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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계산학81년2월졸업
 
 
 
카페 게시글
不狂不及 스크랩 김광석-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外
김홍기 추천 0 조회 262 07.12.12 21: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0년 전 오늘.
광화문 인근 찻집에서 후배들과 댓거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이르렀을 즈음. 뒤따라오던 후배가 말했다.

"형, 김광석 죽었대!".
"뭐? 웃기지 마".
"아냐, 진짜야!"

후배는 가판대를 가리켰다.
(난데없이) 스포츠신문에 커다랗게 그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진짜였다.
그렇게 김광석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그의 노래에 중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중독의 시작은 짝사랑이었다.

상대는 동아리 후배였다. 첫 눈에 반했다.
그녀에게 편지를 띄우고, 마음을 고백했지만. 냉담했다.
가슴앓이 하던 시절.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궁상맞게 사는 선배가 딱했는지, 가끔 그미는 다른 후배들과 놀러왔다.
하지만, 일정한 '선'을 결코 넘지 않았다. 결국 그미가 떠나면 더욱 방은 어두워졌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안에 가득 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텅 빈 방에 노래가 나즈막히 가라앉으면, 방안에는 그미의 향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천정에 너의 모습은, 흐르는 눈물로 글썽였다.
그렇게...김광석의 노래를 수 십 번 듣다보면,
정말- 유리창은 하얗게 밝아왔다.

그미는 착했다. 나를 잘 대해줬다.
그리고 좋든, 싫든, 우리는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동아리에 대한 애정이 컸고, 각각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조금씩 그미의 마음도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난생 처음 콘서트 티켓을 샀다. 김광석 콘서트였다.
다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 편지와 콘서트 티켓 두 장을 함께 건넸다.
하루 또 하루...콘서트 날짜는 가까워졌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가슴은 타들어 갔다.



















콘서트 바로 전날로 기억한다. 그미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돈 많아? 콘서트 안 갈 거야?"
나는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콘서트 티켓을 흔들어 보이던 그미의 모습을.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시작했다.

이제 김광석의 노래는 기쁨이었다.
그미와 나란히 앉았다. 첫 데이트, 첫 콘서트. 적지 않게 흥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김광석의 입에서 '거리에-'가 흘러 나왔을 때...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특히 '그리운 그-대 아-르음-다운 모습으로'에 이르렀을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거리에서'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였다니...

김광석의 콘서트를 가본 사람이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느낌을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언한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는 김광석을 잊을 수 있다.
하지만 콘서트를 한 번이라도 갔던 사람은 아마 김광석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슬픈 축복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김광석은 정말 큰 선물을 갖고 나타났다.
1994년에 발매된 김광석의 네 번째 음반에는 정말 명곡이 많다.
김광석의 노래 중에 최고의 절창으로 꼽는 '회귀'나,
어딜 떠날 때 정말 듣기 좋은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등.

직접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3천회 콘서트 기록을 달성하기 직전, 김광석을 다시 찾았다.
우리는 손을 꼬옥 잡고 김광석을 바라봤다.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행복했다.
그리고 내 애창곡은 '서른 즈음에'로 바뀌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하지만 나는 '서른 즈음에'를 제대로 몰랐다.
서른의 의미를 알기에는 철부지였고, 아직 부족한 나이였다.
그래도 김광석을 잘 아는 것처럼 자랑하기에 딱 좋은 노래였다.
틈만 나면 나는 '서른 즈음에'를 불러 제꼈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딱이다. 딱. 언제까지 청춘인 줄 아니?"라며 핀잔을 주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말씀이지만.
어쨌든 후배들과의 즐거운 술자리에서도 '서른 즈음에'가 튀어 나왔다.
나이 많은 선배니까 뭐라 말도 못하고...
지금 생각하면, 참- 분위기 깨는 철딱지 없는 행동이었다.

그미만은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그리고 통화 중에 노래를 불러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가끔 그미의 선곡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대부분 나의 선택은 김광석의 노래였다.
'혼자 남은 밤'도 들려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둠이 짙은 저녁 하늘
별빛 내 창에 부숴지고
외로운 밤을 홀로 지샌 내 모습
하얀 별 나를 비춰주네

불빛 하나 둘 꺼져갈 때 조용히 들리는 소리
가만히 나에게서 멀어져가며
눈물 그 위로 떨어지네

외롭게 나만 남은 이 공간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들
빛 바랜 사진 속에 내 모습은
더욱 더 쓸쓸하게 보이네

아- 이렇게 슬퍼질 땐 거리를 거닐자
환하게 밝아지는 내 눈물

그리고 몇 년 후...나는 서른 즈음이 됐다. 혹독한 서른 즈음이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본 덕분에 나는 고통을 자초했다.
뒤늦게 극심한 방황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그는 끈기 있게 나를 바라봤다.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어떻게든 나를 추스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일어서지 못했다.

동전을 넣고 인형을 뽑는 기계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어느 날.
갑자기 나를 기계 앞으로 잡아끌었다.
그때까지 '동전 놀이'에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던 그였다.
"한 번 해보자"는 말에 나는 엉거주춤 동전을 넣었다.

나중에야 짐작이 갔다. 그미는 끝까지 사랑을 아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동전 하나에 7년의 세월을 걸었던 것 아닐까.
결과는...물론 실패였다. 다음 날...그미는 내 곁을 떠났고, 나는 정말 혼자 남았다.

그미에게 매달릴 수 없었다.
그것이 그미의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로소 '서른 즈음에'를 알 수 있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조금씩 잊혀져 갔다. 그미가 매일 멀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김광석의 노래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노래를 듣다보면, 마음이 저 아래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면 가끔 김광석의 죽음까지 노래에서 느껴졌다.
그리고...무엇보다...그미의 사랑이 떠올랐다.

그후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되도록 멀리하려고 애썼다.
특히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가끔 술김에 노래방에서 부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헌데 그동안 세상과 김광석은 오히려 가까워져 버렸다.
덕분에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김광석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물론 약간의 홍역을 각오해야 하지만.

얼마 전 <한겨레21>의 김광석 10주기 특집을 통해,
올해는 일찌감치 1월 6일을 맞을 수 있었다.

10년, 10년이라니. 작은 결심을 했다.
김광석이 갑자기 떠난 오늘, 이 글을 쓰기로 말이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제는 마주보기 위해서.
김광석의 절창...회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로 시작했는데요.
여행 노래예요.

여행가면 늘- 불안하기도 하고
또 마음 속에 뭔가 기대도 하고 그러곤 합니다마는.
갖다 오면 다 뻔-해요. 뭐, 거기가 거기고. 근데- 흐흐(웃음) 뻔하죠. 뭐-

다들 사람들이 사는 데고, 멋있다 뭐, 그러다가 또 돌아오게 되고.
결국은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떠날 때 마음처럼 돌아올 때 마음도 늘 그렇죠.

늘 지금 사는 곳 지켜야 되는 것이고,
삶의 터전을 다른 데로 완전히 옮겨버리면 모를까,

늘 그렇게 비상구처럼 떠날 수 있다라는 게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자리 지키고 있다가 비상구처럼 슬쩍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듯이
그렇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김광석 콘서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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