝난 것인지 그다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들어 침대에 뉘었을 때 아침 햇살이 머리카락에 보석처럼 걸려 있는 것을 보고 - 그녀를 내려다보자 머리카락 사이에서 점점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가 보였습니다 ― 끝났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그녀는 땅에 묻혔습니다. 이제 모녀가 모두 세상을 떠났고, 남자는 스스로에게 잘 보상했지요. 남자는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중략>
「중략: 신부를 죽게 한 사내는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림직 했다. 집 현관 근처에 나무가 있었고 가지는 신부의 방 창가로 뻗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사내는 놀랐다. 그리고 한 청년이 나무위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청년은 신부를 사모했으며, 그동안 나무 위에 올라 사내가 신부에게 저지른 모든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사내는 들고 있던 낫으로 그 청년의 머리를 둘로 갈랐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묻었다. 사내는 그 집을 떠나고 싶어도 누군가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을 때 땅속에 묻힌 시신이 발견되는 것이 두려워 떠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사내는 다시 온갖 못된 짓으로 돈을 벌었고 평정을 되찾은 듯 했다. 그런데 어느날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나무는 둘로 쪼개졌다(흡사 청년의 머리를 낫으로 가른 것 처럼)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사내는 그 일이 또 부담스러웠다. 마침내 과학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결국 과학자들은 나무 아래에 묻인 유골을 발견했다. 사내는 모든 범죄가 들통 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스토리. 편집자」
[5장]
어느 일요일 늦은 저녁 기차를 타려는 많은 승객 틈에서 토머스와 프랜시스는 제조업의 심장인 요크셔 깊숙이 자리한(연기와 재로 모조 불쏘시개처럼 변화된) 한 작고 형편없는 역 플랫홈에 기차표를 냈다. 기차가 제조업의 심장을 관통해 달려가는 동안, 습하고 어두컴컴한 일요일 밤에 기차 안에서 바라본 그곳은 신비에 싸여 있었다. 기차는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엔진이 씩씩거리는 소리, 성스러운 것에서 세속적인 것까지, 그러니까 찬송가에서부터<양키 걸 매리 앤> 까지 기가 막히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수백명의 삼등칸 승객들의 중창 소리에 맞춰 달렸다. 모든 외딴 역 근방에는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도시도 보이지 않았고 마을도 보이지 않았으며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무리 사람들이 노래하면서 내리면 또 한 무리가 노래하면서 탔다. 새로 올라탄 사람들은 승객들이 부르고 있는 찬송가와 유행가를 따라 불렀다.
검게 젖은 도시들은 하나 같이 방금 화재를 진압한 곳처럼 보였다.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싸움이 났고, 당나귀 소리를 내는 남자는 경마 순번표를 팔았다.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경마를 보러 갔지만 수요일만큼 거대한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일단 말의 외모가 싫네. 말에게 적용되는 미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동의할 수 없어. 코가 너무 길다고 생각해. 게다가 이마는 낮고, 다리는(마차를 끄는 말은 예외지만)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얇고, 그리고 말이 얼마나 큰 동물인지 생각해보면 그 연약한 체질을 경멸할 만도 하지. 창조물 중 가장 병약한 생물 아닌가? 어떤 아이가 말처럼 쉽게 감기에 걸리는가? 말은 월등하게 튼튼해 보여도 내가 발목을 삐는 것만큼 쉽게 발목을 삐지 않는가? 게다가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얼마나 한심한 짐승인지! 어떤 우아한 숙녀도 말보다 더 끊임없이 시중을 들게 하지 않아. 다른 동물들은 스스로 몸단장을 할 수 있지만 말은 반드시 손질을 해 주어야 하네. 자네는 말의 털을 인위적으로 윤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할 테지. 윤내기라! 내 집에 와서 내 고양이를 보게. 이 똑똑한 고양이는 스스로 자기 털을 손질할 수 있어. 자네 개를 보게! 그 지적인 동물이 어떻게 자기 이빨로 스스로를 빗질하는지 보라고. 또 말은 얼마나 바보 같은지! 말은 허약하고 신경이 예민한 바보라네! 말은 길에 떨어진 흰종이 한 장에도 그게 사자인 것처럼 깜짝 놀랄걸세.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들었을 때는 도망가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하고, 자네는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과찬하는 이 동물의 감각과 용기에 대한 이 두 가지 흔한 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머리를 굴려 쓸데없이 말해보기로 작정한다면 이 백가지 예는 더 댈 수 있어.
