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공과 참판공께서는 친 형제분이시고
그 중 장양공께서 형님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1. 두 분의 아버님이신 휘 극명조께서는 언제 나주로 들어가셨는지요?
2. 휘 극명조의 비문에 함평군 군봉이 적혀 있는지요?
3. 큰아드님 장양공께서는 어디서 태어나셨는지요?
4. 그리고 한번이라도 나주에 사셨던 적이 있으신지요?
최초족보인 1688년도 함풍이씨족보에는
세개의 서문이 써져있는데
그 중에서 맨 처음 쓴 서문이 장양공 후손 운씨께서
1633년 초보에 쓴 것으로
거기에 보면
"족보를 하기위에 전국을 순회하다가 나주에 갔더니 성친들이 많이 살고 있어~~"
라고 했습니다.
5. 그 말은 곧 나주라는 곳에 장양공의 친동생 참판공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는 얘기일까요?
아니면 함성군 휘 극해조의 후손들이었을까요?
참판공 후손들이 그 때 나주에 살고계셨다면
효를 최우선시하던 시대였으니
해마다 휘 극명조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큰댁에 갔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 작은 댁인 나주에서 제사를 모셨다면
그 때마다 나주에 내려왔을텐데
휘 극명조의 장자 집안인 장양공 직계후손으로서
"나주에 갔더니 성친들이 많이 살고 있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6. 둘째아드님 참판공께서는 증참판이신데
실지로는 공직에 계셨던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후손 누군가가 정승벼슬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후손이 정승이었어야 그 윗대에게 참판벼슬을 추증할 수 있었는데...
조선시대의 추증제도는 3대후손에게서까지 받을 수 있었으되
그 후손보다는 더 아래등급을 추증하는 것이 원칙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