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페의 키잡이이시자 해결사이신 안상순(실명으로 적어야겠죠.) 부장님께서 경향신문 '우리말글이 흔들린다'에 칼럼을 쓰셨더군요. 오늘자에 신문 보고 알았습니다. 이 글 바로 밑에 있는 고길섶님의 '언어정책 어디로 가나'와 내용이 일맥상통한다 싶습니다. 글 좋고, 내용 좋고, 읽을수록 흥취나고... 허락은 받은 걸로 치고,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제목은 제가 붙인 거고, 신문 원제목은 아래에 있습니다. 이 글이 실린 경향 인터넷 주소는 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0411021734471&code=960100
------------
[우리밀글이 흔들린다] 24. ‘표준어만 맞는 말’ 인식 배타적
우리 의식 속에는 오래 전부터 ‘표준어=맞는 말, 비표준어=틀린 말’이란 도식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말을 O, X로 가르는 일은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음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런 확고한 믿음과는 달리 자신이 쓰는 말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십 수 년간의 학교 교육을 받고 매일매일 신문 방송을 접하며 주위 사람들과 수없이 우리말을 주고받건만, 국어사전 속의 표준어와 머릿속 어휘가 서로 상치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의 말이 미심쩍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말 가운데 표준어가 아닌 것을 찾아보길 바란다.
‘간지럽히다, 굽신거리다, 귀후비개, 끄적거리다, 남사스럽다, 맨날, 맹숭맹숭, 먹거리, 메꾸다, 복숭아뼈, 숫놈, 야멸차다, 어리숙하다, 연신, 오손도손, 잎새, 햇님.’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모두 비표준어다. 이 말들의 표준어는 ‘간질이다, 굽실거리다, 귀이개, 끼적거리다, 남우세스럽다, 만날, 맨송맨송, 먹을거리, 메우다, 복사뼈, 수놈, 야멸치다, 어수룩하다, 연방, 오순도순, 잎사귀, 해님’이다. 개인에 따라 다소 직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앞의 것이 더 자연스럽고 뒤의 것이 덜 익숙할 것이다.
왜 이와 같은 괴리가 빚어졌는가? 그것은 표준어가 소수의 학자나 사전 편찬자에 의해 극히 제한된 자료나 직관에 따라 정해졌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폭넓은 언어 현실 조사 없이 이뤄진 표준어 사정이 언중의 현실어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차라리 필연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라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언어 조사를 통해 표준어를 재확정하면 표준어와 현실어의 괴리 문제는 말끔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역시 단순치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현실어와 규범어를 일치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새로 표준어를 제정하여 보급하는 일은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또 하나, 설령 그런 비용을 기꺼이 치른다 하더라도 그 표준어는 수십 년 후에는 다시 개정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말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여기서 표준어 문제의 진정한 핵심을 캐물어야 한다. 왜 표준어가 문제인가? 가장 큰 문제는 배타성의 원칙에 있다. 표준어는 맞고 비표준어는 틀린다고 하는 편협한 배척의 논리가 우리말을 오히려 황폐화하고 있다. 과연 ‘간지럽히다’와 ‘간질이다’는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 물론 언어에는 보편적인 말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지역이나 계층에서만 쓰는 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수자의 말과 소수자의 말일 수는 있어도 맞는 말과 틀린 말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모두 소중한 우리말이다. 그 모든 말들은 우리말의 지평을 넓히고 그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영랑의 시 속에 나오는 방언을 그 누가 틀린 말이라고 할 것인가. 그의 방언이야말로 우리말에 섬세한 숨결을 불어넣지 않았던가?
물론 원활한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표준어는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 방송 뉴스를 지역 방언으로 전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의 표준어 역시 그 성격과 경계가 느슨한 것이 좋다. 가령 영어나 유럽어에도 표준어 개념은 존재하지만, 우리처럼 이 단어는 표준어이고 저 단어는 비표준어라고 구별 짓지 않는다. 다만 방송이나 신문,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말은 표준어라고 인식되는데, 이 경우의 표준어란 주로 수도권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품위 있는 말을 가리킬 뿐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제 우리는 단어에 얽매이는 경직된 표준어를 벗어나 좀더 유연하게 그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표준어의 사용은 단어 선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발음과 억양, 그리고 문장의 정확한 표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짜장면'을 구지 '자장면'으로 해야 하는가? 란 문제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언어는 규칙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우리가 '자장면'을 잘못되게 '짜장면'이라고 말해 왔다고 해서 후세에까지 옳은 표기인 '자장면'을 잘못된 표기인 '짜장면'으로 해라라고 하는 건 '아름다운 한글'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듭니다. 세계 유산인 한글이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실용적이란 이유로 상처입지 않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짜장면'을 구지 '자장면'으로 해야 하는가? 란 문제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언어는 규칙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우리가 '자장면'을 잘못되게 '짜장면'이라고 말해 왔다고 해서 후세에까지 옳은 표기인 '자장면'을 잘못된 표기인 '짜장면'으로 해라라고 하는 건 '아름다운 한글'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듭니다. 세계 유산인 한글이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실용적이란 이유로 상처입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