토요일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난 뒤 창밖 풍경은 완전히 변했다.
지금 이 유유자적한 여행이 느긋한 바람에 실려 어디로 향할 까? 언젠가 이 여행의 마지막이 사라지고 잊히는 곳은 어디일까? 쓸데없는 질문과 게으른 생각을 하며 토머스와 프랜시스는 적절한 인사를 건네고, 이것으로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를 마친다. [Review]
친구 사이 두 사람이 북 잉글랜드 지역을 여행하며 겪은 풍물과 자연풍경 그리고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와 사건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담으로 엮은 책이다. 두 사람의 인물에서 작가임을 내세워 일반인들과 다른 독특한 대화방식 그리고 성격이 한 사람은 게으르고 태평스러운 반면 또한 사람은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흥미롭다. 사전에 계획된 장소가 아닌 자유로운 여행, 그야 말로 유유자적하며 구태여 소설적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연기에 그을린 기관차, 회색빛 하늘 아래에 펼쳐진 풍경과 거리에 팽개쳐진 불행한 인간들의 군상들 묘사는 당대 최고 작가의 필치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가축들은 들판에서 함께 껑충껑충 뛰어다녔고 돼지 한 무리가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어두워지며 석탄처럼 까매졌다가 흐릿해졌다가 지옥 같아졌다가 나아졌다가 안 좋아지고 다시 좋아졌다가 점점 험해지고 낭만적으로 변했다. 숲, 시내, 구릉지대, 계곡, 황야, 성당이 있는 도시, 요새, 황무지를 지났다."
"비참하게 시커먼 집들과 검은 수로, 병든 검은 굴뚝들, 빛나는 예쁜 꽃이 있는 손질된 정원, 다 타버린 흉물스러운 제단들이 있는 황무지, 요정의 고리들이 있는 비옥한 목초지, 지난주에 서커스가 열렸던 자리에 커다랗고 둥근 자국이 남은, 침체된 도시 외곽의 임대되지 않은 지저분한 건축 부지"
"황야와 들판의 광경이 스펀지로 반쯤 닦아낸 흐릿한 수채화 같았다. 안개가 짙어지고 비가 굵어지고 있었다. 저 아래 나무들은 그 자리에 희미한 그림자만 남긴 채 잘 보이지 않았고, 들판의 경계선들도 모두 흐릿해져 갔다. 마차를 두고 온 외딴 농장은 멸망하는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의 거주지인 양 흐릿한 날씨 속에 유령같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첫 번째 여행지에서 여관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등산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게으른 친구 토마스가 발을 크게 다쳤다. 그로 인해 게으른 천성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 어디를 가나 그는 편안히 누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친구는 그가 본 것을 말해준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펌프와 받침대와 그 사람, 죄다 상중인 집들과 비 말고 무엇이 더 보이는가?” 토머스가 외쳤다. “앞쪽에 리넨 포목상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곳 있네. 여기의 오른쪽 이웃집도 리넨 포목상이고 왼쪽으로도 길모퉁이 아래로 다섯 집이 더 있네. 책 속에는 풍경묘사 외에 만난 사람에게서 들은 두 개의 스토리가 들어있다.
친구의 발을 치료하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들은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 죽었다가 살아난 후 지적장애가 되어 바닥에 깔린 양탄자의 무늬에 그려진 미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하는 사내에게서 독자는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름대로 상상해본다.
그들은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다. 돈 때문에 처음 사내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여인은 남편이 일찍 죽게 되자 열한 살 어린 딸과 홀로 남았다. 상처를 받았던 처음 사내가 그녀의 유산을 노리고 다시 접근하자 그녀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다시 떠났고, 어느 날 유언도 없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남자는 거짓으로 유언장을 만들어 그녀의 재산을 열한 살 된 딸에게 상속하게 만들고 자신은 후견인이 되었다.
그는 다시 여자에게 구애하며 비위를 맞추었고 그녀의 변덕을 감수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거나 짜낼 수 있는 모든 변덕을 남자에게 쏟아냈습니다. 남자는 참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면 참을수록 더더욱 돈으로 보상받길 원했고, 돈을 얻어내기로 더 굳게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남자가 돈을 얻어내기 전에 여자가 그로부터 달아났습니다.
사내는 그 후 11년 동안 어린 딸을 은둔 자로 살게 가두고 별도의 가정교사를 두고 교육을 받게 한 후 결국 결혼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타고난 무능력으로 남자에 의해 억압된 삶을 살며 끊임없이 사내에게 의미 없는 용서를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그녀에게 자필로 모든 재산을 남자에게 넘기겠다고 쓰게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스스로 죽음을 강요했다. 불행한 여인은 결국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사내가 자기 뜻을 이루었다는 생각도 잠시, 그동안 그녀에게 닥친 고통의 시간을 몰래 훔쳐본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하자 사내는 그를 살해했고 나무 밑에 묻었다. 사내는 그 돈으로 온갖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었지만, 결국 모든 것이 탄로 나서 법의 심판을 받고 죽어갔다.
찰스 디킨스는 여행을 떠날 즈음인 1857년, 아내 캐서린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그는 18세의 명랑한 여배우 ‘엘렌 터넌’을 사랑하게 되었다. 당시 디킨스는 45세였다. 캐서린은 어느 날 런던 보석상으로부터 배달된 포장 상자에 들어있던 물건이 디킨스가 엘렌에게 주려는 선물임을 알게 되었고 둘 사이의 22년 결혼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엘렌’과의 관계는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디킨스는 엘렌에게 계속해서 생활비를 보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여행한 장소 ‘돈캐스터’에 간 이유에 대해서도 그곳에서 열린 엘렌의 공연을 보러 간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그들이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신문이 그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위대한 유산>에서의 은둔 여자‘헤비샴’의 삶과 다르긴 하지만 남녀 간의 배신에서 오는 불행의 묘사가 부분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와 닮은 점이 있다.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시드니 칼튼’이 사랑하는 여인 ‘루시 마네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랑을 ‘찰스 디킨스’가 ‘엘렌’을 위한 자신의 사랑 표현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책의 말미에 마지막으로 찾은 도시 에서 본 경마장의 풍경도 재미있다. 특히 경마에서 돈을 잃고 타락한 군상들, 말에 대한 나쁜 인상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작가의 탁월한 재간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 책은 1857년경 쓰인 것으로 실제로 찰스 디킨스는 당시 열 살 아래인 친구 윌키스 콜린스와 함께 여행을 떠났으며 이 책의 주인공 프랜시스는 찰스 디킨스를, 토마스는 콜린스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은 특별한 소제목 없이 1~5부로 나뉘어 이야기가 연속 되게 진행되는데 두 사람 중 누가 어느 부분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찰스 디킨스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니 아마도 콜린스가 쓴 부분을 찰스가 다시 쓰거나 아니면 서로서로 글을 쓰고 다시 공동으로 수정·보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글의 내용에서 보면 찰스 디킨스의 색채가 짙게 느껴진다. 그런 추측을 해보는 이유는 글의 형태가 일관 되게 진행되었고 찰스 디킨스의 다른 책에서 보여준 글 형태와 유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혹자는 책의 전반부는 콜린스, 후반부는 찰스 디킨스가 쓴 것이라고 라고 하기도 한다.
찰스 디킨스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언제나 그의 독특한 사물 묘사와 해학적이고 서민적 감성을 드러내는 소박함에 매료된다. 이 책도 그런 점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엘론비의 석양은 멋졌다. 해질 녘엔 낮고 편평한 해변의 물웅덩이와 마른 땅들이 각양각색의 광을 낸 기다란 은괴와 금괴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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